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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8 | 칼럼·시평 [문화칼럼]
우리가 동물을 배려해야 하는 이유
남종영(2019-08-14 15:05:57)



영국의 슈퍼마켓에 계란을 사러 갔다가 놀랐다.모든 계란이 우리가 '동물복지란'이라고 부르는 방사유정란(free range)이기 때문이다.계란값도12알에 2파운드(약 3000원) 정도로, 한국의 공장식축산 환경에서 생산된 것과 큰 차이가 없다.공원의 풍경도 낯설다.영국의 공원은 한국과 다른 게 하나 있는데,바로 주 이용자가 유모차를 탄 아기들과 뛰어다니는 개들이라는 점이다.개들이 개울에 들어가 헤엄을 치고,아이들은 곁에서 뛰논다.펫숍도 없는지라 이 나라에서 개,고양이는 사고파는 물건이 아니다.유기동물 보호소에서 입양하거나 지인으로부터 받는다.돌고래쇼는 진즉 1990년대에 사라졌다.영국이 동물들이 살기 좋은 나라가 된 이유는 앞선 제도와 문화 때문이다.영국을 위시로 유럽연합은 2012년 배터리케이지(밀집형 닭장) 사육을 금지했다.돼지들에게는 법적으로 장난감이 주어져야 한다.화장품 동물실험도 금지되었다.
한국에서 '동물복지'라는 네 글자를 하늘에 쏘아올린 신호탄은 아마도 2013년 남방큰돌고래 제돌이의 야생방사였을 것이다.서울대공원에서 돌고래쇼를 하던 이 돌고래는 잡힌 지 4년만에고향인 제주 바다로 돌아가 극적으로 가족을 만났고 지금도 잘 살고 있다.야생방사 프로젝트를 주도한 서울시는 국내에서는 동물복지를전면적으로 내세운 첫 번째 지자체였다.박원순 시장의 평소의 철학에 더해지방정부와 시민단체,학계가 협력하는 민관협치 모델이지금도 지속적인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서울시 말고도 동물복지에 적극적인 지자체가 있는데,가장 선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 전주시다.전주시는 몇 년 전부터 '슬픈 동물원'으로 악명 높았던 전주동물원을 '생태동물원'으로 차근차근 바꾸어 나가고 있다. 2019년에서 2023년까지 동물복지마스터플랜도 세웠다.올해에는 동물복지과를 신설하기로 했다.보여주기식 사업이 아니라 장기적인 전망을 갖고 진지하게 임하겠다는 것이다.


인간을 위해?동물을 위해?
우리는 왜 동물을 보호해야 하는가?환경과 동물을 10년 넘게 취재해 온 나로서도 쉽지 않은 질문이다.우리는 대개 우리가 하는 행동이 무엇인지 모르고 한다.대부분 직관적인 판단에 의존한다. 아마도 동물에게 좀 더 나은 삶의 환경을 제공해주는 것이 옳다고 우리가 직관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그렇다면 그 직관의 논리를 좀 더 파고들어가 보기로 하자.
18세기 영국에는 윌리엄 호가스의 <잔인함의 네 단계>라는 유명한 판화가 있다. 네 개의 연작으로 이뤄진 이 그림은 한 소년이 개의 항문에 꼬챙이를 쑤셔박는 등 동물학대를 하다가,어른이 되어서는 범죄를 저지르고, 결국 처형을 당해 자신의 시신이 해부용으로 사용된다는 내용이다.당시 이 그림은 도시의 하층민들에게 동물학대에 대한 계도용으로 널리 읽혔다고 한다.그렇다면,영국 사회가 동물을 보호하자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그것은 바로 동물을 학대하는 자는 인간도 학대할 것이라는 믿음에서였다.
철학자 칸트는 이런 입장을 대변한다.그는 주인에게 충성을 다한 개의 사례를 든다.주인이 더 이상은 쓸모 없어진 개를 총으로 쏘아 죽인다.칸트는 주인이 개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동물은 자의식이 없고 존엄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하지만 칸트는 주인의 행동이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다고 말한다.동물에게 잔인한 사람은 사람에게도 잔인할 것이고,이런 사람이 많아지면 인간 사회에 파급 효과는 커질 것이라는 이유에서다.하지만 동물을 보호하고 사랑함으로써, 우리는 자비심을 배우고 함양할 수 있다.그래서 칸트는 동물에게도 간접적으로나마 도덕적 지위가 있다고 본다.따라서 우리는 동물을 사랑하고 보호해야 한다.
