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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4 | [교사일기]
참교육의 현장 우리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과 함께 간다 다시 교단에 서며
이재권 남원고등학교 교사(2003-09-23 10:46:05)
1989년 5월28일 우리는 이 땅에 교육계의 봄, 민주주의의 봄을 앞당기고자 깃발을 올렸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순수하게 아이들을 사랑하고 이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던 우리들은 서슬 퍼런 칼날을 맞았다. 그로부터 우리는 겨울 동안에 봄을 앞당기려는 고난에 찬 과정을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깨달았다. 서로가 서로를 온몸으로 감싸 안으며 지혜를 모아 문제와 맞설 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말이다. 그때 우리가 경험한 진지한 연대의 폭과 깊이는 그 이후 우리의 삶을 바꿔 놓았다. 우리가 교육의 문제로 씨름할 때 다른 분들은 다른 문제로 고뇌하며 살고 더 큰 하나를 위하여 대동단결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하여 이 땅에 사는 각 분야의 사람들을 소중히 생각하기 시작했고 몸으로 애국·애족의 참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요즈음 상문고의 비리가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많은 교사, 학생, 학부모, 국민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이것이 어찌 상문고만의 문제이겠는가! 교육재정이 빈약한 탓에 우리나라 중등교육은 50%이상을 사립학교가 담당하고 있다. 상문고 비리에서 보듯이 일부 사학재단의 경영자는 건학이념이 확실하지 못하고 육영사업가로서의 도덕성이 결여되어 있다. 그래서 민족의 장래를 책임지는 교육사업을 치부의 방편으로, 개인의 호화생활을 뒷받침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전의 사립학교들에서도 발견된 학생들의 등록금 유용 및 부당한 잡부금징수, 교사들의 월급(보충 수업비)을 착복하거나 학교의 교육시설에 투자한다고 해놓고 장부를 조작하여 부를 축척하는 모습이 상문고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상문고의 교장과 이사장이 부부이듯이 사립학교의 족벌체제 운영은 전형적인 것이다. 보라! 상문고에서 자신들의 비리를 은폐하기 위해 정치인, 기업가들보다 더 치열한 로비활동을 한 것을. 사립학교에서는 서무과가 이사장 측근들로 구성되어 있어 서무과장이 교사들에게 시말서를 요구하거나 해임시키는데 주도적으로 나서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 국민들은 이해할 것이다. 왜 그렇게 교사들이 그렇게 치열하게 바로 서는 교사가 되기를 원했으며 재단 측에서 교사들을 복직시키려 하지 않았는가를. 정부는 남은 교사들을 하루 빨리 복직시켜야 한다. 그렇다면 요즈음 공립학교는 괜찮은가? 아니다. 나는 공립 인문고에 있다. 나는 학생들을 다시 만나 정말 신나게 가르치고 학생들에게 미래에 대한 벅찬 소망을 심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내가 하고 있는 일은 결재를 받기 위한 수업지도안을 다시 쓰는 일이며 정규수업 외 아침저녁으로 보충수업을 한 시간씩 하고 야간 자율학습을 감독하는 일이다. 입시위주의 교육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일이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가 되어 학력이 아니라 능력을 중시하고 여러 계층이 골고루 혜택을 누리고 사는 사회가 이루어져야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을 느낀다. 지금 나는 학생들 한 명, 한 명을 만나가며 그들의 상태를 점검하고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부딪친 문제를 해결하는데 구체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다. 이제는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라도 한 명씩 만나가야 할 것 같다. 그리고 학생들이 부딪치고 있는 기초학력 부족문제, 가정환경문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문제, 목표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문제 등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기위해 교과 담당 선생님들과 상담 선생님, 학생부 선생님들을 만나 진지하게 문제해결을 위해 접근해 나가야 하겠다. 또 있다. 학생들이 진정 향토를 사랑하고 민족의 장래를 생각하는 사람으로 자라게 하기 위한 각종 활동들 말이다. 이제 전문성을 갖추고 학생들을 지도하기 위한 노력을 하기 위해 잠자는 시간을 줄여야 할 것 같다. 내가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길만이 지난 4년 6개월 동안 계속된 고난에 찬 장정기간에 유명을 달리 하시거나 남편이나 아내, 가족을 잃은 선생님들과 한 사람 때문에 고생한 아내, 자식들 그리고 부모님들과 처가, 친족, 친척들 거기에 현장에서 괴로워하면서도 꿋꿋하게 살아오신 선생님들, 뒤에서 항상 든든한 연대로 지켜주신 분들께도 기쁨을 드리는 길로 안다. 나는 뼈저리게 느낀다. 나 혼자는 너무도 무력하다는 것. 그러나 '우리'는 아무리 어려운 일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3월인데도 가끔씩 눈이 온다. 또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진정으로 화사한 꽃 한 송이를 피우기 전에 거쳤던 인내의 시간이 밑받침이 되고 그 꽃이 열매를 맺을 때까지의 수많은 정성과 잔손질이 크나큰 기쁨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그러니까 우리는 간다.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해맑은 웃음과 힘찬 몸놀림이 우리를 가만히 있을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이재권 / 59년 전북 임실출생으로 전북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임실섬진 중학교, 순창농고에서 근무했었다. 순창에서는 어린이들을 위한 푸른 교실에서 향토기행, 환경기행 등을 맡아 활동했다. 남원고등학교에서는 사물 놀이반을 맡아 학생들과 풍물소리에 신명을 내기도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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