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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5 | 특집 [레지던시, 창작과 지역을 향하다②]
우리는 문화예술의 꿈을 이뤘다
창작 레지던시
민운기(2016-05-17 14:06:01)




지난 2002년 인천의 신흥 중심지 남동구 구월동에서 문을 연 스페이스 빔이 2007년 동구 금창동 배다리마을로 이전하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인천시가 국책사업으로 경제자유구역조성사업을 한다며 남쪽의 송도지구와 북쪽의 청라지구를 잇는 가장 빠른 길을 내려 이곳 마을 중간의 주택들을 철거한 현장을 보고나서였다. 시뻘건 맨땅이 드러난 자리에 가재도구들이 나뒹구는 모습을 보며 아무리 빨리 '지나가는' 일이 중요하더라도 이렇게 사람 사는 멀쩡한 곳을 일말의 고민도 없이 파괴해도 되는 것인가 의문이 들었다. 더욱이 배다리마을은 알고 보니 인천의 근ㆍ현대사를 관통해온 유서 깊은 곳이었다. 1883년 인천이 일본에 의해 강제 개항이 되면서 외국 세력들이 조선반도에 대한 침략과 침탈을 위한 교두보로 삼기 위해 해안가 응봉산 기슭(현재의 '자유공원' 일대)에 정착했을 때 배다리 마을은 이런 저런 이유로 곳곳에서 몰려 든 조선인들이 집단주거지를 형성하며 어려운 시기를 주체적으로 이겨내고 남다른 역사 문화 정체성을 만들어 온 곳이었다.


끝나지 않은 싸움, 포기할 수 없는 꿈
그래서 이를 그대로 두어선 안 될 것 같고, 어떻게 하든 막아야겠다는 생각에 마침 마을 내 가동이 중단된 지 10년 즈음 된 인천양조장 건물의 임대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전을 결심하게 되었다. 인천의 향토막걸리 '소성주'를 만들던 이 공장 건물을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게 되면서 생각한 것은 이 공간 자체도 중요한 역사적 의미와 지나온 사연들을 지니고 있는 만큼 과거를 지우거나 단절시키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개보수 작업을 하면서 가급적 과거의 흔적들을 없애지 않고 적절히 남김은 물론, 새롭게 필요한 것들을 추가하며 자연스레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도록 하였다. 그리고 여러 개의 공간 이름도 '고두밥실', '발효실', '숙성실' 등으로 이름을 붙여 막걸리를 만들던 공정을 예술 활동으로 연결시켜 활용하고자 했다.
이렇게 이전과 더불어 배다리 주민들은 물론 지역의 시민문화단체들이 합세하여 본격적으로 시작한 배다리 산업도로 무효화 싸움에 스페이스 빔도 적극 참여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스페이스 빔 차원의 활동도 또 다른 방식의 싸움과 대안 모색의 일환으로 지속하였는데, 그 하나는 배다리마을의 역사, 문화, 생활 생태적인 의미와 가치, 매력 등을 예술(가)적 안목으로 발견하고 평가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공유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이곳 배다리마을을 포함한 원도심을 '낙후되었다'고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을 불식시키고 오히려 이곳에서 바람직한 도시의 가능성을 찾고자 함이었다. 배다리 역사문화지도를 포함한 안내 책자를 만들고, 탐방프로그램을 진행하였고, 레지던시프로그램을 통하여 구석구석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내고 기록하며 또 다른 활용 가능성을 찾아냈다.


예술가와 주민의 동등한 관계
또 하나는 정형화된 '문화'와 '예술'을 강조하며 주민들을 '대상화'하여 스페이스 빔 공간에 '관객'으로 불러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어울리는' 가운데 상호 이해를 통한 어떤 변화와 활력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작가들과 상의하여 고치거나 만들어 가져갈 수 있는 동네美술공장 '땜빵', '예술가'와 '주민'이라는 구분 없이 동등한 회원으로서 별도의 화폐를 만들어 일손을 나누고 안 쓰는 물건들을 주고받는 지역통화 '띠앗'이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이제 내년이면 배다리 싸움과 활동이 10년이 되어 가는데, 여전히 바뀌지 않는 행정의 사고와 태도를 보면 앞으로 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다고 본다. 그러한 면에서 우리의 시도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따라서 배다리마을을 거점으로 하는 바람직한 도시 공동체 인천을 만들기 위한 우리의 노력 또한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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