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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 | 연재 [홍PD가 만난 청년]
많이 읽고, 쓰고, 듣고, 보며 자신 안의 또 다른 감수성을 깨워라
연출가 이왕수
홍현종(2019-11-15 11:00:10)

지역에서 전통문화를 통해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낸다는 것, 그것도 기획과 제작, 연출을 두루 섭렵하며, 크고 작은 무대와 행사장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사람 이왕수(35).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시도를 통해 무한 변신하고 있는 연출가 이왕수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본인이 생각하는 이왕수는 누구인가요?
연출가 이왕수입니다. 어린 시절 경기도 성남에 살았는데, 집안에 국악 소리가 계속 흐르고는 했습니다. 거실에 있던 전축에서 나오는 음악이었는데, 이은관의 '배뱅이굿'이었습니다. 따로 국악을 전공하시지는 않았지만, 이 노래를 따라 부르는 아버지는 이미 국악인이셨고, 진정한 국악 애호가였습니다. 물론 저도 자연스레 국악을 접하면서 성장하게 되고, 이후에 국악인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판소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부친의 영향으로 배뱅이굿을 항상 들었는데, 저도 모르게 내용을 외우게 되었고, 결국에는 이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한 번은 TV에서 배뱅이굿이 나오는데, VHS로 녹화하고, 그 테이프를 다시 카세트로 녹음해서 들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인데, 정말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이은관의 소리가 너무 좋아서 아버지에게 판소리를 해보고 싶다고 했더니, 예상과는 다르게 안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소리를 배워보고 싶은 미련이 남아서, 중학교 입학 후 아버지 몰래 엄마를 설득해서 동네 국악학원에 등록을 하고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전북대학교에서 판소리를 전공하셨습니다. 대학 진학은 어땠나요?
학원 원장님의 추천으로 국악예고에 진학을 하게 되는데, 그때 정말 놀랐습니다. 저는 어린아이 같았고, 판소리를 잘하는 친구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전국에서 모인 판소리 전공자들을 보며, 저의 판소리 실력으로는 쉽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고교 1학년 때 친구의 소개로 충남 공주에 있는 박동진 판소리 전수관을 방문하고, 그제야 제대로 판소리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박동진 선생님으로부터 소리도 많이 배웠지만, 이때 판소리 이외에 이생강 대금 연주와 이경섭 작곡가의 작품 등 다양한 음반을 접하게 되었는데, 너무 좋은 음악들이었습니다. 이 음악들이 저에게는 또 다른 자극으로 다가왔습니다. 판소리 연습을 더 많이 해야겠다는 의지도 북돋아 주었고, 최소한 대학은 진학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오기도 생겼습니다. 그리고는 전북대에 입학하게 됩니다.


전북대에서의 생활은 어떠셨나요?
막상 대학에 와보니, 고등학교 시절과 커리큘럼이 똑같아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연기나 공연예술, 창극 등에 대한 수업은 없이, 고등학교 시절과 똑같이 판소리 레슨만 받는 느낌이었습니다. 심지어 이럴 거면 '대학에 왜 왔지'라는 회의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하고, 그냥 혼자서 소리 공부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군대에 가고 복학을 하였는데, 그 때 주호종 연출의 창극 강의가 개설되었습니다. 너무 좋았습니다. 주호종 연출가는 창극에 대해서는 정말 전문가인데, 이분 덕에 학과 내에서 창극도 제작해보고, 다양한 시도를 해봤습니다. 제 생각에는 전북대학교 한국음악과가 이때부터 변화가 시작되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주호종 연출과는 어떤 사이셨나요?
국악예고 시절부터, 판소리와 연출 사이에서 고민을 하고는 했습니다. 사실 판소리보다는 연출에 뜻이 더 있었는데, 주호종 연출을 만나고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대학 강의실에서의 첫 만남 후 10여 년을 연출자로 모셨습니다. 저는 조연출로 따라다니면서 열심히 배웠습니다.

판소리를 전공한 괴짜 소리꾼 이왕수에게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전환점이 있었는데, 2016년 국립무형유산원의 연출가 발굴 공모전 '출사표'에 선정되면서, 본격적인 연출가로서의 면모를 나타내기 시작하는 일이다.



