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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2 | 연재 [보는 영화 읽는 영화]
강력하게 구축된 리얼리즘, 원주민 침탈의 잔혹사를 품다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김경태(2016-02-15 10:51:55)

 

 

1820년대의 북미 대륙, 유명 사냥꾼인 '휴 글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백인임에도 불구하고 '포니족'인 원주민 여성과 사랑에 빠져 아들 '호크'까지 낳아 기르면서 부족원으로서 평온한 일상을 영위한다. 그러나 원주민들에 대한 서구의 무자비한 침탈로 인해 아내를 잃게 되면서 그에게는 하나뿐인 아들이 삶의 전부가 되고 만다. 이제 그는 아들과 함께, 짐승의 가죽 채집을 위해 당도한 미군 부대의 길 안내를 맡으며 아내의 영혼이 서려있는 그곳을 지킨다. 가죽 채집이 거의 끝나갈 무렵, 부대는 그 가죽을 노리는 '아리카라족'의 화살 공격을 받으며 부대원 다수가 죽게 된다. 글래스와 호크는 살아남았지만, 후에 글래스는 회색곰의 습격으로 온몸에 극심한 상처를 입게 되고, 호크는 그런 아버지를 생매장하려는 '피츠제럴드(톰 하디)'에 맞서다 죽고 만다. 이제부터는 복수를 위해 아픔 몸을 이끌고 눈 덮인 산 속이라는 혹독한 환경을 극복해가는 글래스의 일거수일투족이 스크린에 아로새겨진다.

 

감독은 영화 초반, 아리카라족이 급습하는 긴박한 순간을 편집 속도의 증가가 아닌 카메라의 정교한 조작을 통해 연출한다. 카메라는 화살을 피해 필사적으로 도주하는 인물들 사이를 쉴 새 없이 부유한다. 마치 소란스럽게 총을 쏘고 도주하는 인물들과 여기저기서 화살에 맞아 쓰러지는 인물들, 그 모두를 생생하게 화면에 담아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듯이 말이다. 그리고 광각 렌즈를 이용한 촬영은 전경부터 후경까지 많은 정보들을 뚜렷이 담아낸다. 마치 정성들여 준비한 소품들과 애써서 맞춘 배우들의 동선, 그 어느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의중을 내비치듯이 말이다. 이러한 카메라의 역동적인 움직임과 깊은 심도는 관객을 그 아수라장의 한 가운데로 초대한다.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시작은 영화가 의도하는 관객과의 관계 맺기 방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것은 카메라의 대담한 노출을 통해 성립된다. 감독은 카메라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면서 관객의 영화에 대한 몰입도를 높인다. 카메라가 촬영 대상에 의해 우발적으로(!) 자신의 물질성이 밝혀지는 순간에 환기되는 것은 어색한 NG 장면이 아닌 생생한 현장감이다. 글래스가 회색곰의 공격을 받는 장면에서 곰이 내쉰 거친 입김이 렌즈를 뿌옇게 흐리게 하거나 그가 피츠제럴드와 격투를 벌이는 장면에서 렌즈에 핏방울이 맺히는 순간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회색곰이 내뿜는 입김과 사람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피는 스크린을 뚫고 나올 기세이다. 관객은 마치 스크린이라는 얇은 유리 막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반대편에서 현재 벌어지는 긴급한 일들을 예의주시하는 것처럼 느낀다.

영화에서의 리얼리즘은 현실에 대한 카메라의 끊임없는 조망에 기원한다. 카메라가 자신을 드러내는 것, 그것은 카메라의 응시에 기반하는 리얼리즘에 대한 자기반영적 성찰이다. 신체를 관통하는 화살에서부터 거대한 회색곰까지 영화에서 사용된 CG들은 과시적 특징을 최대한 억제한 채 그 리얼리즘의 완전한 구축을 위해 복무한다. 그렇게 완성된 강렬한 리얼리즘은 서구의 원주민 침탈의 잔혹사를 지금 이 순간, 관객의 폐부 깊숙이 각인시킨다.

 

복수심에 불탔던 그는 험난한 여정 속에서 조금씩 변해간다. 죽은 아내는 그의 꿈속에 등장해 아무 말 없이 그를 위로한다. 또한 그에게 들소 고기를 나눠주고 상처까지 치료해준 원주민은 자신 역시 가족을 잃어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지만 복수는 신의 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그는 나아가 프랑스 부대에 잡혀 성적 노리개 취급을 받는 아리카라족 여성을 구해주기도 한다. 이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복수의 여정은 서구의 악행에 대한 속죄와 자기 구원의 서사로 차츰 대체된다. 마침내 피츠제럴드와 마주한 그는 복수의 실행을 그 대지의 주인인 원주민 부족에게 맡긴다. 그리하여 그의 사적인 복수는 빼앗긴 영토를 되찾고자 하는 원주민 투쟁사의 맥락 속으로 승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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