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가 혁명을 한댄다
「중앙일보」98년 3월 12일자 7면엔 문창극 논설위원의 칼럼이 실려 있다. 칼럼 제목은 "혁명이 아니라 선거였다"이다. 김대중 정권은 선거를 통해 집권 했는데 왜 혁명을 하려고 하느냐는 문제 제기다.
나는 김대중 정권 출범 이후 김대중 정권이 보여준 형태에 대해 박수를 보내줄 생각은 전혀 없다. 이제 겨우 한달도 되지 않았으니 좀 더 지켜보자는 생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인내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김대중 정권이 혁명을 한댄다. 내가 보기엔 DJ 특유의 콤플렉스 때문에 수구 기득권 세력의 눈치를 보느라 그 쪽 비위를 맞춰 준 게 하나 둘이 아니고 그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고 생각하는데, 아 글쎄 DJ가 혁명을 한댄다
DJ가 한다는 혁명의 내용이 무언지 알아보기 이전에 그런 주장을 한 문창극이라는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 그걸 먼저 알아보기로 하자. 나는「인물과 사상」제5권에 쓴 "97 대선과「중앙일보」의 위험한 장난"이라는 제하의 글을 통해 문 위원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문창극의 망언과 아첨'이라는 소제목을 달고 그를 혹독하게 비판한 바 있다.
드라마「모래시계」를 보았더니 어떤 극중 인물이 "용서도 힘이 있어야 할 수 있다"고 그러더니 비판도 힘이 있어야 먹히는 법이구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이 이렇게 뻔뻔할 수가! 그러나 그의 뻔뻔함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랴. 내 글을 읽은 사람은 아무리 많이 잡아도 수만 명에 불과하고 문창극의 글은 그 쪽 주장에 따르면 수백만 명이 읽는다 하니 나는 그저 힘으로 밀리는 수밖에. 그러나 나는 그냥 주저 앉지는 않겠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가운데엔 나의 문창극에 대한 비판을 읽지 않은 독자들도 있을 것이고 읽었다 해도 기억이 희미한 분들도 있을 터인즉, 나는 그 비판을 여기에 다시 반복하고자 한다. 이해하여 주시기 바란다. 그 비판을 읽으셔야 "혁명이 아니라 선거였다"는 칼럼이 얼마나 뻔뻔한지 공감하실 수 있을 것이다. 추상적이고 거창한 비판보다는 사회적 공인 한 명 한 명에 대해 따끔한 실명 비판을 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나의 평소 주장에 대해 동의하여 주신다면 더욱 좋겠다.
문창극의 망언과 아첨
문창극 논설위원이 97년 9월 25일자에 쓴 "이회창 대표가 사는 길"이라는 제하의 칼럼은 정말 읽기에 민망하다. 그는 이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후보들이 앞타둬 앞치마를 두르고 TV 카메라 앞에서 아양을 부리거, 박정희가 인기가 있다 하니 머리모양까지 똑같게 하고 나서고, 수족들의 적폐를 염려하는 소리가 나오니 집권하면 한자리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씌워 줄을 세우는 모습까지 연출시킨다. 그렇게 해서 지지가 오라간다고 믿고 있으니 당사자들이 얼마나 국민을 바보로 여기고 있는지 알 만 하다."
그렇게까지 매사를 악의적으로 해석해도 되는 것인가? '줄을 세우는 모습까지 연출시킨다?' 이건 정말 망언이 아닌가. 나는 문씨가 제 정신이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래도 문씨는 제 정신이 아닌 것 같다. 그는 당시 이회창 후보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걸 너무 안타까워 한 나머지 울분마저 터뜨린다. "오죽하면 세번 심판을 받고도 다시 나온 후보나 경선 결과를 발로 차고 민주주의 원칙을 짓밟고 나온 후보보다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나선 이 후보에게 "진정한 승부수는 원칙과 진실"이라며 "총리를 그만 둘 때의 심정으로 돌아가는 것이다"고 조언을 한다. 그래서 이회창-조순 연합이 그 때의 심정으로 돌아간 것인가? 이 후보에게 당위를 역설하는 척 하면서 그의 경쟁자들을 부당하게 난도질하고자 했던 게 이 칼럼의 목적은 아니었나?
