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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4 | 칼럼·시평 [특별기고]
투쟁과 고통의 10년, 그리고 새로운 시작
전교조 합법화, 그 10년의 세월
박일관(용담중학교 교사·전교조 전북지부 정책기획실장)(2015-06-17 17:57:22)


 지난 2월 6일, 노사정 위원회에서 교원 노조를 내년부터 허용하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처음엔 내 눈과 귀를 의심했다. 새 정부에 거는 기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막상 '전교조 합법화'가 현실로 다가오고 보니, 참으로 믿기질 않는 것이었다. 처음엔 뭔가 잘못 알려졌거나 무엇엔가 속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음 날, 주변의 많은 분들로부터 축하인사를 받으면서 그제서야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뿐, 이내 복잡한 심정이 되고 말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벌써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버린 것이 아닌가! 나이 스물 일곱의 총각선생이 그 사이 아내와 두 아이를 둔 삼십대 후반의 나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해직되기 전까지의 아련한 추억들이 아름답게 그리고 마치 어제의 일들처럼 생생하게 떠오르는데 벌써 10년의 세월이 흐르다니…

 보통 사람들은 89년의 전교조 사태는 기억하지만 이미 그 이전부터 있었떤 교육운동이 흐름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1960년 4·19혁명 이후 분출했던 교원노조 운동이 이듬해 5·16군사쿠데타로 좌절된 이후 우리 교육은 철저하게 군사정부의 시녀로 전락하고 말았었다. 그리고는 침묵의 세월 20여 년만에 전두한 정부 하에서 교육운동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82년 YMCA중등교육자협의회가 그것이다. 그 이후 민중교육지 사건과 86년 교육민주화선언을 거치면서 대중운동으로 확산되어 나갔다. 87년에는 전교조의 전신인 전국교사협의회가 만들어 지고 88년에 대규모의 교육법 개정 투쟁이 벌어지게 된다. 이것을 계기로 강력한 단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되기 시작하여 89년 5월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결성하게 되는데, 바로 이 때의 사건이 우리에게 남아있는 아픈 상처인 것이다.

 당시를 돌이켜보건대, 많은 교사들이 전교조에 참여했던 이유는 그렇게 거창한 것들이 아니라 개인적으로는 모두 단순한 것이었다. 잘못된 교육현실을 개선해보겠다는 의지로, 또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사의 구겨진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교육의 민주화를 위해 등등 소박한 마음가짐이었지만 전교조 교사들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는 실로 거창하였던 것이다. 당시 13개 정부 부처가 합동으로 대책회의를 하고, 국가보안법 차원에서 색깔 덧칠하기에 나섰으며, 정원식 당시 문교부장관을 필두로 징계의 칼날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양심에 비추어 부끄러울 것 없고 두려울 것이 없었기에 무릎꿇지 않고 버티는 우리에게 주변에서는 간혹 "당신들 자신은 지금 자신들이 얼마나 거창한 일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는 말을 하곤 했었는데, 지나고 보니 과연 우리가 추구했던 일들이 기득권 세력에게 얼마나 큰 위협(?)을 가한 일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이제 정치적으로는 합법화된 마당에 그 동안 가슴속에 감춰 두었던 뒷이야기를 한 토막 하고 싶다. 잘 아는 일이지만, 전교조에 가입에 활동했다는 이유만으로 당시 전국적으로 1,527명의 교사들이 해직되고, 구속되는 아픔을 겪었고, 당시에 전개했던 저항 방법이 단식 투쟁이었던 관계로, 체중이 무려 20KG이나 빠진데다 그 이후로 내분비계통의 난치병까지 얻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고통을 당한 사람은 나만이 아니라 수없이 많았고 막상 본인들보다는 가족들이 겪은 고통은 더욱 컸다. 하물며 해직기간중 얻은 병(대부분 암)으로 복직도 하지 못한 채 저 세상으로 먼저 가신 선생님들의 가족들이나, 부부가 함께 해직된 가족들이 겪었을 고통은 그 깊이조차 헤아리기가 어렵다. 거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형제가 동시에 해직된 나의 경우도 비교적 특수한 사례에 해당한다. 형제가 동시에 해직되고 구속되고 수배되는 상황에서 부모님이 겪었던 정신적 고통은 차마 자식된 도리로 입에 담기 민망할 정도다. 94년에 약 1,300명 정도가 불완전하게나마 복직될 때, 형(박일범, 현재 전교조 전북지부장)은 복직을 거부하고 지금껏 온 몸으로 전교조 활동에 헌신하고 있다. 올 8월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는 현직 초등학교 교장이신 아버님은 한 때 자식들에 대한 좌경 용공 매도에 가슴 아파하셨고, 자식들의 그런 희생에도 불구하고 달라지지 않는 교육 현실을 가슴아파하셨다. 내가 전교조 파동을 겪은 그 나이에 아버님은 4·19교원노조 파동을 겪으셨을테고, 그 때에도 그런 희생이 군사정부에 의해 좌절되고 수포로 돌아갔고, 그 후로 더욱 보수화된 교육계 현실을 교단에서 평생 봐 오셨던 터라 자식들의 희생을 보는 눈이 남달랐을 거라 여겨진다. 우리 형제 본인들이야 어떤 어려움속에서도 자신의 시념대로 살아간다고 하지만 부모 형제나 식솔들로는 견디기 어려운 형극의 세월이었으리라. 합법화가 거론되는 마당에 특히 가슴 아프게 여겨지는 것은 그 동안 마음의 고통으로부터 얻은 부모님의 지병과 형수의 건강 악화다. 거기에 비하면 덜한 것이겠지만 남편이 해직된 그 학굥서 지금껏 견뎌온 아내의 심적인 아픔 역시 가벼운 것은 아니었으리라 생각된다.

