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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6 | 특집 [여행은 일상이다]
일상처럼 '여행'을 즐기는 법
채민(2016-06-16 14:21:37)




"떠나라 낯선 곳으로 그대 하루하루의 낡은 반복으로부터"
나는 고은의 시 '낯선 곳'에서 따온 구절로부터 여행을 꼭 가야겠다는 마음의 변화가 시작됐다. 일상의 지루함에서 벗어나 삶의 활력을 불어넣는 여행. 여행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건강한 신체와 명석한 두뇌를 만드는 데 기여한다. '여행'이 좋다라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나 다 아고 있다. 하지만, 내가 경계하고픈 마음은 여행을 좋아하고말고 보다는 남들이 다 좋아한다고 하는 여행, 20대에 빠질 수 없는, 꼭 해야 하는 것으로 손꼽히는 여행이기에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건지 여부이다. 남들의 욕망을 내 욕망으로 착각해 쫓고 싶진 않다. 혹시 모를 혼동을 분별하기 위해 여행을 가보려 한다.


누가 내게 좋아하는 게 뭐냐고 물으면 주로 책 이외엔 영화라고 답했고 돈이든 시간이든 여유가 있으면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으면 여행이라고 답했다. 그런데 실제 나는 영화를 자주 보는 편이 아니었다. 사람들에게 여행이라 할 만한 여행은 3년 전 전주-부산 여행 2박 3일 이후엔 없다.
그럼에도 내 위시리스트엔 유럽 여행을 비롯해 세계 일주 비슷한 목록이 있다. 최근에야 하게 된 생각이 있다. 내가 정말 여행을 좋아하는 걸까? 내가 정말 유럽에 가면 행복할까? 안 가봤으니 모든 생각은 가정일 뿐이다.
가정으로 결정짓고 싶지 않아 여행을 가보고 생각하려고 한다. 영화를 내가 정말 좋아하나?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계속 보아도 물리지 않았다. 보는 것 자체는 원래 좋아했으니깐 아마도 시간이나 기회가 안 닿아 자주 못 봤던 것뿐이었으리라. 이젠 내가 영화 좋아한다는 걸 뚜렷하게 안다.


왜가 정해졌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여행도 해봐야 내 기호를 확실히 알 것 같았다. 가보지 않곤 내가 해외 생활을 좋아할지 아닐지 모르니깐. 요새는 무전여행이나 비슷하게 해서 세계 일주를 많이 간다. 그 과정은 쉽지 않지만 돌아보면 뿌듯한 일이었던 여행 일지를 많이 봤다. 가슴 뛰게 하는 일지를 보면서 나도 그런 여행을 하면 어떨까 싶은 마음도 든다. 동시에 정말 내가 그런 여행을 좋아할까? 하는 마음도 있다.
내가 경계하고픈 마음은 여행을 좋아하고말고 보다는 남들이 다 좋아한다고 하는 여행, 꼭 해야 하는 것으로 손꼽히는 여행이기에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건지 여부이다. 남들의 욕망을 내 욕망으로 착각해 쫓고 싶진 않다. 혹시 모를 혼동을 분별하기 위해 여행을 가보려 한다.
여행가고싶은 마음이 들었고, 왜 여행을 갈지 생각해서 가기로 했으니 이제 어떤 여행을 갈지 생각해봤다. 어디는 다음 문제라고 생각했다.
최근 여행이 3년 전 여행이라고 말했다. 그때 전주에 가서 한 일은 한옥마을 가고 근처 유명한 맛집을 들른 일이다. 전주에 갔으니 비빔밥을 먹고 유명한 떡갈비 집과 빵집을 들렀다. 부산도 마찬가지였다. 남포동과 해운대를 들르고 돼지국밥, 밀면, 씨앗 호떡을 먹고 광안대교를 거닐다 왔다. 남는 기억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왜 그럴까.
남들이 하라는 코스대로만 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남들이 맛있다고 한 것 중 유명한 것만 먹으러 다녔다. 맛에 있어서 실패하진 않지만 그저 따라가기만 한 것이니 기억에 남지 않았다. 예를 들면 선생님이 풀이해준 과정을 지켜보면서 내가 풀진 않고 끄덕거리기만 한 것이다. 수업 땐 다 알 것 같았는데 수업이 끝나면 수업 때 배운 내용이 다 사라지는 경험과 같았다.


전주 한 카페에서 새겨진 기억
글을 쓰다 그때 찍은 사진을 돌아보니 그 2박 3일의 여행 중에 단연 독특하고 기억에 남는 게 하나 있었다. 전주에 한 카페를 방문한 일이었다. 난 그 당시 커피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다. 로스팅과 드립 커피, 더치 커피와 에스프레소 등을 집에서 할 수 있었다. 추천리스트 어디에도 없던 '로스터리'카페를 찾아보았다. 지금은 로스터리 카페가 많지만 3년 전엔 그리 흔하지 않았다.
카페 위치는 번화가나 역 근처가 아닌 다소 지역 외곽 느낌에 있었다. 동네 카페란 느낌을 물씬 받았다. 친구와 함께 처음에 드립 커피를 시켰다. 여긴 특이하게 바(bar)가 있었다. 사장님과 친한 손님들이 이야기하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우린 카페 구석 테이블 쪽에 앉았지만 가게 구경하면서 둘러보다가 사장님과 이야기를 하게 됐다. 드립 커피 내리는 모습에 많은 관심을 보이자 더 이야기하게 됐고 아예 우리도 바 쪽에 앉게 됐다. 그러면서 계속 커피 이야기를 했다. 혼자 집에서 취미로 커피를 즐기면서 생긴 다양한 질문들에 막힘없이 답해주시면서 계속 커피 음료를 만드셨다. 백문이 불여일'음'이었다. 인터넷에서 배운 몇몇 지식과 사장님의 생각이 달라서 살짝 잘 모르시나 생각했지만 반론할 여지없는 '맛있는 커피'로 이론을 종결시켰다.
계속 이야기하고 마시다가 더 있을 수 없게 다음 일정이 빠듯해져서 한두 시간만에 나왔다. 나올 때도 원두를 선물로 주셨다. 나올 땐 이미 밖은 어둑해졌다. 우리 동네 단골카페 사장님인 것처럼 잠깐이지만 친해졌단 느낌이었다. 내가 여기 살았다면 아마 여길 계속 왔겠지.


일상과 행복의 상관관계
광고인 박웅현 씨의 책 <여덟 단어>중 짧게 나오는 대목이 있다. 그는 딸에게 '여행을 생활처럼, 생활을 여행처럼 해봐'라고 했다. 그는 이런 여행을 할 때 그냥 눈으로 살짝 보는 게 아닌 깊게 보고 담아오며 의미를 남길 수 있다고 한다.
어떤 여행을 가고 싶은지 생각해봤다. 행복하고 기억에 남을 여행을 가고 싶다. 그리고 내 여행 경험 중 행복하고 기억에 남는 걸 생각해봤을 때 그 답은 관계와 일상에 있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지낸다. 여행에서도 비슷하게 지낼 수 있다. 어쩌면 여행이기 때문에 관광이 아닌 '일상성'을 넣으면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여행을 일상처럼'이란 말은 일상처럼 사람들을 만나 관계를 맺고, 생활하듯 관광지가 아닌 그 지역 사람들이 사는 곳을 가서 지내란 의미일 것이다.
계획형이든 충동형이든 '관계'와 '일상'이라는 키워드를 갖고 간다면 아마도 예상치 못한 혹은 예상 이상으로 즐거운 일들, 놀라운 만남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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