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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3 | 연재 [오래된 오늘]
옹기는 불로 완성된다
옹기이야기
이현배(2019-03-22 16:28:53)

옹기에 대한 이야기를 '오래된 오늘'이라는 시간성과 옹기장이의 자격으로 하고자 한다. 스스로의 자격을 '옹기장이'로 두어왔으나 옹기일은 막 서른 살이 되던 1991년도부터 느닷없이 붙든 일이다. 이에 이 이야기는 동기인 '농사꾼이 못된 옹기장이'와 당시에는 없던 말, 쇼콜라티에(식품조리전공)라 불리는 이력에 근거한 것이다.



1991년 4월 5일, 서울 홍은동에서 전남 벌교로 이사를 했다. 호텔 초콜릿 룸에서 옹기굴로 일터를 바꿨던 것이다. 그런데 이사한 곳의 옹기점은 운영이 중단된 상태였다. 아쉬운 마음에 이유를 알아보다가 옹기점을 운영하려면 '먼저 불을 잡아야하겠구나'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릇을 만들어 굽기만 하면 얼마든지 팔 수 있는데 굽지를 못했던 것이다. 물론, 옹기일을 배운다고 하는 것은 여러 공정을 다 익혀야 하는 것이지만, 그때는 별 생각없이 '불을 먼저 잡아야겠구나' 했던 것인데, 지금 돌이켜보면 전공 때문이지 싶다.


이후 그 불을 무엇보다 중요한 열쇠말로 붙들고 일을 해 왔다. 고인류학에서는 '불을 인류를 더욱 인류답게 한 인류 문화의 시원'으로 보고 있다. 인류로의 분화를 500만 년 이전 즈음으로 보는데(Homo habilis), 불의 사용을 170만 년 이전의 직립(Homo erectus)과 동시기로 보고 있는 것이다. 불의 사용으로 인류는 기초적인 삶의 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우선 불의 사용으로 추위를 이겨낼 수 있게 되어 아프리카에서 유럽과 아시아로 삶의 영역을 확대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자연상태에서 위험요소였던 불을 이용할 줄 아는 '앎'을 터득, 경험의 축적은 인류를 더욱 인류답게 하였으니 '사람'은 곧 '살 앎'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불을 통한 빛과 보온의 유용함을 먼저 알았을 터이지만, 조리에 대한 불의 이용은 인류 진화의 잃어버린 사슬을 설명한다. 불의 속성인 상승감을 획득하여 의식을 상승시켰을 인류에게, 조리는 바로 그 의식 활동에 고급 에너지원을 공급하였을 것이다. 인류는 그렇게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단계에서 현대인과 비슷한 뇌용량을 갖게 되었다. 체중의 2% 정도밖에 차지하지 않는 뇌가 20% 정도의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었을 때, 현인류로 불리우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는 후기 구석기에서 신석기 시대에 이르러 질그릇(토기)을 만들어 내며 신석기 문명을 전개한다.


토기 문화와 농경 문화의 관계성에서 농산물을 저장하고 운반하며, 특히 조리를 가능하게 했다는 것의 의미는 매우 크다. 원시 농경의 생산성이 수렵, 채집보다 떨어졌을 것인데, 토기의 발명으로 날것을 삶거나 쪄서 먹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우리 인류의 활동 폭은 획기적으로 확대되었다. 이러한 옹형(장란형) 토기와 시루의 갖춤에서 우리는 그 어떤 격식을 볼 수 있다. 이렇듯 토기 문화의 전개는 사물의 변환을 통한 차원화를 이루었다는 것인데, 이는 곧 생각의 탄생으로 지적 능력이 극대화되기 시작하여 영성을 통한 종교와 예술을 탄생케 했다. 이에 좋아하는 말이 있다.


