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년제과는 오랫동안 전주의 다른 이름이었다. 어릴적 전주를 떠났던 시니어들에게 풍년제과의 센비과자는 고향의 맛이었다. 그 이후 세대인 나와 80년대 학번들은 센비과자보다는 풍년제과의 팥빙수와 아이스크림으로 청춘의 한 시절을 보냈다. 지금도 나는 팥빙수의 정석은 풍년제과라고 생각한다. 쓸데없이 과하거나 특별하지 않으며, 얼음과 팥과 찹살떡이 명료하게 조화롭던 그 맛은 나에게 전주의 알찬 손맛 가운데 하나였다. 한국에서 제과점의 시대적 기원은 일제 강점기였다.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이 한국땅에 들어오면서 가져온 신식문물중의 하나가 제과점이었다. 센베이, 모찌, 소보루, 고로케 등등은 알다시피 모두 일본에서 넘어온 제빵들이다. 일본으로부터 시작된 제과점의 역사는 다시 미국의 시대로 넘어와 케이크와 파이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오늘 우리가 시비걸고 있는 초코파이는 미국의 ‘문파이’를 기원으로 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 초코파이가 난데없이 전주 한옥마을의 대표 먹거리로 등극해 버린 것이다. 물론 ‘문파이’를 그냥 흉내낸 것은 아니고, 정성껏 장인의 비법과 손맛으로 만든 수제 초코파이로 출발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한옥마을과 어떻게 어울려야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주 한옥마을이라는 문화적, 역사적 공간과 초코파이가 과연 어울리는 조합인가를 묻는다면 이건 조금 다른 문제가 된다. 모든 도시는 자신만의 상징과 이미지를 갖고 있고 그것은 수많은 스토리로 표상된다. 도시의 이미지와 스토리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발전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도시문화는 형성되고 궁극적으로는 이것이 그 도시의 문화산업을 이끄는 힘이 된다. 이렇게 도시가 자신만의 고유한 문화를 만들어가면서 도시는 늘 깨알같은 상징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어떤 장소로 나타나기도 하고, 문학작품이나 영화 속의 한 장면에서 비롯되기도 하고, 유명인의 일화로 남겨진 음식으로 남겨지기도 한다. 이중에서도 도시를 대표하는 음식은 오늘날 가장 핫한 도시문화의 아이템이다. 로마의 트레비분수에 가면 젤리또 아이스크림을 꼭 먹어야 할 것 같고, 뉴욕에 가면 웬지 스타벅스 커피점에서 커피를 한 잔 마셔야 할 것 같은 조바심까지 생기고, 몽골고원에 가서는 샤브샤브를 제대로 맛보면서 몽고기병의 말발굽 소리를 느껴야 할 것 같은 것이다. 이렇게 도시를 상징하고 대표하는 음식들이 만들어질 때는 첫 번째는 역시 그 도시의 공동체가 사랑하고 공감하는 음식이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대개의 경우 도시의 자연조건과 역사적 조건에 부합하는 합리성이 있다는 점이다. 세 번째는 시민들의 사랑과 공감을 받을만한 스토리가 있다는 점이고 네 번째는 확산이 어렵지는 않으면서도 그 도시만의 오리지널리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트레비분수의 젤리또 아이스크림은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비롯되었고, 마드리드의 하몽은 그 지역의 기후와 역사 속에서 형성된 음식문화이며, 몽골의 샤브샤브는 몽고기병의 전투식량에서 유래한 것을 일본식 이름으로 부르다 고유명사가 된 경우다. 그런 점에서 전주는 이미 축복받은 도시다. 전주비빔밥과 콩나물국밥은 전주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문화로 올라섰다. 비빔밥과 콩나물국밥은 도시문화의 정석에 정확하게 부합한다. 전주시민이 사랑하고 즐겼으며, 전라도의 풍성한 식재료에서 기원했고 사랑스러운 스토리를 안고 있으며 전주라는 브랜드가 명확하게 자리잡혀 있다.
이렇게 보면 한옥마을의 초코파이를 뜬금없다고 여기는 전주시민들의 마음도 한편으로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더구나 맛과 풍류의 고장 전주에서 말이다. 풍년제과의 숱한 역사적 히트상품들을 다 제끼고 어떻게 이럴 수가 라는 탄식도 이해는 되는 것이다.
그러나, 초코파이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억울한 일이다. 초코파이는 스스로 전주의 대표먹거리임을 주장한 바가 없다. 다만 시장에서 선택을 받았을 뿐이다. 한옥마을에서 퇴출명령을 받은 꼬치구이와는 달리 풍년제과라는 명가의 족보를 갖고 있다. 초코파이가 전통의 먹거리가 아니라는 지적도 좀 억울한 이야기다. 전통은 만들어지는 것이지 처음부터 전통이었던 음식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초코파이가 좀 더 세월이 흘러서 전주를 기억하는 첫 번째 추억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
다시 고민은 ‘한옥마을’
이런 논란에 대해 특별히 어떤 쪽이 옳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문제의 핵심은 사실 초코파이가 아니라 한옥마을이다. 한옥마을 자체가 전주의 본래 모습을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뭔가 아쉬움을 진하게 남기고 있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한옥마을에 즐비해진 커피숍과 기념품가게와 온갖 맛집들은 도대체 어떻게 할 것인가. 지팡이 아이스크림과 꼬치구이와 떡갈비가 대세가 되버린 한옥마을에서 진짜 문제는 음식이 아니다. 한옥마을은 지금 일종의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다. 백여년전 우리네 삶의 모습과 내용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 지금도 그대로 생활하고 있다는 공간적 특성이 한옥마을이 사랑받은 본질이었다. 그 본질이 무너지고 있고 여기에 우리가 지금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한채 관광객 7백만 시대에 취해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한옥마을의 정체성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가 먼저 고민되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한옥마을의 음식에 대해서도 약간의 정리가 필요한 것이다.
물론 초코파이는 좀 더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확실히 초코파이가 비빔밥이나 콩나물국밥과 같이 정석대로 사회화 과정을 거쳐서 성장한 것은 아니다. 초코파이의 진짜 문제는 그 명성의 장기지속성이다. 초코파이가 너무 흔해지면서 희소성이 떨어진 것은 초코파이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요소가 될 것이다. 이미 대량생산 단계에 들어서면서 수제 초코파이는 찾기가 어려워졌다. 비슷한 상품이지만 군산의 이성당 단팥빵은 희소성의 가치를 지키고 있다는 점을 참고해야 한다. 초코파이가 지역사회에서 제대로 사회화의 과정을 거치기 위해서는 스스로 귀해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아무데서나 만날 수 있는 초코파이는 스토리를 만들지 못하고 결국 공동체에서 인정받기가 어려워진다. 그리고, 초코파이를 염려하시는 모든 분들은 사실 그보다는 한옥마을 자체의 변화를 고민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한옥마을은 엄격하고 강인하게 2단계 플랜에 돌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