민선지방정부 3년간 전라북도 문화정책의 최대 슬로건은 '세계화'였다. 지난 3년간 도내 문화계를 휩쓸었던 대규모 이벤트치고 '세계'나 '국제'의 타이틀을 걸지 않은 행사가 없었고 유독 그런 행사들에 도의 정책적인 지원이 집중되었던 것이다. 세계화는 근본적으로 '경쟁력'개념을 수반하고 따라서 지역문화 역시 지역대중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바탕으로 세계무대에 통할 수 있는 대표선수를 육성하는 전략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지난 3년 전라북도 문화정책의 세계화는 내부의 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 보다는 늘 안마당만 '세계'와 '국제'에 빌려주는 허울뿐인 세계화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됐다. 세계화에 매달렸던 지역문화의 오늘은 어떠한가, 과연 누가 세계화되었고 누가 세계시장에 통할 경쟁력을 확보했는가를 따져보면 그것은 분명해진다. 세계화는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시대사적 대의를 갖고 있지만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역문화의 세계화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기초를 다지고, 그와 함께 지역문화의 틀을 새롭게 바라보는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며 전략적인 고민이 스며들어야 한다.
독창성이 배제된 박람회와 스포츠 대회에 머문 '세계화'
95년 전북의 서예인들은 도제 1백주년 기념사업으로 전라북도에 <창암서예대전> 기획안을 올려 지원을 요청했다. 창암 이삼만이 누구인가. 그는 전북서예의 전설적인 서예가로 전북서단의 뿌리가 되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때까지 이렇다하게 창암을 기리는 기획전이나 행사가 없었다는 점에서 <창암서예대전>은 전북의 서예를 바로 세우는 계기가 될만한 행사였다. 그러나 전라북도는 이 사업을 보기좋게 거절했다. 그리고 바로 그 얼마 후 이 사업은 전라북도가 직접 나서서 기획한 <세계거예비엔날레>라는 이름으로 둔갑했다. 유행처럼 번지던 '비엔날레'가 마침내 전북의 서예에도 붙여진 것이었다. 한국과 중국, 일본 등을 제외하면 극히 몇몇 나라에서 고유하게 전해지는 서예에 '세계'는 무엇이고 '비엔날레'는 또 무엇이냐는 도내 문화계의 비아냥이 있었지만 행사는 성황리에 치러졌다. 결국 동방 3개국의 서예박람회가 되어버린 이 행사를 치르고 나서 전북의 서예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전북의 서예는 얼마나 세계화 되었으며 얼마나 세계무대로 진출했을까. 그러나 이 사업으로 전라북도는 문화행정의 세계화에 관한한 상당한 노하우를 축적했다고 믿는 듯 하다.
그리고 2001년에는 다시 한 번 똑같은 상황이 재현될 가능성이 큰 프로젝트가 마련되고 있다. 바로 <전주세계소리축제>가 바로 그것이다. 소리축제의 기본 아이템은 전북이 예로부터 전통의 소리고장이고 농경문화에 기초한 농악이 발달한 지역으로 소리예술에 관한한 세계 어느곳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으로부터 출발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행사 역시 아직은 세계 곳곳의 진기한 소리문화들을 빠짐없이 초청해서 한곳에 모으는 '소리박람회' 이상의 의미를 찾기가 힘들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중간평가이다. 여기에 지금까지의 기획으로 보면 축제가 가져야 할 대중적인 참여나 지역적 독창성이 발휘될 여지가 많지 않으며, 기획단계에서 민간 전문가들의 참여도 배제되어 있다는 점에서 우려되는 것들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문화는 그 본래 보편성과 다양성의 양 측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전주 <세계소리축제>는 '소리'라는 보편성과 '전북의 소리'라는 특수성이 적절하게 어우러지고 그 속에서 전북의 소리가 갖는 문화적 특성이 두드러지며 이를 세계에 자랑하는 축제가
될 수 있는 치밀한 기획과 준비를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이같은 문화행사들이 마치 스포츠 대회의 형식을 차용한 것 같은 단순한 경연대회가 아니라 각 나라의 문화적 특성을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각국의 소리가 형성되는 배경을 이해하며 그 속에서 우리의 소리가 가장 크고 두드러지게 울려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준비되어야 한다. 그같은 치밀한 기획과 준비속에서만이 우리 고장에서 <세계소리축제>가 열리는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세계화의 진정한 의미는 각 나라들의 소리나 서예의 우열을 가리자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문화들이 부딪쳐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과정을 포함한다.
전략과 전문성의 문제
결국 지역문화의 전략은 먼저 문화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 그리고 지역문화의 현황을 면밀히 검토하는 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문화가 보다 전문적인 영역으로 전문적인 영역으로 인식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까닭이다. 그러나 문화전문관료가 전무한데다가 문화 담당부서의 전문성 마저도 보장되지 않는 여건에서 '빛나는' 아이디어만으로 짜낸 '세계화'는 자칫 헛품만 팔고 마는 공염불이 되거나 관료들의 면피용 행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지방정부가 동계U대회를 기념하면서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오궁리 미술촌 국제조각심포지엄>이나 <한국의 흙·불전전 국제 조각·도예 공동심포지엄>은 이러한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들이다.