동물과 관련한 생각과 정책을 떠받치는 두 개의 기둥 중 하나인 칸트의 간접적 지위론은 동물에 대한 배려가 결국 더 나은 인간 사회로 귀결된다고 본다.제도적으로는 동물학대를 처벌하는 주요 논거가 된다.대표적인 것이 어려서 동물학대를 한 사람이 커서도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다.실제로 연쇄 살인범에게 이러한 경향이 발견되어,미국 연방수사국(FBI)은 범죄자 신상명세(NIBRS)에 동물학대 전력을 기록하고 있다.하나 더,칸트의 생각이 가장 세속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음악을 들려주고 기른 돼지고기가 맛있다'는 류의 주장이다.나는 이러한 종류의 주장을 크게 신뢰하지는 않는데,도덕적으로 옳은 게 항상 실용적이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통을 외면할 수 없는 본성
현대의 동물 정책과 관념을 또 하나 떠받치는 기둥은 바로 제러미 벤담에서 시작된 공리주의다.공리주의자들은 우리가 동물에게 직접적인 의무가 있다고 본다.핵심은 고통이다.고통을 느끼는 생명체라면, 우리는 그것에게 고통을 주어서 안 된다.사람이 되었든,개가 되었든,농장의 돼지가 되었든 마찬가지다.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를 피터 싱어는 종차별주의 개념으로 발전시켰고,현대 동물운동의 이론적 근거가 되고 있다.우리는 동물에게 고통을 주어서는 안 되고, 줄 수밖에 없다면 최소한으로 주어야 한다.곧 잡아먹을 돼지에게 장남감을 주는 이유도,산란계를 농장에 풀어놓고 기르는 이유도,고기가 맛있어져서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서다.
칸트주의가 인간을 위한 동물복지라면,공리주의는 동물 그 자체를 위한 동물복지다.사실 두 주장 모두 직관적으로 우리가 옳다고 느끼는 것들이다.왜 그럴까?사실 우리 인간의 본성이 그러하기 때문이다.생각해보자.고기를 먹는 게 아무 거리낄 게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실제로 도살을 해보라고 하면 손사래를 칠 것이다.왜?낭자하는 빨간 피를 보고,고통을 호소하는 동물의 소리를 들으면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른 존재에 주파수를 맞추는 우리 행동의 생물학적 뿌리는 거울뉴런에 있다.이탈리아의 저명한 심리학자 리촐라티가 실험 중인 원숭이에게서 우연히 발견한 이 신경세포는 우리가 직접 경험하지 않고 보거나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같은 감정을 느끼거나 행동을 따라하게 한다.공포영화의 주인공이 칼로 손목을 그을 때내 손목도 시큰거리고,주변의 사람이 하품을 하면 따라하는 것도 바로 이 거울뉴런이 작용하기 때문이다.우리가 동물학대를 반대하는 이유도 동물이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전통 사회에서 우리 주변에는 동물이 있었고,우리는그들의 고통을 볼 수밖에 없었으므로 동물학대는 제한적이었다.반면 현대 사회에서 동물은 주변에서 사라졌고,고통을 느끼고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동물이라곤 개,고양이처럼 특별대우를 받는 반려동물 뿐이다.식탁 위에 놓여진 스테이크를 앞에 두고,우리는 돼지의 도살 장면을 상상하지 않는다.공장식 축산으로 역사상 가장 많은 닭,돼지가 도살되고 있음에도 동물에 대한 죄의식을 느낄 기회가역설적으로 줄어든 것이다.반면 전통 사회에서 동물 도살은 이웃의 이야기이자,마을의 이야기였다.시베리아의 원주민들이 곰 사냥을 한 뒤,곰의 영혼에게 사과하는 의식을 하는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다.
현대 사회와 전통 사회의 이 공백을 메꾸는 게 바로 유럽연합이나 전주시에서 만드는 제도가 아닐까?현대 문명이 대량 생산하고 동시에 은폐한 동물들의 고통을 꺼내어찬바람에 말리듯이,진지하게 공감하는 태도 말이다.약한 존재의 고통을 헤아리고 자비심이 커질 때 인류는 좀 더 큰 어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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