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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3 | [교사일기]
참교육의 현장 교정에 울려나던 삼채가락의 신명
황상원 군산중앙여고 교사(2003-09-19 09:51:41)
창밖에는 눈송이가 퍽이나 포근하게 이 아침을 연다. 조간신문을 펼치면서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해 보았다. 학교에서는 졸업식이 있고 진포 문화마당에서는 군옥 교사 풍물패「신명」의 모임이 있기에 여러 가지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 무척이나 바쁜 하루의 시작이지만 출근길 발걸음은 상큼하다. 그동안 열심히 지도한 아이들의 졸업식이 있기에 뿌듯한 마음까지 가득하다. 내외귀빈들의 격려사와 시상식 그리고 교장선생님의 회고사가 끝나고, 후배의 송사와 선배의 답사가 이어지고 있는 지금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갑자기 숙연해 진다. 여러 번의 졸업식이 있었지만 올해의 졸업식은 만감이 교차한다. 내가 이 학교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지 지금부터 여섯해 전 초임이고 모든 것이 생소한 풋내기 교사이기에 열의와 패기는 있었으나 모든 것이 부족하고 어설펐다. 그 해 3월 첫 주가 지나고 특별활동 희망 부서를 선택하도록 하였는데 교무분장이 끝난 뒤의 발령이라 교재연구 이외는 별로 할 일이 없었기에 민속반을 만들어 학생을 받아들였다. 특별한 재주가 있어서가 아니라 특별활동 부서 중에 특별히 우리 것을 지도하거나 배울 수 있는 부서가 없기에 대학 다닐 때 탈춤 동아리 활동을 미흡하나마 힘이 되고...또, 초임이기에 아이들의 생각과 행동을 파악하고 싶어서였다. 1주, 2주, ...임원을 선출하고, 연간계획을 세우면서 특별활동시간이 있는 수요일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시나브로 두터운 애정이 쌓여갔다. 그러던 중 5월 어느 날 따사로운 햇볕을 받으며 운동장에 아이들을 모아놓고 장고를 두들겼다. 이것은 굿거리, 다음은 휘모리, 중모리, ... 호기심에 가득 찬 시선과 흥에 겨워 어깨를 들썩이는 녀석들의 진지함에 징소리가 열을 올리고 장고는 부드러움을 더해갔다. 특별활동 시간이 끝나고 교무실에 들어가니 몇 분 선생님의 환한 미소와 풍물소리에 대한 이야기가 들렸다. 그러나 면학을 염려하는 곱지 않은 얼굴들이 따가운 눈총이 되어 부딪쳐 왔다. 후기인상파 몇 분들 덕분에 3년이라는 기간동안 장고는 축축한 창고에서 곰팡이가 슬어야 했고, 혼을 울리던 징은 싸늘한 창고 벽에 매달려 녹이 슬었다. 오늘 졸업하는 녀석들이 입학하던 해 새학기가 시작될 때 격려와 눈치 속에 다시 단소반을 만들었다. 장고 가락은 울리지 않았지만 민요와 함께 어우러지는 애틋한 단소가락이 교실을 맴돌았고, 학교 밖에서는 우리 것을 배우고 찾아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면서 몇 분 선생님들의 그릇된 사고도 서서히 바꿔지고 있었다. 재작년 요 녀석들이 2학년 때 처음으로 학급문집을 만들었고, 학생회에서 장만한 새로운 악기들을 가지고 단 몇 분 동안의 연습으로 체육대회 꼴찌의 서운함을 전교생이 지켜보는 삼채 가락을 온 교정에 시원하게 풀어버렸다. 그런 저런 이유로 작년에는 민속반이 활성화 되고, 특별활동부서 가운데 가장 많은 학생들을 받아 들여야 했으며 학교에서 격년마다 실시하는 창원예술제에 풍물반「터울림」이라는 이름으로 군산시민문화회관에서 공연을 가졌다. 94년 1월에는 풍물반 아이들 몇 명과 진포문화마당에 있는 풍물동우회 회원이 남원군 보절면 호북동에 서 인간문화재 양순용 선생님께 풍물전수를 받았다. 하루에 3번 군내버스가 다니는 호북동 골짜기에는 오늘처럼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었고, 얼음물을 떠다 지은 설익은 아침식사였지만 꿀보다 맛있었다. 땀과 추위와 함께하고 풍물가락이 어우러지면서 일주일은 잠깐사이에 지나갔다. 짧은 시간의 전수였으나 풍물패 「터울림」의 질적 향상을 기대하면서 학교 내에서 특별활동시간운영에 대한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맴돌았다. 가장 앞서고 정보전달이 최선봉이 되어야 할 교육현장은 대부분 뒤쳐지고 보수적이며 30, 40년 전의 틀에 박힌 지도와 학습의 반복이었다. 최신 정보 매체인 컴퓨터만 보더라고 이제는 생산도 안 되는 286-XT가 학교를 회사의 폐품처리장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그런 모순된 관행과 틀에 짜 맞춰진 교과내용도 수학능력시험 이후로는 서서히 변해가고 있지만 특별활동 시간을 그저 쉬는 시간, 자율학습시간 정도로 소홀히 여기고 있다. 그러나 영어나 수학, 어떤 과목보다도 특별활동 시간은 소중히 여겨야 한다. 정규교과 이외의 다양한 지식을 얻을 수 있고, 새로운 자신의 재능을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할 수 있기에 더없이 귀중한 시간이 돌 수 있다. 좀 더 알찬 특별활동 시간이 되도록 모두가 함께 노력하고 이왕이면 우리 것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어느덧 졸업식장은 식순에 의해서 스승의 노래, 졸업가, 교가가 울려 퍼지고 있다. 아이들은 젖은 눈망울을 뒤로하면서 하나씩 울씩 교정을 떠나고 있다. 이제 새로운 아들과 또 다른 만남을 만들어야 하고 신학기 준비도 해야 한다. 아쉬움과 함께 새날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질척이는 땅을 조심스레 걷고 있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황상원 / 62년 고창 출생으로 원광대 수학교육과를 졸업했다. 대학 때 풍물과의 인연으로 군산, 옥구지역 교사 풍물패 「신명」과 동아리 풍물반 「터울림」을 지도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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