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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4 | [문화저널]
옛말사랑 미친년 달래 캐듯 거미줄로 방귀 동이듯
김두경 서예가(2003-09-23 10:27:51)
따사로운 봄 햇살이 정겨운 날들입니다. 무엇에 홀려 사는지 봄 햇살은 몸으로 받으며 아무 일 없는 하루가 그렇게 어렵습니다. 곰곰 생각해보면 그렇게 못할 이유도 없는데 세상이라는 틀 속에 맞물려 빠져나오지 못하고 삽니다. 부질없다 부질없다 하면서도 자꾸 잠처럼 깊은 최면에 빠져 듭니다. 오늘은 자꾸만 빠져드는 최면을 떨치고 햇살 고즈넉한 툇마루에 앉아 봅니다. 따끈따끈한 햇살도 좋거니와 아직은 소슬하니 옷깃을 파고드는 바람이 있어 더더욱 좋습니다. 이렇게 햇빛을 벗하고 앉으니 적막강산 천지 만물이 모두다 진리 아님이 없고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 법음 아닌 것이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더도 덜도 없이 자재(自在)하여 기쁨 바로 그것입니다. 무엇을 더 바라고 무엇을 찾는다는 말씀입니까. 생각해보면 우리는 지금 엄청난 오류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광케이블 화재 사건을 보고도 무감각하시거나 인생이 별거냐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망하고 그러는 것이라고 당연스럽게 생각하는 분께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하지만 조금의 손상으로 실로 엄청난 파급이 있었는데 앞으로 더더욱 사회가 복잡하게 얽혀 있을 때 좀더 큰 사고를 상상해보면 소름끼치는 일이 아닙니까? 이렇게 광범위한 이야기로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 우리 일상을 뒤돌아봅시다. 지금 우리 가정에서 전기 하나만 차단해 봅시다. 단족 주택은 그래도 조금 낫습니다. 하지만 고층아파트에서는 당장에 엘리베이터가 운행되지 못하니 20층까지 걸어서 운동해야죠 수돗물 안나요죠 수돗물이 없으니 화장실은 어떻게 되며 모터가 돌아가지 않으니 난방은 어떻게 합니까. 무엇보다도 화장실을 생각하면 아찔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렇게 불안한 시대를 천연덕스럽게 살고 있습니다. 옛 말씀에 "미친년 달래 캐듯 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는 일이 정밀하지 못하고 몹시 조잡함을 이르는 말씀이지요. 달래는 목은 가늘고 연약한데 비하여 구근과 뿌리는 길고 실하여 정신없이 목만 뽑아서는 달래를 캤다고 말할 수 없음에서 나온 말씀이겠지요. 그런데 요즈음 이 땅에 우리의 삶이 마치 "미친년 달래캐듯"이 산다면 어불성설이 될런지요. 인간의 본질적 삶의 추구는 아예 종자도 보이지 않고 무엇 때문인지, 왜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저 세상 돌아가는 대로 잘 맞물려 돌아가며 잘 먹고 잘살면 그만인 삶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한다면 이 사람의 기우일런지요. 옛 말씀에 "거미줄로 방귀 동이듯한다"라는 말씀도 있지요. 형상도 없는 방귀를 어떻게 동여매겠습니까. 그것도 거미줄로요. 진실은 없어 형용만 건성으로 하는 체 할 때 쓰는 말씀이지요. 인생의 진실한 의미추구는 간데없고 행복이라는 허상을 찾아 동여매려는 이 시대 우리에게 이 말씀 또한 새로운 의미와 깊은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이렇게 좋은 날에 한번뿐인 우리의 삶 "미친년 달래캐듯"살지 맙시다. "거미줄로 방귀 동이려"하지 맙시다. 햇살은 여전히 따사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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