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일이나 기술에 열정을 아끼지 않고 전념하여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경지에 이른 사람, 바로 '장인'이다.
최고의 안전성을 자랑하는 일본의 자동차 렉서스 생산공장에도 '장인'이 있다.
렉서스 자동차 공장에는 최고의 고수들이 지금까지도 생산을 책임지고 있다. 약 7천 여 명의 공장 직원 중 장인을 이르는 일본의 '타쿠미'는 열 아홉명. 7천7백명의 직원들 중 이 열 아홉 명의 모자에는 장인 '타쿠미'를 뜻하는 한자 '장(匠)'이 새겨져 있다. 공식 명칭은 렉서스 기술 전문가다. 아무나 될 수 없다. 훈련을 거쳐 만들어진다.
세계적으로 놀라운 현대적인 생산 시설을 보유하고 있지만, 제 아무리 기계가 발전한 들 결국 사람이 '중심'이라는 렉서스의 인적 자원에 대한 철학이 차에 고스란히 담기는 셈이다.
기계가 발전한들, 결국 사람이 '중심'
우리가 알고 있는 장인(匠人)은 단순히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장인은 마스터 목공이나 마스터 연주자처럼 숙달된 기능을 필요로 한다. 마스터가 되기 위해서 장인은 '1만 시간' 가량의 실습을 필요로 한다.
17명의 전주 명장들도 시간으로 가늠하기 힘든 숙련의 시간을 보냈으며 그들은 아직도 전통적인 수공업 제작방식을 고수한다. '손'이 아니면 안 된다는 그들의 작업철학은 단순한 고집이 아니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물건'에는 그것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뛰어난 기계여도 그들이 일일이 손으로 맞추고 엮은 물건처럼 하나 하나의 생명을 가질 수 없으며,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도 손 끝이 전하는 정교함이나 감각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랜 시간 쌓여온 사람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3년의 북남풍이 나무를 가공하고, 가마솥 그을음은 검정안료가 된다
대부분 장인들의 작업은 재료의 선택부터 시작된다. 전통공예기술제품이 대부분이 자연의 재원재료를 가공하기 때문에 시작부터 장인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딱 맞는 때를 지닌다.
전라북도는 물론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한지발 장인 유배근은 지금도 담양의 대나무를 직접 고른다. 대나무 표피를 벗겨내 삶고 말려 촉을 만들어 짜는 한지발에는 수분이 없는 대나무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겨울에 재료를 비축한다.
가야금을 만드는 악기장 고수환도 재료 선택부터 가공과정 모두를 직접 한다. 악기의 경우 2차 가공작업에서 나무를 삭히는 공정을 두는데, 자연환경에 그대로 노출시켜 건조시켜야 하는 일이다. 이런 과정에서 나무 마다 삭힘의 정도를 가늠하는 일은 오랜 경험을 통한 체득된 감각 밖에는 방법이 없다.
장인들의 이런 제작공정이 번거롭고 비과학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오랜 경험과 자연의 변화에서 터득한 경험과 지식은 그 시간이 검증해낸다.
단청장 신우순은 채색 안료 중 검정색을 직접 만들어 쓰기도 했다. 수년 동안 큰 가마솥 밑 그을음이 엉킨 것을 숟가락으로 긁어서 물을 붓고 갠 다음 불에 조려 검정색 안료로 사용했다. 화학안료의 입자가 매끄럽고 사용하기 편하지만, 목재를 보호할 수 있는 수명이 짧다. 고건축의 생명을 지속시키는 단청의 역할을 오롯이 뒷받침하지 못한다.
전통창호의 경우 김재중은 목제가공 작업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데, 여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바람의 방향과 시간이다. 느티나무, 살구나무, 오동나무 등이 재료로 사용되는데 북남풍이 부는 곳에서 3년을 말려야 한다. 이 과정을 제대로 거치치 않으면 헐겁거나 빡빡해서 꿰맞춤이 되지 않기 일쑤다.
손 가는 만큼 그 귀함은 변치 않는다
이렇듯 대부분 장인들 작업의 재료와 가공에 동원되는 1순위는 자연이다. 자연을 재료로 삼아, 자연환경에 그것들을 맡긴다. 예측할 수 없는 자연의 변화에서 살아남는 것만 그들의 제품, 작품으로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더해 이들의 제작공정에는 기계처럼 분과 초 단위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짧으면 한 달, 어떤 경우에 옻칠작업은 3년의 시간을 필요로 하기도 한다.
이렇게 완성되는 제품에는 특별한 매력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대를 잇는 오랜 수명을 지닐 수 밖에 없다. 시간을 들여 하나하나 손으로 만드는 노력만을 생각해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전통적인 수작업 제작방식은 양날의 검이 되기도 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손이 가는 만큼 높아지는 가격, 대량 생산이 어렵기 때문이다. 가치를 중심으로 보존되고 유지되는 현실인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한편으로는 무형문화재의 가치에만 방점을 둔 수단이나 정책 반복 보다는 새로운 해석을 더한 문화콘텐츠화 작업이 절실한 것도 시급한 문제이다. 무형문화재의 '종목'만을 지키고 보존하기 보다는 '작품'과 '제품'이 사람들과 만나고 어우러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수제작 방식이 지닌 양날의 검이 적절히 유용될 때, 그렇게 고이고이 옛 것의 명맥도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