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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4 | 칼럼·시평 [문화시평]
백년세월을 건너 다시 살아난 춘향전
국립창극단 <춘향전>
김정수(전북도립국악원 기획실장)(2015-06-19 17:39:39)


 사랑! 살면서 이처럼 많이 생각하고 즐겨 사용한 단어가 또 있을까? 동서고금을 통틀어 때로는, 가장 인간다움의 표상처럼 애용되는 단어. 문학에서, 음악에서, 미술에서, 연극에서 창작의 근원적인 힘이 되기도 하고 소재가 되기도 한 사랑. 우리의 기억속에 남아 있는 불후의 명작들에 항상 빠지지 않고 스며있는 한 줄기 빛과도 같은 존재.

 서양에 로미오와 줄리엣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춘향전이 있다. 아니 서양의 로미오와 줄리엣보다 명료한 시대적, 사회적 배경에 건강한 의식과 의지를 담고 있는 춘향전이 우리에게는 있다.

 지난 2월 국립창극단이 세계 무대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우리 것을 만들겠다는 의욕으로 내놓은 완판장막창극 춘향전 공연이 있었다. 국립창극단의 5개년계획. 1년에 한작품씩 5년에 걸쳐 판소리 다섯바탕의 완판창극을 제작하겠다는 계획의 첫 번째 실천이기도 했다. 가히 국립창극단이 아니면 엄두를 못낼, 또 국립창극단이기에 해야만 할 그런 시도였다.

 '기다리는 사랑이 아름답다'라는 홍보문구를 앞세우고 2월 14일부터 26일까지 국립중앙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 이 춘향전은 총 2막 7장 30경으로 구성되어 있고 공연시간만도 5시간 30분에 달해 그 외형만으로도 기록에 남은 대규모 작품이었다. 뿐만 아니라 대본 김명곤, 연출 임진택, 안무 국수호, 지휘 한상일 등의 스텝들에 오정숙, 은희진, 안숙선 명창 등 호화백역들이 출연함으로써 내용면에서도 드림팀이란 주장을 뒷받침할만 했다.

 창극의 역사는 근 백년에 달한다. 한국연극의 근대화가 이루어지느 시점에 바로 창극의 태동이 있었다. 창극의 시작이 한국현대연극의 시작이며 연극사의 전통계승과 이식문제에 중요한 단초가 창극에 있는 것이다. 그 태동의 모습과 의의, 그리고 현대 창극의 정체성을 두고 상당한 논란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전통 연희의 무대화가 이루어지는 과도기에 가장 극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던 판소리가 다른 장르에 비해 유리한 입장에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희곡을 비롯한 모든 극적 요소의 수입에 비해서 자주적인 측면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창극을 바라보는 대게의 흐름이다.

 이번 국립창극단의 춘향전은 현존 판소리의 사설과 더늠을 특정 유파에 따르지 않고 공연 의도에 맞게 정리한 것으로 극 흐름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조정했다고 한다. 대체적으로 그러한 설정이 성공적이었으며 설사 부분적으로 무리가 보인다 하더라도 창극 대본으로서는 명실상부한 완결판이라 불러도 좋지 않을까 싶다.

 공연 시간의 장단을 떠나 이번 창극은 연출상 몇가지 특징을 보여준다. 그 동안 상당 기간동안 창극의 특징처럼 존재했던 도창자가 없어진 점도 그 중 하나다.

 도창자란 서사적 구조의  판소리가 낳은 원죄적 성격에서 파생된 역할이며, 한편으로는 긴 판소리를 극화하는데 유용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 도창자는 많은 긍정적 기능 이외에도 창극의 정형화를 가져와 다양한 무대 실험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많은 창극연출갇르이 제한된 공연시간을 의식해 도창을 용이하게 수용했던 것도 창과 극의 결합을 안정적으로 도모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었다. 물론 이번 공연에서 이 점으 중요시 했든 안했든 간에 시간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움으로써 도창을 없앨 수 있었고, 도창자의 몫을 시각화된 무대, 등장인물들의 음악으로 돌려보낼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또 다른 특징은 이미지의 시각화에 적극 나섰다는 점이다. 회전무대를 포함, 국립극장의 무대를 최대한 활용하여 가능한 빠른 극진행을 꾀했으며, 감정의 음악화에 못지 않는 감정의 시각화에 노력했다는 점이 구석구석 배어 나왔다.