이제 겨우 40대 후반의 젊은 사람이 왜 그러는 건가?아직 앞 길이 창창한 사람이 왜 그러는지 정말 이해가 안간다. 그렇게 이해가 가지 않던 중 11월 14일에 벌어진 이회창 후보의 토론회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나는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었다. 당시 토론자로 참여한 문창극 논설위원이 이 후보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이건 질문이라기 보다는 아부성 발언 그 자체였다. 그 발언의 내용은 이러했다.
"아드님은 본인이 자원을 해 소록도에 가서 자원 봉사를 하고 있고, 한인옥 여사는 마음 고생 때문에 대구 집회에서 눈물까지 흘렸다. 평생을 꼿꼿하게 사셨던 분이 정치권에 들어와 고생을 많이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정치권에 들어온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
이회창 후보는 그 질문을 받아 열변을 토했다. 이 나라를 위해 한 몸 던지겠다는 것 아닌가. 정말 가슴이 뭉클하고 감동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이 토론회가 끝난 직후 실시된 여론 조사에서 이회창 후보가 이인제 후보를 따 돌리고 성큼 2위 자리로 진입한 것도 이 질문 하나가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질문은 아부 그 자체였다.
혁명이 아니라 선거였다?
문 위원은 선거 당일인 12월 18일자 "10%의 결산을 위해"라는 제하의 칼럼에서도 유권자들을 꼬시느라 몸부림을 쳤다. 그는 유권자들을 꼬시느라 몸부림을 쳤다. 그는 유권자들에게 바람직한 투표의 기준을 두가지 역설했는데, 하나는 명분에 집착하지 말고 자기 이익을 생각하라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대내외적으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인물을 고르라는 것이었다.「중앙일보」는 당시 투표일을 며칠 앞두고 1면 머릿기사까지 동원해가면서 연일 김대중 후보의 IMF 재협상론 때문에 대외신용 등급이 급락했고 신뢰 회복이 안돼 국가 부도가 나게 생겼다고 호들갑을 떨어댔다. 이 점을 상기하면서 다음과 같은 문 위원의 주장을 읽는 것이 좋을 것이다.
" 또 하나 주요 기준은 오늘의 위기가 어디에서 비롯됐느냐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는 며칠 전 신용 질서의 붕괴가 어떤 사태를 빚어내는가를 눈으로 보았다. 국제적으로는 한국 정부와 정치권을 믿지 못해 외국이 투자금을 회수해가고 내부적으로는 정부와 금융 기관을 불신해 예금 인출사태가 빚어졌다. 공동체에서 신뢰라는 줄이 끓어지고 나면 모든 것이 혼돈에 빠진다는 것을 실감했다. 따라서 이번 투표는 대내외적으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인물이 누구냐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선거 결과가 한국에 대한 믿음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우리의 위기는 가속화할 것이다. 결심을 못한 10% 유권자는 누가 나라의 신뢰를 회복시키고 자신의 이익을 지켜 줄 것인가를 최후의 기준으로 삼아 투표장에 나가야 한다."
그렇게 떠들었던 인물이 자신의 야비한 '선거 운동'에 대해서 반성할 생각은 전혀 않고 DJ가 혁명을 한다고 호들갑을 떨어대니 이 어찌 기막힐 노릇이 아니랴. 자신이 원치 않았던 후보가 대통령이 돼 하는 일은 무조건 혁명으로 보이는가? 그는 YS와 DJ를 비교해 가면서 아주 교묘하게 YS의 실패를 DJ와 연결시켜 'DJ 너도 그렇게 하면 YS꼴 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작태를 저지르고 있다. 그가 DJ와 관련해서 한 이야기만 발췌해 들어 보도록 하자. 왜곡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아주 길게 인용하겠다.
