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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4 | [문화시평]
전북 연극계 한계가 고스란히 보였다 제10회 전북연극제를 보고
김정수 연출가, 편집위원(2003-09-23 10:29:05)
제10회 전북연극제가 3월15일부터 20일까지 전북예술회관에서 열렸다. 제12회 전국 연극제 전북예선대회를 겸한 이번 연극제는 참가열기 뿐만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적지 않은 실망감만 안겨준 행사였다. 지방연극제에서 전북연극제로 명칭이 바뀌어 11회를 치러온 전북연극제에서 3회에 걸친 최우수상 수상 관록을 자랑해온 전북연극의 그늘진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듯 해 참담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일차적원 원인은 연극제 참가 극단수에서 오는 것이었다. 모두 세 극단이 참가했는데 매해 참가극단 수에 비교하건데 그리 뒤떨어지는 수는 분명 아니다. 또 무작정 많은 극단이 참가한다고 훌륭한 연극제가 보장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북 연극이 그 주된 고객으로 삼는 이 지역 사람들에게 연극제라는 형태로 다가갈 때, 최소한 현재의 연극작업들이 다양하게 선보일 수 있는 무대가 되어야 한다는 의무를 갖는다. 연극제는 하나의 축제이다. 그 축제의 주체가 연극이며 행위자와 관람자가 동일한 축제의 우사아래 모인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의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전북연극제는 누가 뭐라해도 순수한 전북연극의 축제마당이 되어야 한다. 전국연극제의 지역예선은 부차적인 사안일 뿐이다. 전주지역에서만 현재 활동 중인 극단이 7개, 전북지역으로 확대하면 10여개 극단이 활동하고 있다. 이 중 전주지역의 극단「예원」「디딤예술단」과 남원지역의 극단 「춘향」만이 참가했다. 전국연극제에서 입상한 경력이 있는 「황토」「창작극회」이리의 「토지」는 빠져있어 알맹이 없는 행사란 인상을 더 진하게 풍겼다. 이러한 상황에서 참가 작품의 질적 저하는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는 당연한 답이었다. 「디딤예술단」의 「풍금소리」를 제외한 나머지 두 작품은 제작의도마저 의심스러울 만큼 빈약한 전북의 연극인 층이 갖는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내 보이는 공연이었다. 이제는 어느 연극제를 막론하고 창작극이 주류를 이루는 양상이 보편화 되었다. 이번 연극제 출품작 모두가 창작극인 점도 이러한 양상의 반영이다. 이는 어느모로 보나 우리 연극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우리 희곡에 어울릴 자연스러운 연기법 개발도 필연적인 노력으로 이어져야 한다. 연극하면 어설픈 서구 연극의 연기 흉내와 신파적 분위기가 묘하게 섞여있는 그런 연기를 보여주는 일은 이제 그만 두어야 한다. 극단 「예원」과「춘향」의 공연은 이러한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 선명하지 않은 원작의 주제의식에 그나마의 관념적 주제도 제대로 해석해내지 못한 듯한 인상을 주었다. 특히 기본적인 표현방법조차 미숙한 배우들의 연기는 관객에게 커다란 인내심을 요구하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많지 않은 관객임에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대사와 의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표정과 동작 연기가 혼란만을 느끼게 했다. 유일하게 이번 연극제의 체면을 살린 「디딤예술단」의 「풍금소리」는 상대적으로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92년 뮤지컬 전문극단을 표방하여 창단되었다가 최근 자체 소극장을 마련해 소극장 연극 운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디딤예술단」은 연출을 맡은 안상철의 평소 섬세하고 깔끔한 연출력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느 탄광촌을 배경으로 종횡으로 얽힌 사람 사는 이야기가 격정적이면서도 잔잔하게 펼쳐지는 윤조병의 이 작품을 무리하지 않는 힘으로 의도에 걸맞게 살려냈다. 특히 괄목할 만한 것은 한 두 배우를 제외한 단원 대부분이 무대 경력이 짧은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고른 수준의 향상된 연기를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아마 이점은 소극장 개관이후 지속적인 공연작업을 밑거름으로 삼은 것이 확실해보여 새삼 소극자의 소중함을 되돌아보게 했다. 극의 흐름을 이끌었던 길녀역의 정선옥은 전보다 훨씬 넓어진 연기 폭으로 차분하고 단단한 노인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구축해 내면서 열연했다. 다만 이 작품의 아쉬움은 길녀의 상대역인 분이가 그 인물의 중요성에 비해 길녀의 분위기에 압도당하고 있으며 부분적으로 나이 차에서 오는 서투른 연기가 눈에 띤다는 점이다. 또한 극의 후반 부분 상여가 무대를 가로지르는 장면은 기술상의 처리 문제로 오히려 관극의 흐름에 장애를 주었는데 어차피 사실주의를 벗어난 표현방식이라면 배경막을 이용한 영상처리나 상여를 바닥에서 띄우는 문제를 적극 검토해 볼만했다. 이번 연극제 기간 동안 극장에서 만난 상당수의 관객들이 실망의 말들을 토로하는 것을 들었다. 그간 우리의 현대연극이 뿌리내리고 그 열악한 환경을 이겨내며 발전해 오는 과정에서 연극을 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존중받으며 스스로도 선구적 작업임을 자임할 수 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시대는 분명히 갔다. 수준 높은 안목을 갖춘 관객은 나날이 늘어 가는데 이들에게 볼거리,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지 않는 연극은 그 생명이 없는 것이다. 극장에서 발걸음을 돌리는 관객을 무지의 소치쯤으로 치부하기엔 이미 때가 늦었다. 보다 체계적인 훈련과 전문화된 시각, 예술적 완성도를 지향하는 극단들이 되어야 한다. 물론 연극제의 이면에는 각종 지원금의 문제라던가, 각 극단이 안고 있는 내부적 어려움 등이 복합적인 모습으로 남아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결국 이러한 문제는 연극인들의 힘에 의해서 극복되어야지 결코 관객의 몫은 아니다. 일년에 한차례 열리고 있는 전북연극제가 진정한 의미에서 전북연극의 발전을 확인하고 다양한 연극을 한자리에서 접할 수 있는 전북 연극의 축제가 되기 위해서 많은 노력과 함께 개선점 찾기에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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