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교수는 끊임없이, 그리고 우직하게 자연을 관찰했다.
자연이나 과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관찰이 아무 의미가 없을까?
우선 관찰은 관찰자 자신도 제대로 알게 해 주는 힘이 있다. 자신이 끌리는 대상이 아니면 오래, 자세히, 집중해서, 생각하며 볼 수 없다. 자신을 알아가는 첫 걸음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할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라고 한다면 관찰은 그것을 찾게 해 주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뿐만 아니라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알게 해 주어 새로운 앎의 세계로 이끈다.
딱따구리 아빠 김성호 교수의 강연에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초등학생부터 칠순의 노인까지 '딱따구리' 이야기를 듣기 위해 발길을 했다. 아니 딱따구리 가족의 삶을 통해 마음의 온도를 높이고 싶은 기대를 품고 강연을 찾았다. "오신 분들 중 단 한 분이라도 마음의 무엇이라도 얻어가길 바랄 뿐"이라고 강연섭외를 위해 몇 차례 오간 연락 중 속내를 밝힌 김 교수의 이야기처럼.
김 교수의 '관찰생활'은 자연의 모든 것과 닿아있다. 그가 관찰한 것은 딱따구리 가족이었지만 그와 우리가 만난 것은 삶의 진리이다.
7년 전 펴낸 『큰오색딱따구리의 육아일기』로 주목을 받은 생명과학자 김성호 교수는 자연에 깃든 생명을 찾아다닌 지 25년째이다. 고목나무에 둥지를 틀기 시작한 큰오색딱따구리의 이야기를 50일 동안 움막에서 지내며 관찰하고 기록한 〈큰오색딱따구리의 육아일기〉나 〈동고비와 함께 한 80일〉 〈까막딱따구리 숲〉과 같은 생태 에세이로 수많은 독자들을 감동시켜 왔다. 자연의 생명을 관찰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일에 평생을 건 그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장하다, 꽃을 피워낸 너!
"행복하십니까?"
강연의 첫 질문이었다. 객석에서는 웃음소리와 함께 '행복하다'는 대답이 더러 나왔다. 과학자가 어떤 '행복'에 대해 이야기할지 사뭇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이 행복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을 더러 합니다. 그러면서 행복에 대한 기준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저의 경우에는 항상 곁에 선생님이 있는 사람이 행복하지 않았을까. 그런 면에서 나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여러분들 마음먹기에 따라 여러분의 선생님이 되어주실 분입니다. 한 분은 강 선생님, 산 선생님, 또 한 분은 들 선생님. 오늘은 산 선생님이 저에게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중심으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김 교수는 그가 자연에서 찍은 몇 컷의 사진을 준비해왔다. 그리고 몇 개나 맞출 수 있는지 퀴즈를 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띄엄띄엄 대답을 하긴 했지만 전부 다 정답을 맞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는 찬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말조개, 수련, 달견, 박주가리, 용담, 솜나물, 하늘다람쥐, 너구리 발자국. 이 자리에서 인연이 닿았으니 이름이라도 한번 불러주면 어떻겠느냐며 다 같이 각각의 자연에 붙어있는 이름들을 불러주었다.
"이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허리를 굽혔고 무릎을 접었고 낮게 엎드렸습니다. 그런 시간이 쌓이니 이 친구들이 제게 뭔가 들려주었고, 제 가슴에도 고이는 것이 있었습니다."
김성호 교수는 과학은 관찰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하나씩 하나씩 알아가는 것, 김 교수는 누구를 알아도 대충 알려 하지 않았으며, 다가서서는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그마저도 부족하다 싶으면, 눈을 맞추고, 오래 눈길을 마주치는 일을 해오기 시작한 것이다.
누가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가? 큰오색딱따구리일까 아니면 김성호 교수일까.
아니면 강연을 들으러 온 사람들일까 생각해본다.
아마도 큰오색딱따구리가 제일 행복한 삶을 사는 생명체일 것 이다.
'행복하다'란 말을 새에게 붙이는 게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행복한 삶이라는 게 본래 주어진
삶을 제대로 힘껏 산다는 본질적인 생각에 이르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그는 실험 과학자였다. 그가 무슨 연유로 자연과 그리고 새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던 것일까. 식물 유전공학을 전공한 김 교수는 1991년 2월 남원에 새로 생긴 대학에 부임하게 되었다. 실험실과 연구실 열쇠를 받고 그곳에 갔더니 참담할 정도로 기자재가 없었다. 그렇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뭔가 있었다. 지리산 자락이 보였다. 그 앞에는 섬진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김 교수는 지리산과 섬진강을 실험실로, 자신의 몸을 장비 삼아 곳곳을 다니기 시작했다.
