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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8 | 인터뷰
지속가능한 ‘딴따라’ 정신, 밴드의 요람을 꿈꾸다
라디오스타 박인열 대표
최정학(2015-08-17 15:18:00)

 

 

몇 년 전 부터 ‘라디오스타’ 이야기를 들어왔다. 가끔 음악 하는 지인에게 초대를 받기도 하였고, 정말 미친 듯이 놀다 왔다는 친구의 SNS를 보며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가보지는 못했다. 궁금해서 꼭 한번 가봐야겠다 마음먹다가도 막상 기회가 생기면 어쩐지 낯설게 느껴져 망설였다. 드디어 오랜 호기심을 풀 수 있는 기회. ‘라디오스타’를 찾았다.
거칠지만 견고해 보이는 두툼한 나무대문을 열고 지하로 내려가자 한쪽 벽면이 모두 무대다. 한 가운데 드럼을 중심으로 기타며 몇몇 악기들이 조명을 받아 반짝이고, 양 옆으로는 커다란 스피커들이 홀을 향해 언제든 강렬한 사운드를 내뱉을 준비를 하고 있다. 무대 앞 탁자에 박인열(44) 대표와 마주 앉았다. 긴 머리카락의 자유분방해 보이는 스타일. 누가 보더라도 음악 하는 사람이지만, 만 7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곳을 만들고 운영해온 장본인이다.


‘사람들이 찾게 만드는 공간을 만들자’
박인열 대표가 라디오스타의 문을 연 것은 지난 2008년 2월, 그가 서른일곱 되던 해였다. 처음은 아니었다. 이미 그 전해인 2007년 전북대학교 앞에 ‘와이키키브라더스’라는 클럽을 만들어 7개월 동안 운영한 경험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밴드활동을 했어요. 중간에 쉰 적도 있지만, 그 뒤로 계속 음악활동을 해왔어요. 그런데 음악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공간에 대한 열망 같은 걸 가지고 있어요. 아무 때나 편하게 연습할 수 있고, 또 같이 음악 하는 사람들과 만나 공연도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을 갖고 싶어 하는 거죠.”
‘와이키키브라더스’는 딱 그런 개념의 다목적 공간이었다. 막연하게나마 젊은이들이 많아 전북대 앞이라면 최소한 공간을 운영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그때, ‘사람이 많이 있는 곳을 내가 찾아갈 것이 아니라, 내가 정말 좋은 공연이 펼쳐지는 특별한 공간을 만든다면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올 것이다. 그런 공간을 만들자’고 다짐했다. 이듬해 바로 현재의 ‘라디오스타’를 만들었다. 1년 동안 정말 고생했다. 라디오스타를 운영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안하겠다고 다짐했던 레슨을 다시 했던 시간이기도 하다.
1년이 지나자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공연도 하고 파티도 하는 공간이 있다고 하니, 호기심 어린 시선을 가진 사람들이 주로 찾았다. 어떻게 알고 왔는지 외국인들도 많았는데, 그들 중에는 음악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 거의 프로수준에 이른 사람들도 몇몇 있었다.
“어느 날에는 단골이었던 외국인 친구 하나가 잘 안 되는 발음으로 이승철 노래를 부르는데, 정말 잘 부르더라고요. 그래서 몇 곡 더 불러보라고 했죠. 그 다음에 바로 그 친구에게 함께 밴드를 결성하자고 했습니다.”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밴드가 잘 나갔다. 밴드결성 이후 3년여 동안 연 70회 이상 전국각지에 공연을 다닐 정도였다. 음반까지 냈다. 라디오스타는 스텝에게 맡겨 두고 거의 매일 공연을 다니다시피 했다. 전국 각지의 수많은 클럽을 다니며, 클럽 운영자와 밴드들과 교류한 것은 덤이었다. 그 덤이라고 생각했던 네트워크가 박인열 대표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되었다.


