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호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9.12 | 칼럼·시평 [문화칼럼]
586세대와 2030세대 사이에 가로놓인 장벽
오세라비(2019-12-17 10:43:01)


‘자식은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자식은 부모가 묵묵히 실천하는 행동을 보고 배운다는 의미다. 바꿔 말하면 앞선 세대의 행동과 실천을 보고 차세대는 배운다는 말과도 통한다. 그렇다면 앞선 세대 즉 전 386세대, 현 586세대는 어떠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가?
이들 세대를 가리키는 말로 386세대라 불러야 맞다, 현재에 맞추어 586세대로 지칭해야 정확하다는 등 논쟁이 붙기도 한다. 필자는 586세대라는 명칭을 선호한다. 60년대 출생, 80년대 대학생, 현재 50대 이상 세대인 586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2030세대에게는 더 이상 신뢰를 주지 않고 좌절감과 때로는 분노를 안겨주는 세대가 되었다.
586그룹의 정점에 586 정치가 있다. 2004년 4.15 총선은 참여정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소추 정국에서 치러졌고 586 정치인들은 30대, 40대 초반의 나이에 국회에 대거 입성하였다. 이후 오늘날 강산이 두 번 가까이 변할 동안 사회 각 분야를 쥐락펴락하는 586이라는 신귀족주의가 탄생한 것이다.
586세대와 베이비붐 세대, 즉 1955~1963년생 사이의 50년대 출생자들은 다수가 겹친다. 또 베이비붐 세대보다 나이가 많은, 예컨대 1952년생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7선 국회의원으로 586세대 국회의원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정치인으로 연결되어 있다. 간단히 말해 한 줄로 봐야 한다. 그렇다면 통칭 586세대는 무엇을 축적하고 있으며 뒤를 잇는 2030세대는 그들에게서 어떤 점을 보고 배우며 지침을 얻을 수 있을까. 586세대는 2030세대와 커뮤니케이션에 전혀 능하지 않다. 흔한 말로 586세대 그들만의 리그를 공고히 하는 일에만 여념이 없지, 커뮤니케이션 대상자인 2030세대와 커뮤니케이션에 필요한 사다리마저 걷어찬다.
그러므로 586세대와 2030세대 사이에 장벽이 높게 자리하고 있다. 세대 간의 단절은 그 어떤 시기보다 냉랭하다. 메마른 지성의 시대, 얄팍한 지식인 범람, 가치관과 세계관의 혼란, 구루라 불리는 인물조차 찾을 수 없는 시대, 철학의 부재, 마치 망망대해에 조각배에 몸을 싣고 나침반을 잃은 채 이리저리 바람과 파도에 휩쓸리는 2030세대다. 또한 2030세대의 뒤를 잇는 10대 청소년들에 이르기까지 도대체 586세대는 어떤 존재인가?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자. 586세대라 하더라도 같은 인구 집단은 말하는 것이 아니다. 기득권집단 586과 그렇지 않은 586과는 분리해보아야 한다. 586 기득권집단과 달리 보이지 않은 곳에서 고통받고 신음하는 50대도 너무나 많다. 50대 남성의 자살률은 사망률 성비(남자 사망률/여자 사망률)는 전 연령층에서 남자가 높으며, 50대가 약 3배로 가장 높다. 그런가 하면 조기 은퇴와 경제적 빈곤으로 위기를 겪는 50대 남성의 고독사는 노년층보다 더 높다. 그만큼 586집단의 양극화도 심각하다.
우리 사회에서 메인스트림을 형성하며 모든 분야를 독점하다시피 한 지배 계층이 된 586을 보자. 프랑스 사회학자 피엘 부르디외가 분류한 다섯 가지 개념을 빌리면 586세대가 우리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는 막강한 자본의 힘이다. 학문적 자본, 문화적 자본, 언어적 자본, 정치적 자본, 상징적 자본의 형태가 바로 그것이다. 부르디외가 말한 상징적 자본이라 함은 유명 장학금이나 수상경력 등 스펙을 말한다. 지배계급으로 변모한 586세대는 그들의 자녀들에게까지 이러한 자본을 세습하기 위해 특정 카르텔로 얽혀 있다. 그들끼리의 인맥으로 장학금 독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스펙 만들어주기 등이다. 오늘날 우리가 생생하게 목도하는 기득권 세습의 현실이다.