<오궁리 미술촌 국제 조각 심포지엄>의 경우 전라북도의 적극적인 지원과 하이트의 1억원 협찬으로 치러진 행사였으나 지역성 결여와 기획력 및 준비부족으로 인해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졸속으로 진행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한국의 흙·불전>은 10여 국가에서 30여명의 외국작가들과 124명의 한국작가들이 참가해 명실상부하게 한국 도자예술의 진면목을 발휘하고 환경조각·도자예술의 새로운 문을 여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행사에 대한 도의 지원은 극히 미약한 수준이었다.
그것은 세계화를 위한 전라북도의 행정이 어딘가 초점을 잘못 맞추고 있다는 것이 극명하게 드러나 사례들이었다. 명확한 전략과 그 기준이 정립되어 있지 않고, 어떤 행사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하는가에 대한 판단조차 흐리다는 것이 두 행사를 지켜본 관계자들의 지적이었다. 이것은 기본적인 문화 전략과 전문성 부재에 기인하며, 더 나아가 문화의 몰이해와 문화를 경제개념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화는 건설이 아니다.
'세계화'의 기초위에 전라북도의 문화정책이 추구하는 일관된 방향은 경쟁력 개념 즉 '경제와 개발'의 논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떻게 지역문화의 수준을 끌어올려 세계속에 통하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보다는 얼마나 참신하고 '뉴스를 타는' 문화사업들을 전라북도에 유치할 것인가가 최대의 관심사인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여기에 지역문화의 수준 자체를 낮게 보면서도 다른 나라의 시장개척이나 외교적인 행사에 대한 홍보 도우미 정도로 보는 시각이 한몫을 거들고 있다.
문화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현재 자치단체들이 지향하는 문화상품의 논리가 단순히 개발에만 맞추어져 있다는 점도 지역문화상품의 논리가 단순히 개발에만 맞추어져 있다는 점도 지역문화 발전을 후퇴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문화자산들에 대한 진지한 점검이나 연구없이 즉흥적인 치장으로도 '세계화'가 가능하다고 보는 인식은 오히려 지역문화의 독창성을 퇴색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또한 이런 개발의 논리는 '문화=이벤트=지역이미지 메이킹=관광자원화=주민소득제고'라는 구호를 유행어처럼 들여오게 하면서 독자적인 문화성장이 아닌 지역 경제 발전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써 문화를 파악하게 된다. 이런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 바로 '세계화'이며 이를 위해 지자체는 각종 문화사업을 건립·조성·신축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도깨비 방망이처럼 뚝딱뚝딱 세계(?)적 축제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인터뷰/ 문학평론가 천이두 교수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도문화정책의 '세계화'평가
문학평론가 천이두 교수(원광대)는 세계의 벽이 허물어지고 정치·경제·사회 모든 부분에서 문호를 개방하듯. "문화의 세계화는 지역문화를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며, 21세기 문화의 시대를 맞이하는 현재, 너무도 당연한 정책"이라고 '세계화'의 당위성을 피력한다. "세계화 이전에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것이 있다"는 천이두 명예교수는 그러나 "지역문화에 대한 전통과 개성을 철저하게 확립 한 후에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전라북도가 추진했던 사업에 몇가지 아쉬움이 남는다고 한다. "'세계로 세계로'만 외친 나머지 근제에 깔려 있어야 할 지역문화의 '독창성'이 결여됐다"는 것이다. 몸을 지탱하는 척추가 튼튼하면 강풍이 불어와도 꿋꿋하게 서 있을 수 있다고 말하는 그는, 문화도 역시 그러하다고 설명한다. "문화의 척추인 전통과 독창성이 확고하게 정립되어 있다면, 어떤 문화가 유입되더라도 힘없이 쓰러지거나 소멸되지 않고, 오히려 타 문화를 창조적으로 지역에 접목시킴으로써 지역문활ㄹ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집안단속이 먼저라는 그는, 지역의 주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지영문화의 현재적 수준을 구석구석 점검하는 일부터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고 도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더불어 '지역'만을 고집하는 '광신적 애국주의" 또한 경계한다. 그것은 폐쇄적 자기도취에 불과하며 오히려 문화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 문화가 더 우리 문화답게 정착되고, 더욱 빛이 나는' 진정한 세계화는 "지역의 전통과 개성을 발전시켜 나가는 문화의 수직축과, 세계속에 우리의 문화를 알리는 수평축이 조화를 이룰 떄 비로소 그 빛을 발할 것이"라고 설명하는 그는, "훌륭한 문학에는 '개성'과 '보편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처럼, 훌륭한 지역 문화는 세계 모든 사람이 즐길 수 있는 '보편성'이 내재되어 있으며,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