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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5 | 연재 [문화칼럼]
축제정신이 사라진 축제, 무엇이 문제일까
김정수 전주대학교 공연방송연기학과 교수(2023-05-09 13:36:29)


축제정신이 사라진 축제, 무엇이 문제일까 


글 김정수 전주대학교 공연방송연기학과 교수


‘희곡작가가 축제를 맞아 희곡을 응모할 계획이면, 먼저 그 도시 행정장관에게 코러스(춤과 음악을 주로 맡는 단역배우)를 요청한다. 행정장관은 이 코러스에 필요한 경비를 부담할 부유한 시민을 물색해서 극작가당 한 명씩 임명한다. 이 시민 후원자가 가진 재력과 관심 여부에 따라 작품의 질이 달라질 수 있기에 극작가와 짝을 이루는 일은 제비뽑기로 결정한다. 후원자는 극장과 배우를 제외한 일체의 제작 경비를 책임지게 되고 경비를 부족하지 않게 적절히 지원하는 것을 한 시민으로서 당연한 의무요 개인적 긍지로 삼았다.


축제에 작품을 내는 희곡작가는 일 년 동안 준비한 세 편의 비극과 한 편의 사티로스극을 제출해야 했다. 또한 자신의 작품을 책임 연출하여 무대에 올리는 의무를 갖는다. 이러한 희곡작가의 노력은 국가로부터 금전적 보상을 받았으며, 축제의 경연에서 우승하게 되면 제법 많은 상금을 받기도 했다.


​국가는 배우들의 임금을 지불하고 필요한 의상을 책임진다. 뿐만 아니라 연극이 공연될 모든 극장의 설비를 맡아 준비했다. 이처럼 축제 안에서 연극제작은 부유한 시민이나 국가의 재정지원 아래, 대단히 중요한 종교적, 시민의 여가생활 기능을 가진 것으로 간주되었다.


연극인들에게는 참으로 꿈만 같은 이야기로 들릴 것이다. 그런데 이 꿈같은 사실이 꿈이 아니라 이천 오백 년 전, 그리스에 실재했던 일이었다. 언급된 축제는 바로 서양연극의 기원이라 일컬어지는 아테네의 디오니소스축제이며, 이 시기의 희곡작가는 아이스킬러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등, 주옥같은 작품을 후대에 남김으로써 전설이 된 사람들이었다. 디오니소스축제에 출품된 이들의 비극작품들은 아테네 시민들의 긍지였으며 국가적 유산이 되었다.


지난 3월 31일부터 4월 2일까지 제 39회 전북연극제가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명인홀에서 열렸다. 60년이 넘는 역사로 전북연극을 지켜온 ‘창작극회’와 창단 20년이 넘어 굵직한 성년이 된 ‘극단 하늘’이 참여해 전북연극의 뿌리 깊은 관록을 과시해 보였다. 두 극단 모두 연륜 있는 배우들과 젊은 신진 연기자들이 함께 어우러진 무대를 통해 그 우열을 가리기 힘들도록 아름다운 예술혼을 보여주었다. 그동안 척박함과 열악함으로 대변되던 전북연극의 환경을 생각해보면 한마디로 흐뭇한 정경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공연작품의 수준을 떠나 그 외형적 모습에서 찹찹함과 좌절감을 안겨준 연극제이기도 했다. 십 수개 공연단체가 가입돼있는 전북연극협회가 주최하는 축제에 달랑 두 개 단체만 참여했다는 사실뿐 아니라, 그 이면의 속사정까지 살펴보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연극제는 말 그대로 연극 축제다. 관객들에게는 전라북도 연극의 발전된 모습을 확인하며, 각 극단이 준비한 최고의 연극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며, 연극인들에게는 선의의 경쟁을 통해 교류와 화합의 장으로 활용될 의미있는 축제인 것이다. 하지만 불혹의 나이가 다되어가는 전북연극제가 해마다 위축되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올 전북연극제에는 단 두 극단이 참여하여 200석 규모의 소극장에서 일회씩의 공연을 가졌다. 홍보도 미약하여 상당수 시민들은 연극제 존재 자체를 알지도 못했다. 작은 소극장의 대부분 관객은 연극인, 자체 연극관계자들로 채워지고, 오로지 전국연극제 지역 예선의 임무에만 충실한 듯 보였다. 행사 리플렛에는 ‘제 39회 전북연극제’와 ‘제 41회 대한민국연극제 전북지역예선’이 병기되어 있고, 언제부터인가 글자 크기와 관계없이 후자가 더 중요한 일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다.


물론 이 책임은 전라북도 연극인들의 몫이라고 해도 마땅히 할 말은 없다. 하지만 90년대부터 6~7개 극단이 참여해왔고, 2013년도 최대 9개 극단까지 참여한 기록이 있는 도내 유일무이한 연극제가 단 두 극단이 참여했다는 사실은 무엇인가 다른 문제가 있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수 년 전부터 생겨난 이 현상, 그것도 연극협회의 간청에 의해 극단들이 마지못해 참여하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 역시 연극인들의 나태와 무책임으로만 돌리기에는 구조적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은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다.


2022년 통계로 살펴보면, 국내 광역자치단체가 지역기반 연극제를 위해 협회에 지원하는 비용이 가장 적은 곳이 전라북도다. 대부분 지역과 적게는 2배, 많게는 수 배 가량의 차이가 난다. 이 지원금으로 연극제를 치르는 전북연극협회 입장에서는 기본적인 대관료와 홍보 기획비 부담으로 참여극단의 제작비를 넉넉하게 지원할 수 있는 처지가 못된다. 참여 극단이 많으면 많을수록 제작지원금이 상대적으로 대폭 줄어드는 구조다. 한 편의 연극공연 제작비에도 못미치는 지원금으로 치루는 연극제에 많은 극단이 참여하기를 바라는 것은 대단히 사치스러운 일일 수 밖에 없다.

물론 예전에 비해 문화예술 관련 예산은 늘고 있는 추세고, 재단 등을 통한 체계적인 지원시스템도 잘 자리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외연이 커졌다는 사실로만 만족할 수는 없는 부분도 분명 있다. 지원의 방향, 지원의 방식 등,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적재적소에 적확한 시기에 지원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모든 예술에 적용되는 일이긴 하지만 연극, 음악과 같은 현장예술, 공연예술은 특히 그 지원 방식과 시기가 더욱 중요해진다.


​흔히 시나 도의 민간 지원형식을 보면 한 단체에 3년을 지원하고 그 지원을 다른 단체로 돌리는 경우가 있다. 형평성을 생각한다면 옳은 일이지만 지나친 행정편의주의란 생각도 든다. 문화예술 관련 지원은 기업의 그것과 분명 다르다. 몇 년을 지원했다고 자생력이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에 대한 투자는 그 유형적 결과를 수익으로 산출할 수 없다. 그러기에 심의과정에서부터 신중한 지원방향, 사안의 경중을 감안한 효율적 지원책 마련이 절실하다.


전라북도에는 국내 네 번째로 설립된 관립극단, 전주시립극단이 있다. 또한 63년째 공연활동을 지속해온 국내 최장수 극단이 있다. 전라북도는 전통적으로 연극이 강한 지역이었고 여전히 많은 인재들을 배출해내고 있다. 멀리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축제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뛰어난 역사적 배경을 지니고 있는 전라북도의 대표적인 연극축제가 초라하게 위축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못내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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