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1994.4 | [문화저널]
작품과 나 '새로운 것도 시간이 지나면 역사가 된다' 나의 작품과 작품하는 일
윤성진 조각가, 전북대 미술교육학과 교수(2003-09-23 10:37:42)
1. 여기에서 나의작품을 소개하는 것들은 1989-1881년경까지의 작품이다. 최근의 작품들은 나에게 있어 여러 가지 실험적인 과정에 있기 때문에 정지된 상태로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시의 작품들은 인체에 직접 석고형을 떠서(대부분 손이나, 팔, 다리)그 형을 적당히 부숴뜨린 다음, 그 깨어진 석고형에 다시 석고를 부어 내형을 만든 후 그 조각들을 서로 이어 붙여 완성해가는 작업을 하였다. 마치 깨어진 출토유물을 짝을 맞추어 복원하듯 하는 작업인데, 이 때에 전체적인 인체의 표정이라든가 운동들은 어느 정도 계획하고 시작하지만 부숴뜨린 균열이라든가 조합할 때 생기는 엇물림이나 흔적들은 대상의 본래의 형태에서 벗어나 의도적으로 처리 되거나 그때그때의 임기응변식으로 마무리하였다. 인체를 직접 뜬다는 것은 어떤 대상을 신체적으로 직접 묘사하거나 표현하는 조각기법의 전통적 개념은 아니다. 단지 인체를 대상화하여 그것을 3차원 공간에 재현시키기 위한 기법일 뿐이다. 그러나 단순하고 무의미한 듯한 작업과정은 오히려 내가 보여 주고자하는 작품세계를 뒷받침 해준다. 작업과정에서 나는 깨어진 조각들의 형태를 읽고 각기 조작들의 적당한 위치를 설정한다. 이 때 깨어진 조각들은 실제인체의 정상적인 모습으로 되돌아가려고도 하고 각기 자신의 형태를 독립적으로 고집하려 하기도 한다. 나는 이 깨어진 파편들과 대화하며 본래의 모습과는 닮았지만 조금 일그러진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 나간다. 조각들을 연결시키는 과정 속에서 재료인 석고의 속성과 작업의 구체적 내용(도구를 상요하면서 생긴 흔적, 흘러내린 석고가 굳은 과정)은 중요하게 고려되었다. 이 작업에는 크게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인체의 형태와 석고라는 물성(物性)의 만남이고 또 다른 하나는 덩어리의 변화, 균열의 표현적 처리 등으로 나타난 표현의지이다. 인체의 유기적 형태, 피부 등의 극히 일상적인 자연의 일부와 석고라는 고체(固體)가 만나 인체는 단지 그 표정의 일부분만 남고 해체되고 만다. 또한 석고는 형을 정밀하게 떠내는 역할 외에 그 물질 특유의 속성을 드러낸다. 이를 가감하지 않고 순전히 드러내게 함으로써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다. 여기에다 나는 더 읽기를 권한다. 균열은 거친 Matieve처럼 얽혀지고 응고된 석고덩어리는 인체에 덧붙여진 알 수 없는 어떤 것들이다. 이런 것들을 통해 현대사회의 혼돈과 불확실성의 상황에 투영된 인간 존재의 모습을 형상화(形象化)하고자 하는 것이다. 작품들은 비극적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지만 미래에 대해서는 낙관적이다. 흐트러지고 분산된 면들은 다시 엉켜붙어 인간내면의 바닥에 흐르는 신뢰감(사랑)을 도출해 낸다. 2. 3월들어 신학기가 시작되면서 많은 새로운 학생과 만나게 된다. 미술을 전공하고자 오랜 세월을 입시준비에 보내고 이제 막 전공의 문턱을 들어선 초롱초롱하고 기대에 찬 신입생들, 3학년이 되어 여러 전공 중에서도 조각을 하고 싶어서 선택한 조각전공 신입생들, 또 대학원에 진학했거나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어, 지난 대학생활은 안온했던 품안으로 생각되며 그들의 앞에 펼쳐진 미래가 흥미롭거나, 두렵고, 불안하기도 한 졸업생들을 접하게 되고 이들에게 나는 선생으로서 졸업생들에게는 이 사회의 선배로서 몇 가지 충고 와 조언을 하게 된다. 그러나 되풀이해서 반복되어지는 이 충고들은 나 자신에게도 어김없이 해당되는 것이어서 이야기 도중에 그들과 내가 같은 상태에 있음을 강조하게 된다. 