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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 | 문화현장 [문화현장]
잽이들이 벌인 흥겨운 놀이 '놀부야 고맙다'
동남풍의 '복 타러가세'
정훈(2016-01-15 11:27:35)

 

 

겨울 한복판에서 동남풍(대표 조상훈)의 농악을 중심으로 한 연희극 '복 타러가세'를 만났다. 거의 매년 올려져 온 동남풍의 정기공연. 이번에는 어떤 모습으로 관객과 소통하고, 어떤 감동을 전해줄지 잔뜩 기대되었다. 
흥부와 놀부라는 친근한 이야기 소재를 바탕으로 해서일까? 연주뿐 아니라 극적인 요소가 함께 하는 연희극이어서일까? 유독 추웠던 날씨에도 공연장을 들어서니 아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들이 1층 가득 자리하고 있었다. 
객석에 불이 어두어지자 다소 시끌벅적하던 관객석은 잠시 조용해졌지만, 마당쇠의 등장과 함께 관객석은 금새 다시 들썩이기 시작했다.
맛깔 나는 춤과 입담, 그리고 재치. 양쪽 팔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마당쇠에게 박수와 함성을 마음껏 내 놓으며 우리는 오늘의 주인공, 동남풍의 모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관객석 뒤에서 들려오는 북 소리. 
거의 매번 판 굿 연주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농악단의 입장 모양새이지만,  그럼에도 마당쇠 덕에 좀 더 준비되어 있던 관객들은 더욱 환호하며 동남풍과 배우들을 맞이하였다. 놀부와 놀부처, 그리고 아직은 역할을 알 수 없었던 이들의 화려한 등장은 동남풍의 장단을 타고 노래와 함께 무대까지 이어졌다.    
순식간에 무대 위에서 벌려진 동남풍의 한 판. 놀부의 첫 번째 박도 그 순간 쩍 하고 벌어지며 시작된 첫 번째 마당 '놀부의 인(因)'. 
박 안에서는 놀부가 기대한 금은 고사하고, 뜬금없이 지팡이를 든 노생원이 나타났다. 무대 아래 자리 잡은 수성팀들의 연주가 함께 하니 노인의 익살스런 춤에 더욱 흥이 났다. 세상 모든 일에 원인이 있다 했던가. 나쁜 방법으로 욕심을 부리며 살아 온 놀부가 자신의 과거를 숨겨보려, 노생원이 내 놓은 주머니에 아무리 돈을 갖다 넣어도 그 주머니 속은 어느 덧 텅텅 비워져버린다. 채워도 채워도 끝없는 것이 꼭 인간의 욕심과도 닮았다.
그렇게 재산을 탕진하고도 또 다시 욕심을 내는 놀부는 또 다시 박을 타기 시작하였고 두 번째 마당 '놀부의 연(緣)'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상여꾼들이 나타났다. 제대로 한 소리 하는 상여꾼의 상여소리. "여보소 상여꾼들, 세상사가 쓸데없다. 우리도 죽으면 이 길이요, 놀부도 죽으면 이 길이로다." 
놀부의 땅도 집도 결국 죽음 앞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 죽음을 두려워 한 놀부는 남은 재산들마저 상여에 실어 보낸다. 
재산을 다 잃고 이제는 반성할 만도 하다만, 또 한번 도박하듯 박을 탄다.
드디어, 세 번째 마당 '놀부의 흥청(興淸)'이다. 세 번째 박이 깨어지자 드디어 본 공연이 시작된 듯 동남풍과 각설이, 민요꾼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제일 잘 나간다는 광대패들, 동남풍의 개인놀음과 민요꾼들의 구성진 노래, 어여쁜 양춘의 춤사위, 각설이의 타령까지 세 번째 마당은 그야말로 볼거리 들을거리의 호화잔치를 이루었다. 놀부는 주색에 빠져 돈을 마구 써 댔지만, 관객은 농악의 재주와 노래들에 푹 빠져 넘치는 흥에 사로잡히었다. 간간히 보이는 동남풍의 깜짝 연기는 관객들의 미소까지 끌어내었다.
이러한 상황에 신세한탄하며 등장한 놀부처는 코믹한 연기와 노래와 더불어 창부타령을 선사하며 힘들게 숨겨온 본 노래 실력을 뽐내 주었다. 
이제 모든 것을 다 보여준 듯했던 그 때, 관객석에는 박을 상징하는 큰 풍선들이 관객들의 손을 거쳐 무대 위로 옮겨지며 4번째 마당이 시작되었다. 모든 것을 다 잃은 놀부가 마지막 남은 박을 다 타보자며 풍선을 마구 터뜨리는 장면은 이벤트적인 신나는 부분이었지만, 아무것도 없는 박임을 알면서도 계속 터트릴 수밖에 없는 놀부의 모습이 처절해 보였던 것은 놀부를 통해 내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었을까.
사실 권선징악의 대표적인 전래동화인 흥부와 놀부의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흥부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끊임없이 애 쓰지만, 그럴수록 더욱 망해가는 놀부의 캐릭터가 주목받는 이유는 놀부의 이러한 모습이 우리 현대인의 모습과 참 닮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놈은 다시는 잘못을 못하도록 죽여버려야 한다는 대포수를 기어코 말리며 동남풍의 대표가 관객에게 물었다.
" 어쩔까요 여러분. 이 놈을 한번 만 더 살려줄까요?"
엇갈린 관객들의 반응. 다시 한번 되풀이해서 물으니 살려주자고 한다. 관객들에게 대답에 대해 책임지라며 물러서는 대포수와 함께 마지막 동남풍의 연주가 한번 휘몰아치며 공연은 막을 내렸다. 
단 한 번도 무거운 장면이 없었던 공연이었지만 나는 꽤 진중한 질문을 받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우는 소리 한번 없이 신나게 보던 아이들. 그 아이들은 신나는 이 공연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새로운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는 것이 쉽지 않은 과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관객들은 뜻 깊은 선물을 받았다. 연말에 이렇게 복 있는 공연을 선사해 준 동남풍 가족들, 그리고 배우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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