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호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20.6 | 연재 [여행유감]
뜻하지 않은 선물,포카라 페와 호수
포카라 페와 호수
김흥수(2020-06-08 17:39:47)

여행유감 | 포카라 페와 호수


뜻하지 않은 선물,포카라 페와 호수
글•사진 김흥수 투어 디플러스 대표




코로나19, 평생 겪어보지 못한 범 지구적 재난 속에 여행업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 갇힌 것 같습니다.

서울보다 유럽의 대도시를 더 자주 방문하던 제가 올해는 딱 한 번 비행기를 타보았습니다. 2월 1일 네팔... 이 기회가 없었다면 올해는 그야말로 방콕 신세를 면치 못했을 텐데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며 오래전 네팔에서 만난 뜻밖의 추억을 떠올릴까 합니다.

여행 중엔 생각지 못했던 기상이변이나 사고로 난감한 경우를 당하는 경우가 간혹 생깁니다. 대게는 나쁜 기억이 더 오래 남지만, 세상만사 나쁜 일만 일어나는 건 아니죠. 지금까지 10여 차례 이상 포카라를 다녀오면서 행운 같은 날을 맞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 일이 있었던 때는 2008년 7월, 지금부터 12년 전입니다.


7월의 네팔은 우기여서 페와 호수를 갔을 땐 하늘이 흐려 정말 칙칙했습니다. 다음날까지 시간이 있으니 비가 한차례 쏟아져 날이 맑기를 바라며 돌아섰죠.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도 하늘은 잔뜩 흐려있었습니다. 하늘은 쉽사리 우리에게 성산과 상봉을 허락하지 않더군요.

잠깐 구름을 비켜주면 될 것을 왜 이리 심통을 부리는지 하늘이 원망스러웠지만 담프스로 이동하기 전에 페와 호수에서 한 시간만 뱃놀이하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구름이 이동하면 좋고 아니면 산장의 일출을 기대하기로 했습니다. 그도 아니면 나갈코트에서 랑탕 히말리아를 볼 기회가 남아 있으니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약간은 무거운 마음으로 호수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모두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와~~~!!”

왜 탄성을 질렀는지 글로 설명하기가 어렵네요. 사진을 보시면 제가 이토록 감탄한 이유를 조금은 아실 것 겁니다.



페와 호수 상류의 부레옥잠이 떠내려와 호수를 덮었습니다. 예. 어젯밤 내린 폭우로 페와 호수 상류의 부레옥잠들이 떠내려온 겁니다. 그냥 부레옥잠이 아니라 엄청난 군락을 이룬 부레옥잠은 뗏목처럼 큰 덩어리가 저서 네팔 청년들이 물 위에서 부레옥잠을 딛고 건너뛰어 다닐 정도였습니다. 얼마나 많은 양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인데 하나같이 연보라색 꽃을 피우고 있어 장관입니다.


호수에서 보트를 젓는 사공들은 배가 다니지 못할 정도가 되자 이걸 걷어내느라 아침부터 씨름 중이었습니다. 놀러 나온 사람들은 모두들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졌습니다. 당시엔 이런 일이 7월이면 흔하게 일어나는지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날 이후, 갈 때마다 은근히 기대했는데 이런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더군요.


재작년 6월 페와 호수를 갔을 땐 강풍이 너무 불어 우리 팀 보트 한 대가 하류로 밀려가는 아찔한 사태도 있었습니다. 다행히 큰일은 없었지만, 사실 그날도 내심 기대를 했었습니다. 이렇게 바람이 불고 폭우가 쏟아지면 다음 날 페와 호수가 꽃밭으로 변할지도 모른다는 은근한 기대...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더군요. 2008년 7월에 본 페와 호수의 모습은 일생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할 기회였다는데 바로 우리가 그 현장에 있었던 겁니다.


이날 재미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뜻하지 않은 자연의 선물에 취하여 정신을 반쯤 놓고 있을 때 건너편에서 똑딱이 카메라를 든 양반들이 말을 건넸습니다.


“너희들 내일 아침 신문에 나올 거야.”

“왜?”

“아무튼, 보면 알아.”

농담을 하도 재밌게 하여 우리도 농담을 던졌습니다.

“그럼 너희들도 한국 신문에 실어줄게. 여기 봐! 찰칵!”

그때 찍은 사진이 바로 아래 사진입니다.



그때는 그냥 농담인 줄 알았습니다. 분위기에 취하면 무슨 말인들 못 하겠습니까? 이틀 후 담프스 산장에서 돌아와 랜드마크 호텔에 도착했더니 지배인이 신문을 건네며 웃습니다.


“코리안 프렌드, 너희 네팔 신문에 나왔어.”


으잉? 한 종류의 신문에만 나온 것이 아니라 무려 두 곳에 저희가 실려 있었습니다. 영자 신문 카트만두 포스트에는 컬러로 실려 있었죠. 그 신문을 우리에게 보여 주려고 지배인이 따로 보관해 두었다고 합니다. 맙소사... 일행 모두 깜짝 놀라 웃었습니다. 아래 신문이 바로 우리가 실렸던 신문입니다.



카트만두 포스트는 독해할 수 있으리라 보고 그냥 두고, 네팔 신문을 간단하게 해석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한국에서 오신 귀한 분들을 환영하기 위해 고심을 하다 어젯밤 깜짝 쇼를 준비했습니다. 2만 5천 포카라 시민이 참여한 깜짝 쇼에 감복한 귀빈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십시오.(이하 생략)”


2월 손님들을 모시고 페와 호수를 갔을 때 이곳이 전부 부레옥잠으로 덮인 적도 있었다고 이야기를 해드렸더니 절반 이상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시더군요. 이렇게 확실한 증거가 있는데도 안 믿으시니 허풍을 떤 것처럼 속이 답답했습니다. 늦었지만 이 글과 사진이 소개되면 증명을 해드릴 수 있겠습니다. 흔한 여행지에서 이런 변수들이 없다면 여행이 이처럼 매력적이진 않을 겁니다.

지금처럼 끝없는 터널 속에 있어도 이렇게 즐거웠던 날들을 상상하다 보면 언젠가는 환한 빛을 맞을 겁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