연 100회 이상의 공연이 열리는 전문 공연장
3~4년에 걸쳐 형성된 인적네트워크로 라디오스타의 공연이 체계화되기 시작했다. 아무 때나 밴드가 섭외되면 열리던 공연이, 매주 정해진 요일과 시간에 열리게 되었고 무대에 서는 밴드도 지역을 넘어 전국화 되었다. 공연이 기획과 계획에 따라 열리게 되면서, 점차 라디오스타는 전문적인 공연공간으로서의 틀이 잡히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는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9시부터 2~3시간씩 공연을 한다. 공연 횟수만도 연 100회 이상이다.
“찾아오는 손님들도 바뀐 것 같아요. 처음에는 호기심에 삼삼오오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다면, 지금은 정말 공연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이 찾습니다. 귀로 듣는 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그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찾는 분들이죠.”
찾는 손님들로부터 평가도 썩 괜찮다. 특히 공연장으로서는 서울의 홍대 클럽 부럽지 않다고 한다. 공연장이 갖춰야 할 시스템은 다 갖추고 있고, 공간의 아기자기한 맛은 오히려 홍대 클럽보다 낫다고 박 대표는 자부한다.
밴드에게 ‘자궁과도 같은 공간’을 꿈꾸다
라디오스타를 운영하면서 많은 변화들이 있었다. 7년여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라디오스타는 다목적 공간에서 전문공연공간으로 진화했고, 박 대표는 연주자에서 공연기획자로 변모했다. 그 과정에 박 대표에게는 어떤 직업관 같은 것이 생겼다. 밴드들이 커나갈 수 있는 보다 본격적인 토양을 만드는 것이다.
“SNS를 통해서 봤던 것 같아요. 누군가가 ‘클럽은 뮤지션에게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곳’이라고 표현을 했는데, 딱 그게 와 닿았어요. 밴드에게는 내 음악을 실험하고 성장하는 무대를 마련해주는 곳이 바로 클럽이에요. 가장 낮고 어두운 공간이면서 또 그 어떤 음악을 하더라도 다 포용해주는 곳이 바로 이곳 언더그라운드 무대인거죠.”
박 대표는 지난 5월 ‘라디오스타레코드’라는 인디레이블을 만들었다.
“2014년에 일본과 대만에 몇 달 씩 공연을 갔어요. 그곳에서 정말 큰 충격을 받았어요. 거긴 수도권이고 지방이고 상관없이 클럽과 인디레이블이 활성화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각 지역의 클럽과 인디레이블의 네트워크가 잘 되어 있어서, 그 네트워크를 통해 밴드들이 여러 곳에서 공연하고 경쟁하면서 성장해 나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공연물을 올리는데 급급합니다. 꿈이 있는 밴드들은  서울로 올라갑니다.”
현재 라디오스타레코드에는 ‘주스프로젝트’와 ‘워킹애프터유’, 두 팀이 소속되어 활동 중이고, 특히 서울에서 활동 중인 ‘워킹애프터유’는 현재 해외공연을 추진 중이다. 내친 김에 박 대표는 인디레이블과 연계한 보다 종합적이고 전문적인 공간도 구상 중이다. 이제는 클럽 운영자를 넘어 공연기획자로서 지역의 인디밴드들에게 요람과 같은 공간을 만들고 싶은 이유에서다.
“레이블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훨씬 전문적인 공간이 있어야 해요. 레코딩실이 있어야 하는 거죠. 여기에 연습실과 사무실, 지금 라디오스타처럼 공연할 수 있는 공간까지 모두 갖추고 있는 종합적인 공간을 구상하고 있어요. 기왕에 시작했으니, 서울의 유명 뮤지션들이 이곳 전주로 녹음하러 내려오도록 해보고 싶습니다.”
그의 꿈은 꼭 실현될 것만 같은 예감이다. 가장 낮고 어두운 곳에서 흘러나오는 한 줄기 빛은 그 무엇보다도 강렬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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