"발자국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많아요. 단순히 남겨진 발자국에 의해 길과 방향 외에도 말이죠. 그들이 남긴 발자국을 통해 누구의 발자국인지 알 수 있고,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알 수 있고, 같이 왔다면 누구와 왔는지, 짝과 더불어 어린 새끼들도 같이 왔는지, 그 새끼들은 몇 마리였는지…. 발자국을 통해 눈에 보이진 않지만 그 상황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어요"
남들은 몰라도 그 자신만은 아는 족적. 김 교수는 동물 발자국을 보고 온 날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자신만 아는 족적. 그런 족적들을 하나하나 열어보면서 반성하곤 했다.
시간을 투자해서 하나도 모르다가 웬만큼 알게 되니까 그에게 병이 하나 생겼다.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언가 하나씩 알아갈 때, 그는 아침에 눈을 뜨면 가슴이 두근거렸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떴는데 덤덤하고, 가슴에 두근거림이 사라져버렸다.
"두근거림이 없으면 의미가 없는 삶이에요. 제게 두근거리지 않는 그 순간이 온 거에요. 제가 어중간하게 알아서 생긴 병이니까."
그는 아내에게 고백했다. 새로운 세계에 도전해야겠다고, 그러나 그 세계에 들어서면 자신은 가족들에게 부족한 사람이 될 것 같다고 미안해했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오히려 "나는 하루를 살아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사람과 살고 싶다"며, 그의 새로운 도전을 지지해주었다.
"새의 세계로 입문한 지 3년이 되던 해, 우리나라의 새들을 다 만나버렸어요. 국내에 있는 새 종류가 총 538종이에요. 다 만나는데 오래 걸리지가 않아요. 대신 깊이는 없죠.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사진 찍는 일을 했는데, 가슴은 또 식고 말았죠. 덤덤해져요. 열심히 살았지만 남이 하는 것을 따라가느라 바빴구나. 그저 하나하나 뒤 따라갔구나. 나만의 이야기가 없구나. 좋아. 그러면 마지막 나만의 세계로 한번 들어가 보자."
죽은 나무에 생명을 들이는 딱따구리
"내 가슴에서 빛나는 것을 찾은 날이니, 내 생일은 헷갈리지만 이 날만큼은 놓칠 수 없었습니다. 2007년 4월 6일이었습니다. 딱따구리를 만났는데 아주 멋있었습니다. 죽어가는 나무에 딱따구리가 파내기 시작한 '그것'이 내 가슴을 쾅! 쳤던 것이에요."
생명과학의 출발은 관찰이다. 자연관찰에 '다시보기'란 없다. 대상에게 모든 것을 던지는 과정이 중요하다. 김 교수는 큰오색딱따구리가 집을 짓는 나무 앞에서 보낸 50일 동안 새벽 4시부터 밤 10시까지 관찰했다. 딱따구리 한 쌍이 둥지를 짓고 알을 낳고 새끼들을 길러내는 과정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필요하면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그만의 '세계'가 그렇게 열리기 시작했다.
"딱따구리는 나무 파내는 데 선수에요. 딱따구리가 둥지를 짓기 위해 몇 번 정도 쪼아댈 것 같습니까? 나는 세어봤어요. 그래서 정확히 말할 수 있어요. 대략 12,000번 정도 됩니다. 간절하게 한번 딱! 하고 칠 때마다 조금씩 파여지는 데, 그 자그마한 부리로 쪼아서 집을 짓는데 무지 오래 걸린다는 것이에요."
큰오색딱따구리는 비가 들어오지 않을 방향으로 구멍을 낸다. 큰오색딱따구리가 만든 둥지는 다른 새들에게 최상의 보금자리여서 숲의 많은 생명체들이 딱따구리의 둥지를 넘본다. 그뿐만이 아니다. 밤에도 둥지를 뺏으려는 야행성 동물들이 도사리고 있다. 자연이 항상 평화로울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우매한 인간들의 착각일 것이다.
"암컷 딱따구리는 짝짓기하기 전에 수컷이 가져온 선물을 보고, 둥지 파는 능력도 봅니다. 아주 신중하죠. 어느 날부터 딱따구리가 잠시도 둥지를 비우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알을 낳기 시작한 거죠. 두 시간 간격으로 교대하며 알을 품습니다. 밤에는 수컷이 지킵니다. 암컷은 다른 데서 자고 해가 뜰 무렵에 와서 교대해줍니다. 딱따구리는 띠링띠링, 탁탁탁탁. 이런 신호를 주고받습니다. 꼬박 2주간 알을 품는데 나중에는 배에 있는 털을 모두 뽑아냅니다. 맨살로 알을 품는 게 온기를 더 잘 전할 수 있기 때문이죠."