 물론 이런 면모는 작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존 창극의 이미지, 즉 그 동안 각 단체에서 수없이 공연되었던 창극 춘향전의 고정된 이미지를 크게 벗어나게 해주지는 못했다. 아마 그것은 춘향전에 관한 많은 사람들의 고정된 이미지가 문제거리로 작용했을 것이며 그 점이 연출작업에도 상당한 걸림돌이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왜냐하면 기존 창극을 의도적으로 벗어나기 위해서는 원작에 충실하지 않는 무리한 실험을 낳을 공산이 크고 원작에 가깝게 가기 위해서는 기존 작품의 답습이라는 한계를 부분적으로 수용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춘향전을 기획하면서 국립창극단은 공연물 제작을 위한 다양한 학술모임도 준비단계부터 병행하여 꾸려왔다. 주로 창극의 새로운 진로모색에 무게가 실린 이런 학술 모임들을 통해 여러 발전적인 의견들이 개진되어 왔다. 하지만 정작 무대를 통해서는 그 의견들이 곧바로 작품에 실리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언제든 학술적 의견이 현장에 곧장 수용될 수 없는 것이지만 모처럼 기획된 야심작이기에 아쉬움은 남는다.

 국립창극단은 거의 매일 진행된 공연에 효과적 대비를 위해 청팀, 홍팀, 백팀으로 주요 배역을 나눠 맡았다. 특히 청팀의 경우 상대적으로 연륜이 높은 오정숙, 은희진, 안숙선, 조통달 명창 등을 포진시켜 격조 있는 소리의 진수를 맛보게 했다.

 그러나 이미 다른 작품 춘향전을 통해 익숙해진 이들을 짧은 연습기간동안 연출의 새로운 시도에 적응시키기엔 무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장기공연에서 오는 피로함과 장시간의 공연이라는 긴장감은 소리의 감이 느슨해지는 느낌을 주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후반부 작품을 활기차게 이끌었던 오정숙 명창을 비롯한 명창들의 열창은 명창은 역시 명창이라는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한편, 공연을 지켜보면서 전북지역에 사는 사람으로서 야릇한 분노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우리 지역 남원을 배경으로 한 작품에 대본의 김명곤, 연출의 임진택 안무의 국수호와 오정숙, 은희진, 안숙선, 조통달 명창 등의 주요 제작진과 출연진이 모두 이 지역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한편으로는 우리 고장의 이야기가 우리 고장 출신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데 정작 이 고장이 소외되어 있으며, 정작 이 지역 사람들은 그 공연을 쉽게 접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일까.

 이는 문화의 중앙집중에 관해 누적된 제반 문제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일이다. 왜 남원에서 이같은 공연을 기획하지 못하는 것일까. 왜 춘향전을 보기 위해서는 남원에 가야한다는 생각들을 갖도록 만들지 못했을까. 그리고 왜 남원의 광한루를 실제 무대로 활용하여 대여섯 시간의 와판 춘향전을 다른 지역의 축제와 같이 특새없는 놀이판으로 전락시키고 있고, 관광객들에게, 외국인들에게 우리 지역문화의 우수성과 독창성을 홍보할 기회를 잃어 버린 것일까 하는 통탄이 생겼다.

 이번 국립창극단의 완판춘향전 공연은 여러 의미에서 춘향전의 완결판이었다. 그 동안 공연되었던 여러 춘향전의 각종 시도를 완판 안에 집대성하였다는 점에서 완결판이기도 하고 이제부터 창극 춘향전은 새로움을 찾아 본격적으로 그 탐색의 길을 떠나야 한다는 시작이라는 의미의 완결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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