"근현대의 과학이 구사해 온 사고의 모든 도구는, 1만 년쯤 전에 시작된 신석기 혁명 시기에 우리의 선조에 해당하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획득한 지적 능력 속에 이미 전부 준비되어 있던 것이다. 우리의 과학은 기술이나 사회 제도, 신화나 제의 등을 통해 표현되던 그런 능력과 근본적으로 다른 시도를 해본 적이 아직 한 번도 없다. 양자역학과 분자생물학마저도 아직 구석기를 사용하던 3만 년 전의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뇌에 일어났던 혁명적인 변화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그런 사고의 직접적인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대칭성 인류학 -무의식에서 발견하는 대안적 지성-』, 나카자와 신이치, 동아시아 출판


그 불을 옹기에서 다시 찾게 되었다. 옹기의 사전적 정의는 질그릇과 오지그릇을 함께 아우른다. 정리하면, △도자기 = 도기 + 자기 △도기 = 옹기 = 오지그릇 + 질그릇 △자기 = 사기 = 청자기, 분청사기, 백자기이다.
질그릇은 일본식 한자 표기인 토기의 순 우리말로 선사시대부터 오늘에 이른다. 그리고 오지그릇은 오짓물을 입힌 그릇을 말하는데, 조선 중·후기에 완성된다. 그러니까 전통도기, 자기에서 가장 늦게 완성돼 오늘에 이른 그릇이 바로 오지그릇이다. 오지그릇이 이렇게 때늦게 완성된 것도 결국 불 때문이었다. 오짓물(유약)이란 것의 발상이 어렵지 않다는 것은 전남 영암의 구림도기를 보면 삼국시대에 이미 시유도기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구림도기를 옹기와 적극적으로 연관 지어 보기는 어렵다. 우리가 굳이 도기와 자기를 구분 지어 온 것은 발효 문화에서 찾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발효를 위한 그릇을 도기, 아닌 것을 자기라고 해왔다고 할 수 있다.


이에 기존 도자사로 옹기를 읽지 않고 문화 현상으로 읽어왔다. 인류는 보편적으로 '흙그릇(토기, 질그릇) > 도기 > 자기' 식으로 발달시켜 왔다. 흙그릇의 욕망은 얼마나 '강해지느냐'였다. 강한 그릇을 만들기 위해 질료를 찾고, 그 질료의 조직을 보다 더 강하게 가공해 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릇이 보다 더 강해지도록 번조 온도 역시 높혀 왔다. 그런데 한반도 사람들은 도기는 도기대로, 자기는 자기대로 따로 발달시켜 왔던 것이다. 그렇기에 전통 사회에서는 아예 도자기라는 말이 없었던 것이다.


도기와 자기는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더 많겠지만, 분명한 차이도 존재한다. 바로 옹기와 발효 문화와의 상관관계다. 발효 문화의 관점에서 봤을 때, 도기와 자기는 서로 몸을 이루는 흙이 다르고 성형 기법, 번조 기법도 완전히 다르게 정립되었다. 이렇게 질서를 완전히 다르게 전개해 온 것에서 이 땅에서 형성된 발효 문화의 특이성을 알아 볼 수 있다. 신석기 문명의 전개, 목축과 농경에서 한반도 사람들은 지리적 위치와 지형적 특징으로 농경 위주의 삶을 꾸리게 되었다. 그 가운데 발효 문화는 생존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요소였고, 옹기 역시 그러한 발효 문화의 일환으로 형성되었던 것이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농경 문화권은 환원번조(회청색와질토기)로 정립이 되고, 밀을 주로 먹는 목축 문화권은 산화번조(적갈색토기, 테라코타)로 정립이 된다. 이 땅에서 보면 그 시기가 초기 철기 시대, 원삼국 시대가 된다. 반도라는 지리적 위치, 동고서저(東高西低)의 지형적 특징과 극단적인 사계절의 기후에서 긴긴 겨울을 나려면 발효식품이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고온다습한 여름에 숙성을 시켜야 했기에 연기를 먹이는 지사그릇이 정립되었다. 그러다 궁극의 옹기라 할 오지그릇이 더해진다.


질그릇과 오지그릇의 몸흙은 같다. 성형 기법도 같다. 다만 번조 방법이 다를 뿐이다. 질그릇은 몸흙 그대로 환원 번조를 하는데, 오지그릇은 잿물(오짓물, 자연유약), 즉 도자 용어로 유약을 입혀 산화 번조를 시킨다. 이렇듯 오늘날 도자기라는 것의 원형이라 할 토기를 내포하고 있으면서도 문화 현상으로서의 옹기는 또 다른 불로 완성되었던 것이다.


옹기는 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생활용기의 하나로서, 질그릇으로 시작되었다가 이 땅의 환경 요소에 의해 발효 문화와 함께 해 왔고, 궁극의 그릇인 오지그릇까지 더해져 오늘에 이른 것이다. 그 고유성을 소급하면 온 인류와 공유할 수 있겠기에 그 기나긴 생명성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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