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공연창작집단 뛰다는 서울에서 강원도 화천의 작은 마을로 이주한다. 그리고 문을 닫은 지 10년이 지난 작은 폐교에 둥지를 틀었다. 그리고 6년 동안 조금씩 공간을 만들어 나갔다. 이곳은 예술이 자라나는 텃밭이다. 예술텃밭은 삶과 아주 가까이에서, 혹은 삶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예술작업이 이루어지는 문화공간이다. 이곳에는 100석 규모의 상자극장과 스튜디오, 창작공방, 제작소, 그리고 예술가들이 짧게 혹은 길게 머물 수 있는 레지던스 공간을 갖추고 있다. 이제는 뛰다의 연극인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오가며 교류하고 창작의 인연을 이어가는 공간이 되고 있다.
가장 작은 단위의 우주, 텃밭에서 이뤄지는 축제
매년 가을마다 이곳에서는 텃밭예술축제가 열린다. 예술텃밭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텃밭은 생명이 순환하는 가장 작은 단위의 우주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그래서 이 안에서 사는 예술가들의 정신을 안내하기도 한다. 텃밭에서 하는 '예술축제'는 이러한 텃밭의 관점에서 그 의미를 부여받게 된다. 좀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텃밭-공연예술레지던시-축제'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축제는 예술가들이 만나서 함께 머물며 창작의 고통을 나누는 순수의 시간이다.
축제기간 2주동안 여러 장르의 예술가들이 모인다. 그동안 많은 예술가들이 텃밭에 머물다 갔다. 음악가, 전통연희자, 무용수, 배우, 기획자, 미술가, 등등. 다른 장르, 다른 생각, 다른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만났다. 지난해에는 "인형, 몸으로서"란 주제로 창작레지던시를 진행했다. 인형이 몸으로서, 무대 위에서 어떻게 의미를 가지게 되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들과 함께, '걸리버 여행기'라는 텍스트를 기본으로 팀별 창작작업이 이뤄졌다. 참여 예술가들은 2주 동안 밀도 높은 공동작업에 몰두해야 했다. 축제기간 중에는 공연나눔을 통해 각자의 예술세계를 나누기도 하고, 인형에 대한 포럼이 벌어지기도 했다. 축제의 마지막 날에는 새로운 개념의 인형극 초청공연과 함께 2주 동안의 레지던시 작업의 결과물을 무대에 올리게 되었다. 화천의 주민들뿐만 아니라 먼 도시에서도 이들의 공연을 보기 위해 찾아 왔다. 시골마을의 이런 시간은 참으로 낯선 풍경이다. 예술가들에게도 또 일반 관객들에게도.
시골, 연극 그리고 굵은 땀방울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들 중에 또 다른 특별한 것은 '낭천별곡'이다. 화천의 마을 주민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공동체 연극 프로젝트다. 뜨거운 여름, 화천의 쪽배축제를 여는 공연이기도 하다. 이 연극을 만드는 사람들은 참으로 다양하다. 뛰다의 예술가들과 이들을 좋아하는 또 다른 예술가들, 연극을 좋아하는 화천의 중·고등학생들(이들은 매주 토요일마다 예술텃밭에서 연극수업을 받기 위해 모인다. ), 동지화 마을 어르신들, 7사단 장병들, 민요를 사랑하는 '낭천소리회' 어르신들, 화천의 젊은 주부들 등, 이들이 한 달 동안 함께 만드는 연극이다. 이들이 예술텃밭에 머물며, 또 이곳을 오며 가며 이 마을을 한껏 들뜨게 한다. 이 연극에는 참 다양한 인형들이 등장한다. 아주 커다란 '용' 인형에서부터 아주 작은 '새' 인형까지, 모든 인형은 종이와 풀로 만들어 진다. 인형을 만드는 것은 공동체의 노동이다. 함께 풀을 쑤고, 종이를 찢어서 붙이고, 말리고, 다시 찢어서 붙여나간다. 호랑이, 지네, 용, 소, 달팽이, 꽃, 해, 달, 별, 개구리, 도깨비, 학, 마고할미, 등등. 참여자들의 정성이 가득 담긴 인형들이 완성되어가는 과정은 정말 경이롭다. 130여명의 참여자들이 한 달 동안 공들여 만든 공연이 붕어섬 강가에서 펼쳐질 때, 이 공연이 아름다운 건 아마도 화천이라는 공동체 안에서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아이들이, 우리 할머니가, 옆 동네 이장님이, 우리 동네 아주머니들이 무대에서 노래하고 춤을 추는 것을 보고 있으면, 한 달 동안 흘린 그들의 땀이 고스란히 감동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