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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5 | 칼럼·시평 [문화칼럼]
친절의 뿌리, 공짜 점심은 없다
전희식(2016-05-17 14:01:40)

친절도 상품이다

한동안 '운전습관은 당신의 인격입니다'라는 표어가 나돌았는데 최근에 '친절'이 '운전습관'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표어를 본 적이 있다. '친절은 인격이다'는 표어다. 친절은 잘 아는 사람이나 사회적 약자만을 대상으로 하지는 않는다. 도리어 모르는 사람, 때로는 대립적인 사람에게까지 확장되어야 제 맛이다. 그래서 친절은 바로 인격이라고 하는 것이리라.
근엄한 사람보다 친절하고 상냥한 사람이 좋다. 근엄함으로 전하는 메시지는 메시지 자체보다 근엄함이 더 비중 있게 전달된다. 그래서 메시지가 경직되던지 왜곡되기 일쑤다. 같은 원리다. 친절은 반대로 메시지 전달의 효과를 높인다. 긴장을 풀고 호감을 먼저 유발하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의사전달이 상대로 하여금 긍정하고 수용하게 하는 것이 목표라면 친절은 매우 유효한 수단이다. 그래서 이제 친절은 실명의 인격이 아니라 익명의 삼품이 되기도 하다. 기업들의 친절은 모든 시민을 잠재적 고객으로 바라보며 상품을 구매하게 하는 수단으로 이용된다.
대기업의 서비스센터에 가 보라. 상냥한 아가씨가 벌떡 일어나서 맞이하고 컴퓨터까지 공짜로 쓸 수 있고 식수는 물론 인스턴트 차까지 공짜로 준다. '역시 대기업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상품이라는 것은 다 안다. 친절의 상품화. 대기업의 제품에는 브랜드가치라는 이름으로 친절의 값이 덧 씌워져 있다. 오이엠(OEM. 주문자 상표부착 방식)이라는 제조방식에 의해 만들어지는 이런 제품은 같은 제품이라도 원래 제조회사의 이름이 붙으면 싸구려가 되고 주문자인 원청 대기업의 이름표가 붙으면 고가제품이 된다.
드라마 주인공이나 첩보원처럼 대단히 친절하지만 말은 딱 부러지게 하는 사람을 보면 멋지기까지 하다. 그런데 지나친 친절은 수상하다. 오늘 페북이 그랬다. 페북의 친절이 왜 불편한지는 선명하지 않다. 그냥 불안 섞인 불편함이 서려있을 뿐이다. 이 불편은 '공짜점심은 없다'는 말과도 통한다. 누군가 공짜로 밥을 산다면 뭔가가 뒤따른다는 것이다. 난처한 부탁을 들어줘야하거나 뭔가를 눈 감아 줘야한다. 공짜 밥을 얻어먹었는데 밥 얻어먹을만한 연결고리가 안 보이면 내심 불안하다.


광고전화의 극성은 공짜점심의 댓가

스마트폰에 뭐가 떴는데 자세히 보니까 5년 전 오늘이라면서 어머니가 마루에 앉아서 진달래꽃을 따는 사진이었다. 까만 겹바지와 연분홍 무늬가 있는 내복상의를 입으신 어머니가 완연한 봄볕이 가득한 마루에 나오셔서 진달래꽃을 따고 있었다. 어머니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 아련히 떠올랐다. 사진 밑에 있는 몇 줄의 설명 글을 읽으니 더 선명했다.
진달래꽃이 예뻐서 한 송이를 꺾어 물병에 담아 어머니 머리맡에 놨는데 "참꽃이다"라면서 이것을 숨 담궈 먹으면 오랜 속병에 좋다며 꽃잎을 죄다 따시기에 낫을 들고 산에 가서 진달래꽃을 다시 한 아름 꺾어 와서 꽃잎을 맘껏 따게 했다는 설명이었다.
진달래꽃하고 참꽃이 같은 거냐는 댓글과 진달래 화전을 권하거나 하실 일거리가 있는 어른 모습이 좋다는 댓글들이 당시 정경을 생생하게 되살려주었다. 그러니 어머니에 대한 뭉클함은 페북의 친절에 대한 뭉클함으로 전이되었다. 한 순간이었다. 이것이 공짜 점심이다.
친구가 올린 글이 어디에 있다고 알려주는 페북의 친절. 검색어만 치면 연결되는 관계망. 공짜로 문자와 동영상까지 주고받는 페북메신저. 이 역시 공짜 점심이다. 무료라는 얘기다.