"지금 북풍 공작 규명으로 안기부가 다시 수난에 들어갔다. 정부 조직 개편과 국제통화기금 파동이 겹치기는 했지만 공무원, 군인, 금융계에 정권교체에 따른 물갈이가 다시 벌어지고 있다…
선거에서 이긴 쪽이 정책을 결정하는 중요 자리를 차지한느 것은 어는 나라에나 있는 법이다. 그러나 우리와 같이 권력을 행사하는 자리라면 과장·국장급까지도 승자의 지역이나 연줄이 독식하는 경우는 선진 민주국에는 없다. TK(대구·경북)가 물러나면 PK(부산·경남)가 들어서고 이들이 물러난 자리에는 다시 MK(목포·광주)가 채워진다. 공무원 사회는 5년마다 지연·학연에따라 뭉ㅇ치기와 줄대기가 밀물과 썰물처럼 일어나고 이에 맞추려 사기업도 새 세력과 색까을 맞추려고 아첨성 인사까지 한다. 나라가 몽땅 뒤집히는 듯 하다. 정권을 잡는 쪽은 언제나 급진적인 변혁의 유혹에 빠진다.
전교조와 노조의 정치 활동 문제는 단순한 정책 선택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의 이념적 좌표가 결부된 사안들이다. 나름으로 이유가 있어서 국민적 합의에 의해 이를 금지시켜 왔는데 새 정권 출발과 함께 무너져 가고 있다. 재벌 개혁도 분명히 필요하지만 수십개의 계열 회사들을 3-6개 씩으로 줄이라는 급진적인 처방이 나오고 있다.
우리는 왜 집권 초기만 되면 이렇게 사회 전체가 요동을 치며 뒤숭숭한가. 왜 미래에 대한 비전과 꿈은 뒷전으로 가고 사정이 어떻고, 보복이 어떻고 하며 살벌해지는가. 이런 식의 정권교체가 계속 반복된다면 나라가 온전히 유지될 수 있을까. 왜 우리는 이런 유형의 정권교체가 반복될까? 우리 정치들은 선거를 통해 집권은 하지만, 집권을 하자마자 의식은 혁명가로 변하는 것은 아닐까.
혁명에서 패자는 반역자, 혹은 수구 세력이라는 이름으로 격리되고 도태된다. 인민의 지지와 정의라는 거룩한 이름으로 제도와 법은 유린된다. 민주적 선거의 결과는 이와는 다르다. 패자의 권리도 승자와 같이 존중하며 법과 규칙은 만인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표를 찍었건 안 찍었건 똑같은 권리와 기회를 보장받는다.
흔히 쇠는 달궈졌을 때 때려야 한다며 정권 초기에 급진적 변혁을 주장하기도 한다. YS정권에서 보았듯이 초기의 변혁, 조치들은 결국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왜 그럴까. 혁명을 한 게 아니고 선거를 한 것인데 혁명을 한 것으로 착각해서 현실을 도외시하고 과욕을 부린 탓은 아닐까. 새 정부는 이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언론은 개혁 대상 제1호다
나는 DJ에 대한 비판은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게 DJ를 돕는 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비판의 방향과 내용이다. DJ에 대한 비판은 크게 보아 두가지다. 하나는 DJ가 개혁을 하지 않는다고 비판을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DJ가 개혁을 한다고 비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후자의 비판을 하는 사람들이 노골적으로 DJ가 개혁을 한다고 비찬을 하진 않는다. 아주 그럴 듯하게 포장을 한다. 문창극의 비판이 바로 이런 경우에 속한다. 이런 비판은 수구 기득권 세력의 'DJ 발목잡기'다. 그대로 간과해선 안된다. 전혀 돼먹지 않은 수작들만 고라 하나씩 격파해보자.
지금 북풍 공작 규명으로 안기부가 다시 수난에 들어갔다? 그렇게 안타까운가? 그래서 북풍 공작 규명을 하지 말자는 건가? YS는 안기부의 도움을 받아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DJ는 안기부의 북풍 공작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기초적인 사실을 문창극은 전혀 모르는가?
