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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5 | 연재 [이정현의 환경리포트 ]
전주천 버드나무야 함께 살자
잘려나간 버드나무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2023-05-09 14:10:02)

전주천 버드나무야 함께 살자  


글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오래된 역사문화 도시, 전주의 상징인 버드나무 260여 그루가 무참하게 잘려나갔다. 바람이 실어 온 버드나무 씨앗을 전주천과 삼천이 품어 싹을 틔웠고, 햇볕과 비가 기르고 20년 가까이 시민과 환경단체들이 가꾼 나무들이다. 물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도록 일부는 솎아내고 키 큰 나무는 가지를 쳐냈다.


치명자산을 병풍 삼아 한옥마을 기와지붕과 서학동 낮은 건물을 좌우로 두고 서 있는 버드나무의 연둣빛 잎새와 하늘거리는 가지는 한옥마을과 전주를 더 빛나게 하는 존재였다. 화순집 등 오모가리탕집 가는 천변길은 많은 전주시민의 추억이 담겨있다. 남천교 버드나무는 사계절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며 전주 한옥마을을 조망하는 명소이자, 웨딩 촬영과 한복 촬영의 성지로 자리 잡았다. 


버드나무만 잘린 것이 아니다. 야생동물의 은신처이자 서식처로 가을이면 은빛 물결로 장관을 이루던 물억새 군락을 자르고 캐냈다. 그리고 그곳에 계절 꽃밭을 만든다면서 ‘금계국’ 등 번식력이 강한 외래식물이 섞인 법면 녹화용 꽃씨를 혼합 파종했다. 물길을 따라 하류까지 빠른 속도로 확산하면서 생태계 교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생물학적 오염 행위다. 


하천의 버드나무와 물억새, 갈대군락은 야생동물의 은신처이자 서식처이다. 남천교 일대는 전주천에서 법적 보호종인 수달, 원앙, 삵이 처음 발견된 곳이다. 여울과 소, 하중도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억새군락과 버드나무는 야생동물과 고유종인 쉬리, 꺽지 등 많은 물고기를 불러 모았다. 물억새밭의 멧밭쥐나 새들을 노리는 삵과 황조롱이, 새매와 같은 맹금류들이 찾아온다. 


전북환경운동연합 초록시민강좌 특강을 위해 전주를 찾은 가로수지키기시민연대 최진우 대표는 물가의 버드나무 숲은 여러 야생 생명의 집이자 삶터라고 강조했다. “버드나무는 잎보다 꽃을 먼저 피우기 때문에 이른 봄에 깨어난 배고픈 꿀벌에게 꽃가루와 꿀을 식량으로 제공한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다른 나무에 비해 일찍 잎이 나고 가장 늦게 잎을 떨구기 때문에 버들잎벌레, 사시나무잎벌레 등 수백 가지의 곤충과 애벌레가 살아가고, 박새, 곤줄박이, 뱁새, 직박구리, 딱따구리 등 새들의 먹이터와 은신처가 되어준다”라고 덧붙였다. 


​전주시민도 자연성을 회복한 전주천의 선물을 받았다. 사시사철 멋진 자연의 풍경을 즐기며 안전하게 산책할 수 있고, 수달과 너구리, 고라니를 만나는 기쁨을 누렸으며, 물 만난 아이들의 생태 학습장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이런 전주천의 버드나무가 잘리고 난 후의 살풍경을 본 시민들은 나무 학살이자 생태 참극이라고 분노하고 슬퍼했다. 버드나무가 잘린 자리에는 탁상행정과 난개발을 비판하는 시민의 팻말과 현수막이 걸렸다. 공감하는 현수막이 이어졌다. 식목일에는 한옥마을 남천교에서 시민들이 준비한 버드나무 애도식이 열렸다. 남은 버드나무를 지켜달라는 서명운동에 시민 5,000명이 화답했다. 수많은 댓글로 기후위기 시대에 맞지 않는 생태계와 경관의 훼손을 질타했다. 생태 감수성이 전혀 없는 시장이 잘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수 주간 김은총은 버드나무가 사라진 상실감에 “유실”이라는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 일인시위도 한 달을 넘겼다. 12일과 21일 전주시청 노송광장에서 기자회견과 문화제를 이어갔다. 


​그런데도 전주시장은 사과 한마디 없다. 책임 있는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민관 협의기구인 전주생태하천협의회의 소위원회 운영 또한 면피용으로 보인다. 외려, 내부 감사와 예산 축소를 통해 협의회를 압박하고 있다. 


전주시는 홍수 피해 방지를 위해 버드나무를 벴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하지만 버드나무가 하천 통수 단면적 감소에 영향을 미치는지, 홍수 유입량과 비교해서 제방의 여유고가 부족한지, 홍수배제(물 흐름) 속도를 늦추는지, 체육시설, 언더패스, 보와 같은 구조물의 영향은 없느냐고 묻는 것에는 묵묵부답이다. 오히려 버드나무를 벤 이유나 좀 알자, 근거를 설명해달라는 시민과 기자에게 “홍수 나면 책임질 것이냐?”라고 윽박질렀다. 하천 토목 전문가는 ‘나무를 벤다고 해서 통수 단면이 커진다거나 홍수배제 속도가 빨라진다고 말하는 것은 토목과 1학년생이 들어도 웃기는 말’이라고 지적했다. 


전주천 하천기본계획에 따르면 전주천은 대부분 구간에서 홍수 소통 능력을 확보하고 있다. 일부 구간의 제방을 높이거나 보완하고, 횡단구조물(보)에 대한 능력 검토 후 홍수 소통에 지장이 없도록 재가설해서 치수 안전도를 확보하는 것이 기본 방향이다. 버드나무는 전통적으로 저수지 둑과 하천 제방을 튼튼하게 하는 치수용 나무였다. 자연이 물가의 나무로 선택한 이유도 생각해봐야 한다. 


아직은 제도적, 정책적 뒷받침으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일부 도시에서는 ‘나무 권리선언’을 발표했다.


“우리는 나무와 숲 없이 존재할 수 없다. 나무는 생태계를 이루는 핵심존재로서 탄소중립, 기후위기 시대 인간의 과도한 욕구와 필요에 의해 착취당해서는 안 된다. 나무는 지구의 일원으로 참여할 권리가 있다.” 

-부산 나무권리선언(2021년 12월)


우영우의 ‘팽나무’ 권리만 인정할 일인가. 한 생명으로서 나무의 무게는 동등하다. 남은 150그루의 버드나무, 최대한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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