이야기를 간추리면 첫째, 자신의 전공을 생활의 중심에 두고 우선적으로 이를 수행하라는 것. 예술활동이라는 것은 직업적인 것이 아니라 삶 자체의 총체적 구현이기 때문에 항상 예술가의 삶을 사는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일을 하는 사람보다 특별하거나 색다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주변의 일들을 예술가의 감성과 예지로 감지하면서 이것들을 자신의 조형으로 나타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많은 세월을 예술가의 눈으로, 감수성으로 지내다보면 그의 생각이나 작품에서 귀중한 것들을 찾게 되고 축적되리라는 것이다. 둘째, 나는 새로운 것을 강조한다. 변화해 가는 사회와 새로이 열리는 시대의 비젼을 보아야 한다. 이것들을 개척하고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이다. 역사의 전위에 서서 두려워하지 않고 부딪혀 나가는 자세야말로 진정한 예술가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꼭 전체형식이 아닐지라도 어떤 정해진 틀 안에 있다하더라도 자기만의 기법이나 체취를 창출해내야 한다. 새로운 것들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은 우리들의 덕목이다. 더욱이 세대간의 속도도 엄청나게 빨라지지 않았는가. 현세를 누리지 못했던 천재들의 시대는 신화의 시대이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한평생의 템포는 지금의 5년이다. 새로운 것도 5년이 지나면 역사가 된다. 개혁과 변혁의 시대 이 시대의 뒷전으로 물러나서는 안 된다. 이러한 시대를 눈뜨고 보면서도 적당히 우매한 사람들과 타협하여 정당히 분위기 있는 장식적 쾌감을 주는 작품들로 적당한 삶을 누리는 예술가는 이 사회에서 꼭 필요한 3류 예술가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것을 전통적인 것에서 찾든, 이국적인 것에서 찾든, 변화하는 세계구조안에서 찾든,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 셋째, 전주의 음식은 맛이 있는 것이 아니고 멋이 있다. 꼭 필요한 것, 하루 세끼를 때우는 음식은 멋이 없다. 음식을 맛있게 하기 위해 조리법을 개발하고 양념을 세련되기 사용하여 미각을 세우는 것은 멋있는 일이다. 먹고 살려고 국가경제를 이룩해야하고, 사람이 모여 그 사회를 이끌 정치가를 뽑고, 법을 만들어 죄지은 자를 벌하고, 들어가 잠잘 집을 기능적으로만 짓는다면 얼마나 따분하고 숨 막히는 일인가. 여기에 삶을 풍요롭게 하는 문화가 있는 것이고, 문화는 꼭 필요한 것에 덧붙여진 멋있는 것들에 의해 이룩된다. 하물며 직접 예술 활동을 하는 사람은 '멋'자체를 인식해 가며 가꾸는 일이 활동의 근간이라고 생각된다. 우리가 조각이 지난 고양된 미적 형식들을 발전시키고 이를 함께 사는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면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다 하는 것이고 그 사회를 멋있는 사회로 이끌게 되는 것이다. 윤성진 /52년 서울출생으로 서울대 미술대학 조소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고, 서울 동경 등지에서 4번의 개인전을 가졌다. 86년 동아미술제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90년 92년 현대미술 초대전 등 작품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전북조각회와 전북현대조각회 등 여러 단체전도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