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4 | [문화비평]
강준만의 문화비평
내부가 썩어있는데 밖에서 무슨 힘을 쓸 수 있나
구호 정치와 여론 조작
강준만 전북대학교 신방과 교수(2003-09-23 10:24:01)
정부 관계부처는 프로 야구를 적극 지원하라, 문교부와 문공부는 합동하여 여론기관을 통한 대대적인 홍보활동을 하라 TV중계방송을 골든아워에 많이 하도록 하라. 흑자가 될 때까지 면세 조치토록 하라. 지방 유지들이 관심을 갖도록 지역적 특성이 있는 응원을 하도록 하라. 고교 야구팬들을 끌어들이도록 하라. 각 구단주는 지혜를 짜서 최선을 다해 단시일 내에 성공토록 하라. 국민들을 보다 즐겁게 하라.
이 지시사항들은 1982년 1월20일 프로야구 구단주들이 청와대 오찬에 초대 되었을 때 전두환 대통령이 내린 것이다. 그 덕분에 오늘날 우리 국민이 프로야구를 몹시 사랑하게 되었으니 전대통령의 지극한 배려에 감사해야 하나? 그로부터 3년 후인 1985년 초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 각료회의의 개최 장소가 물색 중이던 때의 일이다.
당시 유력한 후보지로는 우루과이의 휴양지인 푼타엘스타, 캐나다의 몬트리올, 그리고 한국의 서울 이었다고 한다. 당시 우리가 원하기만 하면 그 회의를 유치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그랬다면 지금 우리가 '우루과이 라운드'로 부르는 것은 '서울 라운드'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어디 이름뿐인가. '서울 라운드'였다면 우리가 국제협상에서 제법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 정부는 그 기회를 거부했다. 86년 9월에 열린 아시안 게임과 중복된다는 것이었다. '스포츠 공화국'다운 발상이다. 이것이 바로 역대 정권들이 추구해 온 '국제화'의 본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나치게 내부 지향적이고 정치적이고 전시효과 적이다. 요즘도 너나 할 것 없이 '국제화'를 떠들고 있지만 달라진 게 별로 없다.
국민을 대상으로 하여 떠드는 '국제화'는 일단 믿을 게 못된다. 정책결정자와 집행자들 그리고 전문가집단이 국제화 되어야지 일반 국민이 무슨 상관이 있나 말이다. 그저 그럴듯한 구호를 열심히 외쳐대는 것으로 시대적 상황 변화에 대처하고 있다는 자기기만, 그리고 더 나아가 다른 무엇을 염두에 두고 구호로 대중을 기만하고자 하는 여론조작은 '지방화'의 경우에도 여실히 드러난다.
'국제화'의 일환으로 외쳐지는 '지방화'라는 구호는 어처구니없다 못해 코믹하기까지 하다. 최근 어느 중앙 일간지는 '지방화 2세기 포럼'을 개최하면서 그 포럼의 논의 결과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였다. 비단 그 신문뿐만이 아니라 모든 중앙 일간지들이 '지방화'니 '지방시대'니 '지방자치'니 하는 주제에 대한 보도나 전문가들의 견해를 싣는 데에 인색하지 않다. 어디 언론만 그런가? 정치인과 고위 관료들도 그런 단어들을 열심히 주워섬긴다.
좋은 일이다. 아주 좋은 일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공감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짜증마저 내게 되는 건 어인 이유에서일까? 그건 그런 논의가 대게 부분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지방의 현실을 너무 모른다. 절박한 현실 문제는 완전히 비켜간 채 미래지향적인 이야기뿐이다.
'지방'에 대해 열심히 떠드는 사람이 한결같이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들이 지방의 문제를 절실하게 느끼고 있을 리 만무하다. 그들은 지방이 안고 있는 문제엔 이해집단의 갈등 요소가 많다는 것을 꿈에서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듯 하다. 즉 수도권이 계속 비대화되어도 그것과는 무관하게 지방은 발전할 수 있다는 식이다.
