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요시다 아키미의 베스트셀러 만화를 각색한 <바닷마을 다이어리>로 돌아왔다. 바닷가에 위치한 '카마쿠라'라는 마을에 살고 있는 세 자매는 15년 전에 다른 여자를 만나 집을 떠났던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전해 듣는다. 재혼 후 한 번도 아버지를 만난 적이 없던 자매들에게 그에 대한 기억은 흐릿하게 남아있고 그만큼 감정도 무뎌졌다. 아버지는 두 번째 부인과 사별하고 현재의 세 번째 부인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말기암 판정을 받아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녀들은 담담한 표정으로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여한다. 그곳에서 아버지의 두 번째 부인이 낳은 딸 '스즈'와 조우를 하고, 큰 딸인 '사치'의 권유로 그녀는 세 자매와의 동거를 시작한다.
언니들의 따뜻한 배려에도 불구하고, 한 가정을 파탄 낸 여자의 딸이라는 낙인은 내면화되어 스즈를 자꾸 움츠려들게 한다. 결국 스즈는 부인이 있는 남자를 만나는 잘못을 저질렀던 어머니를 대신해 사치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사치 역시 스즈의 어머니처럼 유부남과 교제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사치는 지금 하고 있는 사랑으로 인해 그동안 원망했던 사람들의 입장에 서게 되었고 그것은 그녀가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에 변화를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스즈는 어머니와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언니를 책망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했던 사과가 의도치 않게 언니에게 상처를 주고 말았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할 뿐이다. 그녀의 사과는 소위 '불륜'의 본질적 해악에 기반 한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사랑하는 누군가가 받아야만 했던 상처에 기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영화는 불륜을 도덕적 잣대로 재단하지 않는다. 또한 그 불륜으로 아버지를 잃게 된 세 자매를 동정어린 시선으로 재현하지도 않는다. 사회적 가치 판단에 따라 정의된 불륜이라는 부정적 관계는, 사실 그러한 명명 이전에 그 근원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 사랑이란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이 발생하며 아내와 자식들이 있음에도 불구하도 막을 수 없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사회적 층위에서는 불륜에 불과할지라도 자연적 층위에서는 그저 사랑일분이다. 그리하여 영화에서 그 사랑은 뜻하지 않게 가족이 흩어지는 원인이자 또 뜻하지 않게 새로운 가족이 생기는 계기라는 측면에서 의의를 가진다.
아버지가 세 번째 부인과 재혼한 온천 마을에서, 그와 스즈가 즐겨 찾았던 언덕에서 바라본 풍경은 카마쿠라의 그것과 닮아 있다. 아마도 아버지는 그 풍경을 바라보며 세 자매를 그리워했을 것이고 스즈는 그 풍경 속에서 아버지의 추억을 엿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스즈는 카마쿠라의 집과 오래된 카페에서 각각 그곳 특산물인 '잔멸치'로 만든 덮밥과 토스트를 맛보게 되는데, 사실 이것들은 아버지가 즐겨 해줬던 음식들이다. 그녀는 카마쿠라에서 아버지의 흔적들과 우연히 마주하면서 끝까지 이곳과의 끈을 놓을 수 없었던 아버지의 간절한 마음을 확인한다. 그렇게 아버지의 사랑은 카마쿠라의 자연과 공명한다.
영화의 마지막. 친했던 마을 아주머니의 장례를 치른 후, 네 자매는 해변을 거닌다. 문득 사치는 아버지가 참 다정한 분이였던 것 같다고 말한다. 스즈라는 '보물' 같은 동생을 남기고 떠났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가족을 버렸다는 아버지의 죄책감과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가족의 상처를 스즈가 어루만져 준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 자신들을 떠났지만, 아버지(또한 배다른 세 언니들)를 닮고 또 아버지와의 추억들을 공유할 수 있는 스즈의 존재는 세 자매에게 과거 아버지가 부재했던 시간을 만회해준다. 그리고 앞으로 세 자매는 스즈를 위해 아버지의 빈자리를 든든하게 채워줄 것이다. 아버지의 불륜은 한 가정을 파괴한 원인이 아니라 새로운 가족 구성원을 탄생시킨 계기로 전회한다. 그것은 새 생명의 탄생이라는 자연의 순리를 우위에 뒀기 때문에 가능한 시각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앞서 생명의 탄생과 죽음이라는 끊임없이 순환하는 자연의 일부이다. 그리고 그 순환을 멈추지 않게 해주는 동력은 바로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