연출은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연출에 대한 꿈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있었고, 대학 졸업하고는 혼자서 대본도 써보고, 기획도 해보고는 했습니다. 주호종 연출과 함께하던 시절에도 계속 조연출만 할 수는 없다는 점은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개인 독주회 하듯 입봉을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제대로 데뷔를 하고 싶어서 마땅한 장소와 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침 2016년 국립무형유산원의 '출사표'라는 전통공연 연출가 공모전이 생겼고, 다행히 판소리 적벽가를 활용한 '화용도'를 가지고 선정되게 되었습니다.


연출을 해보니 어땠나요?
선정이 되고 '화용도' 준비를 하는데,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살면 되겠구나'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판소리나 국악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점은 더 좋았습니다. 국악으로도 해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문제는 장르가 아니라 방법이었다고 결론짓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소재,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나면 국악 공연도 흥행이 되겠다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고, 모든 게 재미있었습니다. 정말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이후 다양한 연출을 하게 되는데, 기억에 남는 작품은 어떤 것인가요?
여러 국악 작품들의 연출은 물론, 전주대사습과 전주문화재야행 등 큰 행사의 연출을 담당해 보았습니다. 다들 소중하고 값진 경험들이었고,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올가을에 만났던 '만세배더늠전'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전북도립국악원 단원분들에게 많이 배웠으며, 작창, 작곡, 지휘자분들을 제작 현장에서 직접 만나볼 수 있었다는 점이 저에게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특히 고선웅 연출을 통해 연출의 기법과 단원들과의 소통 방법 등을 배울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대본 상태이던 작품이 판소리로 완성이 되고, 고전의 테마가 수시로 이야기를 넘나들고, 연기를 담당했던 도립 분들도 행복해하는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정말 뜻깊은 작품이었습니다.



이왕수를 연출가로 지탱해주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어려서부터 '저 자신을 시험해보자'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이 정도는 내 스스로 할 수 있지 않을까? 한계를 정하고, 도전해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다음번에는 좀 더 해보자, 이런 식으로 스스로의 한계를 늘려갔던 것 같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같이 해주는 분들이 계셔서 가능했다고 생각됩니다. 2016년 전주대사습에서 인연을 맺은 분들인데, 각자 맡은 일들을 책임감을 갖고 해주는 고마운 분들입니다.


연출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연출자는 조력자, 중재자, 혹은 시녀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모든 스태프를 모셔야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같이 작업하는 분들이 더 잘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연출자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작품을 제작할 때는, 가능한 화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우리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고향은 아니지만, 전주가 좋습니다. 이곳에 있어야 마음이 편안합니다. 굳이 서울로 가야 하나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편안히 현재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특히 이곳에는 생각을 같이 하는 분들도 많이 계셔서 좋습니다.


지역 후배 연출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는 무엇일까요?
'같이 잘 먹고, 잘 살자'입니다. 책 많이 읽고, 글 많이 쓰고, 음악 많이 듣고, 많이 보고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감수성을 찾아서 생명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감각보다는 공부가 먼저입니다. 개인의 기본적인 재능에 기술력이 함께 하느냐가 중요한데, 기술력은 공부를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재능이 있는 사람보다는 꾸준히 공부하고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조급해하지 말고 공부하면서 길게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해보고 싶은 공연이 있나요?
새로운 창극 장르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소재의 작품을 만들고, 이 작품이 잘 돼서 해외로 진출해보면 어떨까, 혼자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공부하고 연구하는 과정입니다. 언젠가 해외를 순회하면서 창극을 공연해보는 것이 지금의 작은 소망입니다.

본업인 판소리 이외에도 단체의류 판매 등 엉뚱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이왕수, 그의 삶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엉뚱한 상상이 지역의 문화를 키우는 일에 조금은 기여하지 않았을까? 젊은 나이에 지역의 묵직한 행사들을 내실 있게 담당하며, 스스로 역량을 키워가는 그의 모습에 찬사를 보낸다. 꾸준히 공부하고, 냉정한 평가에 귀를 기울인다면, 지역을 대표하는 새로운 연출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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