586세대는 자신들이 가진 자본의 힘을 자신의 욕망 충족과 유지를 위해 또 그들의 자녀들에게 이전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586세대는 세속적 성공을 함께 거두었다. 부자가 즐비한 좌파 586세대, 자녀 해외 유학은 한 해 학비만 수 천만 원에서 1억 원 가까이 드는 미국 대학으로, 거주하는 강남 아파트는 몇 년 사이에 수 억 원이 상승하였다. 학생 시절 반일, 반미를 외쳤고 민주화운동의 결실은 계급 상승이라는 보상으로 돌아왔다. 명실 공히 지배계층으로 자리 잡은 586 기득권 집단이 된 것이다.
586세대는 특별한 선민의식으로 가득 차 있으며, 엘리트주의와 자신만이 옳다는 자기 정의감에 빠져있다. 2030세대에게 교훈을 주려고만 하지 그들의 주장에 귀 기울이기에는 매우 인색하다. 이로써 586세대는 도덕적, 윤리적 정당성에 둔감해졌으며 그들이 앞세우는 정의와 공정의식은 짜증스러운 데다 의심스럽다. 586 기득권 집단은 같은 평범한 586 집단과의 단절과, 2030세대와는 치명적인 불행한 단절이 있다.
노무현 참여정부 출범 시기 586세대는 존중받고 민중을 위해 봉사하였다는 신망을 얻었다. 하지만 그 후 민중과는 반대되는 행보와 동떨어진 곳으로 흘러가 그들만의 철옹성을 쌓으며 부르주아화가 되었다. 물론 입으로는 ‘우리가 진짜야!’를 자처하며 해묵은 교리를 여전히 읊어대지만 말이다.
2030세대에게는 모두 꼰대 아니면 꼴통 둘 중 하나일 뿐 586의 정통성은 희박해졌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롭게” 슬로건이 오히려 2030세대를 좌절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더구나 2030세대는 차원이 다른 디지털 기술혁명은 586과는 생활방식,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 방식까지 완전히 다르다. 새로운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생겨나고 있다.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분야에서는 기술적 융합이 일어나고 있다. AI 인공지능의 한계 없는 진화, 드론, 디지털 신기술의 발전은 젊은 세대의 삶의 방식을 바꾸고 있다. 따라서 이데올로기도 변화해야 하지 않겠나. 그러나 586은 변화에 따른 업데이트가 안 되고 있다.
586세대 여당 국회의원은 20대를 향해 “20대 남성은 민주주의 교육을 잘못 받은 탓에 정부를 지지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 설훈 의원), “전 정권의 반공교육 탓”(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의원)이라며 20대가 보수화되었다고 탓을 했다. 이는 586이 밀레니엄 세대를 전혀 이해 못 함을 뜻한다. 민주화운동의 열매를 너무나 오랫동안 차지한 채 주도권을 쥐고 놓지 않은 586의 세계관 렌즈로 밀레니엄 세대를 보기 때문이다. 게다가 586은 탐욕스럽고 부패의 냄새마저 풍긴다.
2030세대는 전통적인 갈등 요소인 이념 갈등, 지역 갈등에서 벗어난 세대다. 이들의 특징은 자기과잉이라고 할 정도로 자기중심적이다. 개인주의 성향이 매우 강하고 자기 성취를 소중히 한다. 베이비붐 세대의 자식 세대인 2030은 대부분 유복하고 과잉보호 속에서 성장하여 ‘우리’ ‘집단’ ‘공동체’라는 개념이 희박하여 파편화된 개인의식이 매우 강하다. 또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정책 등에 민감하다. 좌파 우파 이념적 구분도 점차 약해지고 있다.
과거 그 어느 시기보다 586의 가치와 2030의 가치 사슬이 붕괴되고 있는 시대인 것이다. 586의 퇴행적인 습관은 더 이상 진보하지 못하고 고착화돼 있다. 586은 차세대 성장의 장애물이다. 그것도 높은 장벽으로 둘러싸인 그들만의 성에서 권력을 향유하며 상류 기득권들끼리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분명히 사실은 오래전 세대교체를 부르짖으며 패권을 쥔 586은 이제는 기득권 세력이 되어 세대교체의 대상이 되었다. 미래세대를 위하여,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하여 586 세대교체가 시대정신으로 다가왔다. 녹슨 안테나가 되어버린 586은 이런 요구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