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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 | 기획 [남원의 판소리]
판소리의 고장 동편제를 완성하다 ①
남원의 소리를 담은 공간들
신동하, 성륜지 기자(2022-10-12 13:16:45)

기획 | 도시의 유산ㅣ 남원 판소리

판소리의 고장 동편제를 완성하다


글 신동하•성륜지 기자







판소리는 ‘놀이판’에서 소리꾼이 노래와 사설, 몸짓, 발짓 그리고 고수의 신명 나는 북장단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종합예술이다. 일반적으로 병풍을 두르고 돗자리를 펼친 마당에서 공연되며, 짧게는 세 시간에서 길게는 여덟시간 정도 걸리는 긴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판소리는 ‘제’를 기준으로 크게 세 종류로 구분된다. 광주, 나주, 장흥, 해남, 보성 등 서쪽 지역에서 발생하여 전승된 <서편제>, 충청, 경기도 일부 지역에서 발생했지만 지금은 대다수가 사라진 <중편제>, 전라도 동북 지방인 구례, 운봉, 순창, 남원 등 동쪽 지역으로부터 전승된 <동편제>가 있다.  


동편제는 남원에 뿌리를 둔다. 남원에서 시작되어 수많은 명창과 명인을 배출한 동편제는 웅장하고 씩씩한 소리가 중심이다. 진중하게 시작된 구절은 끝으로 가면 쇠망치로 내려치는 듯 강해진다. 아니리가 길게 발달하지 않고 발림도 별로 없으며 목으로 내는 통성에 의지한다. 말과 장단을 정박에 맞춰 부르는 ‘대마디 대장단’과 높게 들어내는 발성인 ‘들고 나가는 소리’는 동편제만이 가진 특징이다. 서편제에 비해 우조나 평조가 잦고 비교적 빠른 장단으로 진행된다.


남원을 지형적으로 살펴보면, 백두대간의 정점이자 종착지인 지리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고, 동쪽으로는 경상남도가, 남쪽으로는 전라남도가 자리하고 있어 삼국시대부터 교통이나 지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다. 특히 주막촌이 번성하여 다양한 계층이 활발한 문화와 생활을 교류했던 것이다.


남원은 옛부터 민속 예술이 성행했다. 민요와 좌도농악과 굿놀이가 그것. 좌도 농악의 고졸함과 원박을 강조하는 음악성은 남원의 판소리에 그대로 반영되었으며, 서민들에 의해 연주되고 행해져 왔던 바탕도 자연스럽게 내재되었다. 매년 백중날에 남원에서 행해지는 ‘삼동굿놀이’도 영향을 주었다. 삼중굿놀이를 통해 큰 판이 만들어지며 무속 담당층이 유입되었고, 계급이 같았던 무당과 광대는 혼인관계를 맺으며 예술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판소리는 여전히 남원을 지탱하고 있다. 가왕 송흥록을 필두로 한 송문일가로부터 시작하여, 평생 남원에서 동편제 판소리를 지켜온 강도근, 최근 국가무형문화재로 인정받은 안숙선까지 이어진 소리의 맥은 남원을 대한민국의 국악 ‘산실’로 만들었다. 오늘날 남원의 자랑스러운 유산이 된 판소리의 면면을 들여다보았다.  




남원의 소리를 담은 공간들


남원은 소리하는 사람들이 살기 좋은 고장이다. 지리산을 끼고 있는 남원의 동부는 예로부터 우수한 자연유산으로 유명했다. 폭포수와 골짜기가 다른 지역보다 많아 소리꾼들이 독공하며 소리의 경지에 이르게 했다. 시대를 휘어잡은 가왕 송흥록의 생가와 국악을 발전시킨 선현들의 사당이 이곳에 있는 것은 놀랍지 않다. 남원의 서부는 크고 작은 예술 공간들이 모여 있어 소리꾼들이 그동안 갈고 닦은 소리를 선보이기 안성맞춤이다.



