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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3 | 특집 [종이 위 작은 기적]
일기, 작은 역사가 되다
황경신(2016-03-15 10:41:56)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망각으로 인해 우리는 우리 삶의 모든 것을 기억해 뇌의 과부화로 미치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이지만 때론 꼭 기억해야 하는 것들을 잊어버려 곤란한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그래서 저마다 나름대로의 방법과 방식으로 삶의 시간들을 우리는 기록해간다.
별스러울 것 없는 일상의 나열이기도 하고, 다시는 들춰보고 싶지 않은 심상들이 담기기도 하한다. 누구는 매일매일 거르지 않고 착실히 일기를 쓰기도 하고, 내 생활이 아닌 가족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데 여력을 쏟기도 한다.
물론 선택의 여지가 있는 개인의 기록에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은 자리가 없을 수도 있다. 완전한 기억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 먹고 한 기록 아닌 기록들은 '미시사'라는 이름으로 조명되어 연구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생활사의 크고 작은 발견들로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낸다.

이번 특집에 소개한 『창평일기』는 전북 임실군 신평면 창평리에 살았던 최내우 씨가 1969년부터 1994년까지 26년 간의 일상이 담긴 일기이다. 한 시골 촌로의 무수한 일상의 스펙트럼 안에는 한국 근현대 농촌의 현실이 곳곳에 살아있다.
28년 동안 가족신문을 만드는 완주의 박제순 씨는 그야말로 온 가족이 구독하는 신문이 되었다. 자주 만나지 못하는 가족과 친지들의 대소사는 기본이고, 세월호 사건 등 사회 이슈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서로 공감하고자 하는 내용이 담기다 보니 자연스레 '시대상'이 반영되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 1500년대 전라감사로 전주에 부임한 미암 유희춘의 일기는 조선시대 일상사의 보고寶庫가 되었다. 전주 뿐만 아니라 전라도를 돌며 기록한 사대부가의 관직생활과 일상생활은 왕의 역사가 아닌 우리네 옛 사람과 생활사의 문을 열었다.

도드라지지 않아도, 발견되지 않은 것들에도 우리의 일상은 계속 기록되어지고 있다. 엄마의 십수년 가계부 속 생활 촌평 속에서, 60년 세월이 담긴 할머니의 육아일기 속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삶에 귀를 기울이는 고사리 손에서 지난 일상은 삶의 힘으로 다가온다. 평범한 일상의 기록은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삶을 견인한다.
완벽할 수 없고, 완벽하지 않은 우리네 삶을 써내려간 일상의 기록은 타인의 삶에도 '작은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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