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먹방, 쿡방이 대세다. 음식에 대한 관심과 이와 관련된 프로그램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소득수준이 늘면서 발생하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이웃나라 일본의 음식과 관련된 콘텐츠의 양이나 질을 비교해 보면 대한민국은 이제 막 본격적인 미식담론이 펼쳐지는 단계에 진입한 듯하다. 미식은 무엇을 먹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먹는가 다. 비싸고 맛있는 음식을 탐식하는 것이 미식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먹고 그 음식이 가진 겉과 속을 꿰뚫어 보는 안목을 가지고 먹는 것이 음식을 제대로 즐기는 미식가라 할 수 있겠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칼과 황홀의 작가 성석제는 흔치 않은 미식가중의 미식가라 할 수 있겠다. 먹는 행위가 단순히 먹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음식 속에 숨겨진 맛의 원리와 음식과 관련된 인문학적인 담론을 함께 즐기는 수준까지 도달한 것이다.
성석제의 칼과 황홀은 음식이 주는 즐거움을 다양한 측면에서 정말 유머러스하게 보여준다. 칼과 황홀을 읽다 보면 음식이 주는 원초적인 쾌감을 넘어 왜 음식이 사랑이고 추억이며 한편으론 철학이고 정치인지를 느끼게 해준다. 그 만큼 음식은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음식의 내면을 살펴볼수록 우리의 삶을 더 풍부하게 해주는 강력한 매개체라는 것을 칼과 황홀을 통해 실감할 수 있다.
칼과 황홀 초반에 이런 일화가 있다. 면 소재지 중국요리집 용궁반점이 잘되자 그 앞에 경쟁자가 펭귄반점을 차렸다는 이야기다. 웃음을 넘어 음식 자영업자의 치열한 삶의 일면을 느끼게 해준다. 나는 음식과 관련된 책을 읽으면 느낌이 가는 내용에 줄을 긋고 음식저널이라는 나만의 노트에 기록하는 습관이 있다. 이런 습관을 반복하다 보니 15권의 나만의 음식저널이 만들어 졌다. 그래서인지 음식과 관련된 대화가 있는 곳이라면 어떤 주제이던지 항상 풍성한 말의 만찬을 즐기곤 한다. 게다가 음식에 관한 지식은 모든 사람이 관심을 갖는 아주 강력한 대화의 매개체가 된다.
성석제의 칼과 황홀을 읽고 밑줄을 그었던 내용을 일부 인용해본다.
"인류가 좋아하는 맛의 대부분은 지방에서 나온다"
"비 오는 밤 마음에 맞는 따뜻한 술집에서 청춘남녀와 무릎을 맞대고 앉아 막걸리를 마시면서…그 심금의 떨림은 도저히 잊을 수 없다"
"여행에서 남는 것은 사진과 먹는 것뿐이라니까"
"청어를 구울 때 뿌린 소금이 단백질과 미네랄의 맛을 힘차게 끌어냈다"
"우리 맛을 책임지는 간장과 된장 고추장이야말로 글루탐산의 본산이다"
"생활에 중독되는 일이 없듯 순전히 막걸리 때문에 중독되는 경우는 본적이 없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작가가 가진 음식에 대한 다양한 관심이 음식을 즐기는데 어떤 도움을 주는 지 간접 체험할 수 있다. 음식이 단순히 배고픔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끝나지 않고 더 나아가 그 안에서 우리의 삶을 보고, 사랑을 느끼며, 사회와 공동체를 생각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음식문화가 발달된 프랑스나 일부 유럽국가에서는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미식교육을 시킨다. 우리 주변에 나는 식재료를 공부하고, 제대로 먹는 법을 체험하고, 바른 먹거리 문화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지식을 가르치고 체험하게 한다. 칼과 황홀은 음식이 주는 즐거움과 추억뿐 아니라 그 음식의 겉과 속을 예리하게 파헤치면서 음식이 줄 수 있는 다양한 기쁨을 만끽하게한다. 국수하나 먹으면서 무슨 생각을 그리 많이 하고 무슨 의미부여를 한단 말인가! 음식이 가진 1차원적인 기능만을 생각한다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음식이 우리의 모든 것이고 음식을 통해 우리가 지금보다 10배 100배 더 다채로운 삶을 살 수 있다면 다시 한번 음식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 성석제의 칼과 황홀은 음식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즐거움의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또한 음식을 통해 우리 사회의 음과 양을 바라본다. 음식이 자기만의 인생이고 철학이 되는 이유다. 칼과 황홀은 내가 읽은 음식관련 책 중에 가장 유머러스하고 맛깔난 문장이 많은 음식에세이중의 하나다. 하루 세 끼 먹는 음식을 다채롭게 바라보는 관점을 즐길 수 있어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인생의 멘토 중에 한 분이 해준 말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자는 책사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데 돈을 아끼는 자다" "음식은 결국 철학이다" 음식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이 달라질 수 있다고 감히 말해본다. 칼과 황홀의 작가 성석제 씨도 음식을 통해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음식에 관한 행복을 느껴 왔음을 책의 곳곳에서 확인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생에 관한 문구다.
"인생은 음식남녀다" 맛있는 음식과 술, 즐거운 음악, 그리고 남녀의 대화가 있는 그곳이 천국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