수 만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그에게 가장 의미 있는 사진. 실제 『큰오색딱따구리의 육아일기』의 표지에 실린 사진이 바로 배에 있던 털을 뽑아낸 큰오색딱따구리 수컷이라고 한다. 세상에 저보다 더 아름다운 부성애가 어디 있을까. 김 교수의 큰오색딱따구리를 관찰한 50일간의 이야기는 단순한 자연관찰일지가 아니었다. 아버지의 아들이자 아들의 아버지인 그가 이 큰오색딱따구리 한 쌍을 지켜보며 자신의 삶을 성찰했을 가슴 벅찬 시간들이 오롯이 느껴지는 한편의 서사시였다.
우리의 삶과 무엇이 다르리
"붉은배새매가 둥지 근처에 한 시간 앉아 있으면 큰오색딱따구리는 한 시간 동안 새끼에게 먹이를 못줍니다. 관찰해보니 붉은배새매는 네 시간까지도 앉아 있더군요. 까치는 새의 세계에서 깡패 같은 존재입니다. 이런 친구들이 나타나면 딱따구리 한 쌍은 둥지에서 확 나와 버립니다. 거기 알이 없는 것처럼, 잠깐 있다가 나간 것처럼 위장하는 것이죠. 파랑새는 남의 어린 새를 많이 죽이고 다닙니다. 이런 방해꾼들 속에서 기적적으로 지켜낸 어린 새가 드디어 스스로 세상과 마주할 시간이 왔습니다. 엄마새는 모습을 안 보인 지 꽤 되었고, 아빠새 마저 오지 않습니다. 한참 만에 나타난 아빠새가 먹이를 물어오긴 했는데 안 줍니다. 새끼들을 나오게 해야 하니까, 이제 먹이를 안 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큰오색딱따구리는 더 큰 새들의 위협으로부터 새끼를 지키기 위해 위장을 하고, 하루에 60번 새끼에게 모이를 가져다준다. 그렇게 죽을힘을 다해 길러낸 새끼를 떠나보내기 위해 먹이를 물리지 않고 지켜본다. 스스로 할 수 있을 때까지. 새끼가 태어나면서부터 성장해 독립할 때까지 새들은 어쩌면 사람보다 더 영리하게 양육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음 날 아침엔 첫째 새가 안 보입니다. 둘째만 둥지에 남아 있습니다. 혼자 남은 둘째에게 아빠가 계속 먹이를 가져다줍니다. 그날도 먹이를 물고 왔는데 둥지가 비어 있습니다. 둥지가 빈 걸 보고 아빠새가 뒤로 확 물러납니다. 먹이를 문 채 나무를 다 뒤지고 주변까지 네 시간에 걸쳐 새끼를 찾아 헤맵니다."
하루 종일 누군가 있던 공간이 비는 것. 김 교수는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조차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품 안에 자식은 어느 새 자라 부모의 곁을 떠난다. 첫째가 홀로서기에 성공했을 때는 남겨진 둘째가 있었기에 아빠새는 그렇게 많이 아프지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 남은 자식마저 떠나보낸 아빠새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마흔 일곱의 남자는 아빠새와 같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말했다.
'애쓰셨습니다. 애쓰셨습니다.'
누구나에게 감동이 된 그의 관찰
큰오색딱따구리 가족도 떠났고, 이제 김 교수도 그의 자리를 정리하려 한다. 그의 둥지는 생각보다 단촐 했다. 딱따구리 가족들을 만나느라 위치를 옮겨왔던 비료 포대, 돌 몇 개. 인사를 드릴 근처 밭의 농부와 할머니. 그렇게 50일간의 여정의 끝이 보였다.
"큰오색딱따구리를 관찰하는 동안에는 새끼들을 키운 것이 부모새의 사랑인 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떠난 후에도 가슴에 구멍을 내준 나무는 그대로 있었습니다. 나무가 이들 모두를 품은 것이죠. 저는 나무에게 큰절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둥지는 벌들의 집이 되었습니다."
가슴에 구멍 하나를 내준 나무. 우리는 나무 같은 존재를 늘 바라기만 했지 우리들 자신이 그런 존재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 이후로 저는 그런 결심을 했습니다. 딱따구리 가족을 위해 가슴을 다 파내준 나무 하나가 있었구나. 이런 둥지나무는 숲에 있지만, 세상에는 내가 그런 둥지나무가 되도록 애써야겠다. 여러분 세상을 향한 좋은 둥지나무가 되길 바랍니다."
서울에서 학위를 마친 젊은 학자가 새로운 터전의 희망을 안고 남원이라는 낯선 땅으로 내려갔을 때, 그곳의 현실이 그의 연구와 실험을 위한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걸 알았을 때 그가 한 선택이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김성호 교수는 자연을 사랑하는 일에 온 몸을 바쳤다. 카메라를 들고 주변을 탐험하면서,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구부리고 낮게 엎드리면서. 산 속 어딘가 길을 걸으며 그곳에서 만난 모든 생명에게 말을 걸고 그들을 알아가고 사랑하려 했다. 그들에게 들은 대답으로 그는 또 많은 사람에게 사랑의 말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