동편제의 탯자리, 동편제 마을




지리산 둘레길에 자리한 동편제 마을은 가왕 ‘송흥록’과 국창 ‘박초월’의 생가가 있는 ‘동편제의 탯자리’이다. 송흥록은 조선말기 순조, 헌종, 철종 대에 걸친 명창으로 판소리가 계급적,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고 민족의 음악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만든 장본인이다. 조선 정조초기 명창 권삼득의 수행고수 아래에 태어난 그는 12세 때 지역의 백운산으로 들어가 소리를 배웠고 10년만에 득음대성을 이루었다. 철종 10년에는 정 3품 통정대부 벼슬에 제수되어 왕 앞에서 여러차례 소리를 했다. 그는 계면조와 진양조를 완성하고, 전라도 민요의 선율에 경상도 민요의 메나리조를 도입하였으며, 판소리의 모든 가사를 집대성했다. 동생 광록, 광록의 아들 우룡, 우룡의 아들 만갑에게 소리를 전수해 남원 소리의 주축을 만들었다.


중요무형문화제 수궁가 보유자 박초월은 현대 판소리의 대모다. 그는 1935년 송만갑으로부터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적벽가>를 배우며 소리에 입문한 그는 후진 양성에 힘썼다. 1955년 한국민속예술학원을 창립한 것을 시작으로 1961년에는 한국국악협회의초대 이사장을, 1974년에는 판소리 보존회의 이사장을 맡았다. 별세하였으며, 2000년에 국악의 성지로 이장했다.


이들의 생가 일원에서는 국악선인들의 멋과 혼을기리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전문적으로 양성된 문화해설사들의 설명을 상시 들을 수 있으며,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서 판소리가 재생되어 정취가 느껴졌다. 근처에 마련된 소리 쉼터에서는 봄과 가을의 토요일마다 ‘토요 판소리’라는 강연이 열려 판소리 명창들에게 직접 판소리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6년 전부터 ‘동편제 마을 국악축제’가 매년 2박 3일간 열려 여러 국악 명인들과 관광객들이 하나되는 곳이기도 하다.



국악 성현의 유지를 잇다, 국악의 성지





동편제 마을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이동하면, 국악의 성지가 있다. 국악의 성지는 남원이 우리 민족의 전통이 담긴 국악의 고장임을 알리기 위해 국악을 사랑하는 이들의 염원을 모아 조성되었다. 74,540 제곱미터의 넓은 공원과 국악 전시체험관, 야외공연장, 독공장을 갖추고 있으며, 국악기 제작체험, 국악 상설공연, 국악체험, 판소리체험 등을 운영하여 선현들의 유지를 잇고 있다. 사당과 선인묘역에서는 옥보고, 송문일가를 비롯한 국악선인들의 묘역과 위패를 봉안하여 후배 국악인들이 참배하고 득음을 연수할 수 있도록 했다.



남원의 상징, 광한루원





춘향과 몽룡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춘향전’의 배경인 광한루원. 평양의 부벽루, 진주의 촉석루, 밀양의 영남루와 함께 조선의 4대 누각으로 알려져 있다. 춘향의 사당이 있는 곳인 만큼 판소리의 맥을 잇는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매년 음력 4월 8일 전후에는 춘향제가 열린다. 일제 강점기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처음 시작된 축제는 매년 국악대회를 열어 판소리 명창을 미롯한 많은 예인들을 선발한다. 춘향제는 억압된 민중의식이 표출되고, 남성과 여성이 평등하게 축제에서 기량을 펼칠 수 있도록 하여 평등정신을 실현한 의미있는 행사. 


다채로운 공연도 마련되었다. 봄과 가을의 주말마다 열리는 ‘신관사또 부임행차’는 춘향전을 거리 퍼레이드와 마당창극의 형태로 각색한 것으로, 기획과 운영에 남원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더욱 뜻깊다. 매주 목요일과 토요일 오후 2시에는 광한루원 음악회가 열려 ‘삼도 풍물가락’과 판소리 ‘춘향가’, 승무와 살풀이를 중심으로 한 ‘민속 무용’, ‘기악산조’, ‘남도민요’등을 감상할 수 있다. 밤이 되면 남원시립국아단의 수준 높은 상설 창극이 아름다운 야경 속에서 이어진다.



남원예촌과 안숙선 명창의 여정





광한루원의 북문에는 대규모 문화시설단지인 ‘남원예촌’이 만들어졌다. 최기영 대목장의 손길이 직접 닿은 한옥체험관과 조갑녀명무관, 관서낭, 예루원으로 구성된 이곳에는 ‘안숙선 명창의 여정’이란 이름의 판소리 기념관이 생겼다. 


