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윤이상, 이중섭이 거닐던 강구안 골목
남해의 푸른 바다, 섬들이 점점이 떠있는 한려수도해상국립공원의 중심에 위치한 통영.
통영은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설치했던 삼도수군통제영의 유적들이 남아있고, 20세기 우리 문화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문인과 화가, 음악가의 고향이자 예술적 심상이 되기도 한 지역이다.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적 가치, 풍성한 먹거리만으로도 충분히 관광명소가 되고도 남을 자원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최근 통영이 주목받는 요소가 또 하나 생겨났다. 바로 지역공동체가 동피랑 벽화마을과 강구안 골목, 서피랑 마을 등이다.
통영 구도심의 강구안 골목. 강구안은 통영 구도심을 끼고 있는 호리병 모양의 항구를 가리키는 말이다. 과거 통영의 명동이라 불렸던 강구안 골목은 도시 중심의 이전과 함께 쇠락한 구도심이 되고 말았다.
2013년 시작된 강구안푸른골목만들기 사업은 상인과 주민들을 묶어내는 것부터 첫발을 내딛었다. 함께하는 거리 청소부터 가게 앞 화단 가꾸기 등 상인들이 직접 참여해 바꿔나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골목 변화의 키포인트는 바로 문화요소와의 결합이었다. 과거 유치환, 백석, 윤이상, 이중섭 등 기라성 같은 예술인들이 강구안 골목과 맺었던 인연들을 조형물로 형상화했다. 미술인들이 참여해 윤이상의 달무리, 이중섭의 물고기를 테마로 한 조형물을 만들었다. 상점의 간판들도 재활용 자재를 활용한 미술간판으로 교체됐다.
청마 유치환은 강구안 골목에서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다"고 노래했고,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과 박경리도 이 골목을 드나들며 영감을 얻었다. 백석은 사랑하는 통영 처녀 '난'을 만나러 왔다가 허탕치고 강구안에 있는 항남동 골목 대폿집에서 술에 취했다고 전해진다.
찾아가기
ㆍ통영은 기차가 다니지 않아 대중교통으로는 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통영시외버스터미널은 시내에 있지 않아 시내까지 또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동피랑마을과 강구안 등은 버스 문화마당이나 서호시장 정거장에서 내리면 된다.
ㆍ통영시내 관광지는 거의 다 걸어서 다닐 수 있다. 전혁림미술관-해저터널-윤이상기념관-강구안 등이 이어져 있어 도보로 이동이 가능하다.
이 골목에 들어서면
ㆍ도보로 이동이 가능한 윤이상기념관도 함께 챙겨 들러보면 좋다.
ㆍ길을 떠나기 전 유치환, 백석, 박경리 작가의 작품을 읽고 간다면 골목 구석구석이 더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길을 걸으며 상가나 어르신들에게 작품 속 또는 작가의 추억이 어린 곳을 물어 찾아가보는 재미도 그만이다.
색과 글을 입은 언덕, 동피랑과 서피랑
바다로 향한 풍경을 더 시원하게, 그리고 통영 강구안 일대와의 어우러짐을 볼 수 있는 곳은 동피랑이다. 강구안에서 '동쪽 절벽(혹은 언덕)의 마을'이란 뜻을 지닌 동피랑은 원래 통영항 최고의 뷰포인트로 오랜 시간 사랑받아오다 '벽화 마을'이 되면서 통영 여행의 주인공이 되었다. 마을 주민보다 골목길을 오가며 벽화에 기대 사진 찍는 여행객 수가 훨씬 더 많아진 지 오래다. 옛 항구 마을의 조악한 길과 소박하다 못해 아슬아슬했던 담벼락이 멋스러운 예술 마을 길로 바뀐 것이다.
동피랑 반대편 서피랑은 서쪽 벼랑이란 뜻을 가진 언덕마을이다. 서피랑에는 아픈 과거가 있다. 항구가 번성하던 시기 이곳에는 윤락촌이 형성돼있었다. 현재 그 자리는 모두 철거됐지만, 그 시절을 살았던 통영사람들의 기억은 여전히 산뜻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우고 싶은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피랑은 박경리 선생의 생가가 있던 곳이고 그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의 배경이 된 지역이기도 하다.
벽화마을로 유명한 동피랑의 테마가 벽화라면 서피랑은 색과 글을 선택했다. 골목의 담벼락은 따스한 파스텔톤으로 칠해졌고, 곳곳에 박경리 선생의 시가 자리 잡았다. 숨박꼭질 하듯 만나게 되는 크지 않은 조형물들도 마을에 잘 녹아들었다.
찾아가기
ㆍ동피랑 마을은 검은색으로 생긴 길을 따라 쭉 오르면 된다. 천사 날개 벽화를 찾으면 쉽다. 서피랑 마을은 동피랑을 마주하는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이 골목에 들어서면
ㆍ통영을 대표하는 관광지가 되다보니 수많은 관광객들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마을인 만큼 예쁜 벽화를 구경하고, 마을 꼭대기에서 아름다운 통영의 모습을 조용히 감사하는 에티켓을 지켜주자.
ㆍ벽화를 감상하는 재미 못지 않게, 길을 걷고 마을을 오르며 만나는 통영 바다 전망도 놓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