 아무튼 그런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전교조가 형극의 세월을 견뎌온 것은 참교육 이념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지속적인 성원 덕택이다. 특히 학교 현장에서 묵묵히 물심 양면으로 지원과 참여를 아끼지 않았던 후원교사들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전교조는 이미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져버린 전설 정도로나 남게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오늘 전교조 합법화의 기쁨은 온ㄹ까지 전교조를 지탱시켜준 국민과 절대 다수 교사들의 몫이어야 한다. 어쩌면 우리 교육과 사회의 진정한 변화와 진전을 바라는 모든 국민의 기쁨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정부의 교원노조 허용 방침이, 그것도 노사정도의 합의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 발표되자마자, 중앙일보를 필두로 (한겨레신문을 제외한) 거의 모든 일간지가 앞다퉈 일제히 선정적인 용어로 전교조 합법화를 반대하는 내용의 기획 기사와 사설을 실었다. "전교조가 돌아온다", "태풍전야의 교단". "교육 황폐화 우려", "학생 의식화". "전교조 갈등", "戰교조 되면 안되는데," 등등 실로 자극적인 용어들이 사회면에 굵직한 머릿기사로 연일 등장했다. 기사와 사설 어느 한 곳에서도 희망적인 논조의 구절을 발견할 수 없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사립학교재단연합회 그리고 각 교장단협의회에서도 일제히 반대 성명을 냈다. 그들이 내세우는 논리야 어떻든 간에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자신들이 그 동안 누려왔던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굳은 각오와 결의가 엿보이나. 전교조가 돌아오면 무엇이 어떻게 되길래 그토록 호들갑인지 도대체 알 수 없는 일이다. 하기야 교장들은 그 동안 독점적으로 누려왔던 권위와 권력을 평교사 집단에게 빼앗길까 걱정될테고, 사학재단은 사학재단대로 교사들의 임명권을 무기로 마음대로 전횡을 할 수 없게 될 것을 우려할테고, 교총은 배타적인 지위와 군림을 포기해야 할테니 전교조 합법화가 심정적으로야 못마땅하겠지만 진정 국민이 바라는 것은 그런 옹졸하고 보수적인 태도가 아닐 것이다. 더구나 언론이 앞장서서 선정적인 보도로 여론을 호도하는 모습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어쩌면 그렇게 한치도 달라지지 않을 수 있는지 의아하기까지 하다. 물론 언론사주 대부분이 사학의 소유자들이니 그럴 법도 하다고 이해할 수도 있는 일이라지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우리 옛말이 무색할 정도다.

 교육계에 군림했던 기득권 세력들이나 보수 언론들의 태도야 어떻든 간에 그들이 걱정하는 교단의 갈등은 어디에도 없다. 전교조 역시 지난 10년에 대한 자성을 바탕으로 참여를 통한 개혁을 조용하게 준비하고 있을 뿐이다. 전교조이 지난 10년 세월이 권위주의적인 군사정부에 대항하는 반독재민주화투쟁에서부터 시작하여 온갖 탄압과 방해에 대한 저항과 비판이었다면, 이제 비로소 참여를 통한 개혁의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지금 우리는 마라톤의 출발선에 모이고 있다.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통스런 교육개혁의 여정을 손잡고 함께 가기 위해서다. 정치권에서는 제대로 달릴 수 있도록 길을 닦아주고, 국민은 격렬와 응원을 보내주고, 달리는 선수들은 최선을 다한다면 모두가 승자가 되는 훌륭한 경주가 되리라 믿는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언니와 오빠를 몹시 부러워하며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를 손꼽아 기대하던 딸아이가 엊그제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지금부터 학교 교육을 받는 동안 내내 그렇게 지금처럼 행복해하기를 바랄 뿐이다. 내 아이뿐 아니라 학교교육을 받는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교육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고 그들이 우리 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동량이 되도록 잘 가르치는 것이 전교조 존재의 이유라면 너무 소박한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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