얼마 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안숙선 명창은 판소리계의 프리마돈나다. 남원의 산동면에서 태어난 그는 남원을 대표하는 판소리 명인인 외삼촌 강도근으로부터 소리를 처음 배웠으며, 19세에 상경하여 만정 김소희에게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를 사사하였으며, 박봉술에게 ‘적벽가’를 정광수에게 ‘수궁가’를 성우향에게 ‘강산제 심청가’를 배웠다. 국립창극단에 입단한 이후에는 뛰어난 음악적 재능과 연기력을 바탕으로 작품의 주역이 되었다. 특히 춘향역은 많은 익기를 끌어 당대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그가 ‘영원한 춘향’으로 불리게된 계기가 되었다. 또한 1995년 김덕수 사물놀이 패와 독일의 재즈그룹 레드선과 협업하여 발매한 <토끼이야기>는 한국 크로스오버 음악의 전설로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그의 소리는 한국에서만 유명한 게 아니다. 1988년 유럽 8개국 순회공연을 시작으로 미국 카네기 홀 공연, 링커넨터 여름축제공연,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 한국인 최초 초청 공연,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 한국인 최초 초청 공연 등 세계 40여개국의 초청 공연을 통해 우리의 소리를 알리기도 했다. 


기념관은 다양한 상설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명창 대담’과 ‘어린이 국악교실’, ‘명예 소리꾼’이 그것. ‘명창 대담’은 안숙선 명창과 그의 제자와 함께 자유로운 주제로 대담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남원시민 및 광광객을 대상으로 하며 사전예약 신청자에 한해서 진행된다. ‘어린이 국악교실’은 기념관의 관장인 남원 출신 김미나 명창이 직접 운영한다. 남원시 관내 학생들을 대상으로 국악 인재 발굴과 안숙선 명창의 후학 양성을 목적으로 한다. 판소리의 이론과 실기를 병행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으며, 다양한 공연에 참가할 수 있다. ‘명예 소리꾼’은 기념관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판소리 강좌이다. 매월 1회 안숙선 명창의 특강이 예정되어 있으며 매주 수요일 7시에 진행된다.



판소리 대중화, 국립민속국악원  





나라에서 운영하는 국악원은 전국적으로 네 곳에만 있다. 중앙에 있는 국립국악원을 포함하여 진도에 있는 국립남도국악원과 부산에 있는 국립부산국악원, 그리고 남원에 있는 국립민속국악원이다. 네 개의 국악원마다 특성화된 역할이 있다. 서울의 본원은 정악단, 민속악단, 창작악단까지 통틀어 운영하고 있다. 진도 같은 경우는 남도음악 위주의 공연을 펼치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생긴 부산국악원의 경우 탈춤과 동래야류와 같은 춤이 강세하다.


국립민속국악원은 1992년 판소리나 창극과 같은 민속음악에 집중하고자 만들어졌다. 판소리 다섯마당을 현대적 감각에 맞춰 재해석한 창극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공연을 펼치고 있으며, 국악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나라의 모든 민속 음악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전승하고자 노력하는 중이다.


특히, 남원의 정체성이 드러나면서도 민속음악의 큰 줄기인 판소리의 맥을 잇기 위해 초연 창극 제작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창극 ‘지리산’이 대표적이다. ‘지리산’은 지난 2019년 남원의 아운마을을 배경으로 구한말이라는 격동의 시대에 피어난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다루었다. 작품성과 대중성을 극대화하면서도 지역축제와 연계된 아주 좋은 예시다.


또한, 아이들에게 창의적 경험을 제공할 수 있도록 전래동화 및 명작동화 소재를 놀이와 더불어 감상할 수 있는 작품들도 매년 보급하고 있다. ‘이야기 보따리’ 시리즈가 그것이다. 올해 5월에는 그 일환으로 토끼전을 각색하여 바다와 환경을 주제로 한 어린이 창극 ‘토끼가 어떻게 생겼소?’를 국립무형유산원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다가오는 11월에는 신규 어린이 무용극이 제작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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