공짜 점심이 없다는 만고의 진리는 친절의 저의가 엉뚱한 곳에 숨어있음을 암시한다. 페북이 끊임없이 위치정보를 요구하는 것이 이것이다. 인터넷으로 제공되는 편의와 공짜 서비스에 가입하려면 수없이 요구하는 '동의합니다'는 버턴들. 이것이 공짜점심의 숨겨진 밥값이다.


편지 한 장 부치려면 봉투에 담아 우체국에 가서 300원짜리 우표를 사 붙여야하지만 컴퓨터에서는 똑딱 하는 시간에 수백명 수천명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다. 그것도 공짜로. 그런데 이것이 공짜점심 맞을까?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대출업체나 보험회사의 전화, 무수한 스팸문자들. 땡 처리 한다는 쇼핑몰 회사들의 광고메일. 이런 것들이 내가 동의하고 수신을 허락한 '동의합니다'버턴 때문이다. 공짜 서비스와 편의를 제공받은 점심값이다. "내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고 전화했냐? 거기가 어디냐?"고 짜증을 부려도 소용없다. 내가 모두 동의 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내 밥값인 것이다.


단체문자와 단체메일도 자원의 낭비

우표 값 없이 한 순간에 전달되는 이메일과 문자들이 공짜 점심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내가 쓴 이메일은 내가 가입되어 있는 포탈사의 수많은 서버 중 메일서버로 간다. 거기서 도메인 이름을 대부분 미국에 있는 도메인네임서버로 보내서 숫자로 된 아이피(ip) 주소로 해석하여 메일을 받을 상대방이 가입되어 있는 포탈사의 수 많은 서버 중 메일서버로 보낸다. 그 메일서버는 가입되어 있는 수 많은 고객의 아이디를 검색하여 그 계정에 넣어주면 최종 당사자가 접속하여 읽게 되는 것이다. 단체문자와 단체 메일도 대개 이런 과정을 거치는데 모두 다 공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서버 값과 호스팅 값, 회선 값, 이들의 유지관리비에 전기료는 누가 내겠는가?
내가 공짜라서 물 쓰듯 쓰는 단체문자와 단체카톡방, 페이스북에 올리는 사진과 글들은 포탈사가 빅데이터로 수집분류가공하여 사기업이나 광고사, 정부에 팔아먹는다. 엔에스에이(NSA 미국 국가안전 보장국)은 이 과정에서 하루에 50억개의 개인 휴대전화 위치정보를 빼 간다. 팩스, 이메일, 전화를 시간당 수십억 건씩 도청하여 대중통제의 기초의 삼는다. 엄청 비싼 점심값이다.
쓰레기 사진이 양산되고 있다. 스마트폰의 내장메모리 용량을 키워도 다시 차 버린다. 이런 디지털쓰레기는 심각한 환경오염이다. 메모리 값과 받데리 충전하는데 드는 전기료만으로 디지털 사진의 비용을 계산하는 것은 공짜 점심에 중독된 바보들의 계산법이다. 제러미 리프킨이 아래와 같이 지적한다.
기업, 가정, 개인, 단체, 운송수단 사물 등에 담긴 1차 정보는 빅데이터로 전달되어 고급분석을 거친 다음 예측 알고리즘으로 전환되고 새로 가공된 그 빅데이터는 프로그램을 통해 자동화 시스템으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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