전문가 집단이든 대학교수 집단이든 우리나라에서 말깨나 하는 사람들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보신주의(補身主義)다. 그 누구의 비위도 상하지 않게 하면서 우리사회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겠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 가능할까? 비판을 받아야 할 사람은 하나도 없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은 단지 무얼 몰라서 일어난 일이란 말일까?
정치인이 모든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는 말을 하는 건 잘한다고 칭찬할 수는 없어도 이해는 할 수 있다. 그러나 왜 전문가들이라는 사람들마저 그 모양인가? 적어도 지방의 문제에 관한 한 그런 식의 보신주의는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할 뿐이다.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입바른 소리를 할 자신이 없으면 제발 전문가를 자처하지 말일이다.
'국제화'라는 구호는 그것이 내부갈등을 은폐하는 데에 매우 효과적이기 때문에 등장한 것에 불과하다.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고 비리를 척결하는 일이 '국제화'에 역행하는 것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말이다. 전문가집단들도 마찬가지이다. 그 누구로부터 싫은 소리를 듣지 않고 전문가임을 뽐낼 수 있는 주제를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국제화'이상 더 좋은 게 있을 리 만무하다. 그들은 비판을 해도 모든 국민을 싸잡아서 비판하기 일쑤다.
심지어 어떤 이는 우리 한국인은 '한국인끼리'만 어울리는 못된 습성을 갖고 있다고 질타한다. 재미교포들조차 결혼도 한국인끼리만 하는데 그건 '국제화'에 역행하는 의식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미국인들의 눈으로 보면 한국인들의 마음은 질식하리 만큼 닫혀있다는 주장에 이르러선 다소 어안이 벙벙해진다.
미국인의 시각에서 보자면 한국인인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폐쇄적인 것처럼 보이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그렇게 미국인들의 눈을 통해서 우리를 보는 것이 온당할까? '인종의 용광로'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다인종 다민족이 어울려 사는 미국의 관점에서 한국인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까?
우리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독특한 특성을 갖고 있는 '단일민족'이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언어도 '단일'이다. 그런 특성은 좋든 나쁘든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특성을 버리는 것이 '국제화'라는 말인가? 미국인들이 이해할 수 있게끔 그들의 비위에 맞추어 사는 것이 '국제화'란 말일까?
유태인이나 일본인들도 한국인 못지않게 '끼리끼리' 어울리는 습성을 가졌지만 그들이 '국제화'에 실패해 망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우리나라처럼 사대주의(事大主義)가 심하고, 서구 문화가 흘러넘치는 나라도 없는데, 외국인하고 잘 어울리지 않는 것이 '국제화'에 역행하는 일이라니 어째 좀 이상하다.
언론의 '국제화론'도 그야말로 가관이다. 해외여행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주장에서 외국어에 미쳐야 한다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어찌 그리 졸렬하고 무식한지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외국잡지에 나온 기사를 출처도 밝히지 않고 자체 취재한 것처럼 기만을 일삼는 신문들이 앞 다투어 '국제화'를 떠들어대니 그 '국제화'란 놈의 팔자도 기구하기 짝이 없다.
'국제화'란 그런 게 아니다. 제 분수에 맞게 자기 실속 차리는 것이 '국제화'의 첫걸음 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개혁이 곧 '국제화'다 내부가 썩어 있는데 밖에서 무슨 힘을 쓸 수 있나. 우리는 '국제화'를 빙자하여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는 일을 매도하고 사회적 약자에게 고통을 주는 정책을 정당화하려는 행위를 경계해야 한다. 이젠 여론조작을 위한 구호정치에 신물을 낼 때도 되지 않았겠는가.
강준만 / 전남 목포에서 56년에 태어나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아대 신문학과와 위스턴신대 신문방송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언론 비평문화를 뿌리내리는 작업에 큰 역할을 해오고 있는 그는 저서로는 「한국 언론과 민주주의의 위기」「권력은 TV에서 나온다」외 다수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