새 정권이 들어서 정부 고위직이 바뀌는 건 당연한 일인데 그게 문창극의 눈엔 나라가 몽땅 뒤집히는 것으로 보이는가? MK 운운하는데 정확한 비율을 거론하면서 구체적인 비판을 하라. 과거 TK독식, PK독식에 대해선 굳게 침묵해놓고 아니 그걸 당연하게 생각해놓고 아니 그걸 당연하게 생각 해놓고 MK가 정당한 자기 몫을 찾는게 그렇게 배가 아프고 억울한가? 나는 MK의 갑작스런 '자기 몫 찾기'를 좋게만 보는 사람은 아니다. 비판할 뜻이 충만하다. 그러나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다. 문창극에겐 그걸 비판할 자격이 없다. 무자격자가 비판을 하니 나라가 몽땅 뒤집히는 듯 하다고 사기를 치는 것 아닌가.
전교조와 노조의 정치 활동 문제가 정책 선택의 문제가 아닌 이념적 좌표가 결부된 사안이라고? 그런 식으로 보자면 어느 정책치고 이념적 좌표가 결부되지 않은 사안이 있는가? 문창극의 말대로 하자면 남북문제를 어찌 감히 정책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 것인가. 국민적 합의에 의해 그걸 금지시켜왔다고? 문창극 개인이 국민을 대표하나? 제발 정확한 사실에 근거하여 이야기를 하라. 찬반 양론을 국민적 합의라고 사기치지 말라.
재벌의 문어발 경영을 개혁하는 것이 급진적인 처방이라고? 문창극은 그런 수작을 하기 전에 삼서의 대변인 노릇을 해온「중앙일보」의 과거에 대해 반성부터 하고 이건희 회장에게 빨리「중앙일보」주식을 내놓으라고 압혁을 가하는 칼럼이나 쓰도록 하라. 이건희 회장「중앙일보」에서 손 떼겠다고 한게 벌써 몇번 째인가? 그런데 뭐 주식을 인수할 사람이 없어서 미적거리고 있다고? 주식을 처분하려고 시도느 해봤나? 이번에도 또 사기를 치면 그건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미래에 대한 비전과 꿈이 뒷전으로 가고 있다고? 그건 현상 유지를 염원하는 문창극의 머리 속에서나 그럴뿐이다. 왜 우리는 이런 유형의 정권교체가 반복될까? 문창극은 대통령이 바뀌는 걸 정권교체라고 보는 모양인데 선거에 의한 평화적인 정권교체는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이루어졌다는 걸 잊지 마시라. 그 점을 감안한다면 지금 너무 조용하다. 이런 식의 정권교체가 계속 반복된다면 나라가 온전히 유지될 수 있을까? 문창극의 이기적인 세계가 나라인가? 문창극이 곧 나라냐 이 말이다.
지금 문창극은 모든 걸 혁명으로 보고 싶은 모양인데 문창극의 이런 돼먹지 않은 수작을 마음대로 신문에서 공표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된 상황이 혁명이란 말인가? 문창극을 언론계에서 내쫓고 문창극이 활동의 근거로 삼았던 언론사를 폐쇄시킬 수 있어야 그게 혁명이 아닐까?
아이고 관두자. 비슷한 이야기 반복해봐야 입만 아프다. 내가 개탄하는 건 문창극의 정치적 성향이 아니다. 최소한의 논리다. 문창극의 글 어디에 논리가 있는가? 문창극과 같은 언론인은 하나 둘이 아니다. 특히 유력지라고 하는「조선일보」와「중앙일보」에 득실거린다. 정말 DJ정권의 앞날이 걱정된다. 개혁을 하려고 하면 이런 언론이 발목을 잡을 것이고 개혁을 하지 않으면 DJ에게 표를 던진 사람들이 돌을 던질 터이니 이것 참 보통일이다.
답은 딱 하나다. 개혁의 전선을 재편성해야 한다. 언론을 성역으로 남겨 두고선 아무 일도 안된다. 언론을 개혁 대상 제1호로 삼아야 할 것이다. 국민들도 DJ정권에게 뭘바라기 이전에 언론이 무슨짓을 한ㄴ지 그걸 먼저 감시하고 응징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