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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2 | 기획 [기획]
다시, 동네책방 ⓵전주
사람과 사람을 묶다_1
이동혁, 김하람(2020-02-10 14:08:09)

1970년대 전주 동문길은 지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미원탑과 함께 학원, 헌책방, 인쇄소들이 한데 모인 문화의 중심지였다. 그 명성에 걸맞게 일대는 책방골목이란 이름으로 불렸고,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미술학원과 예술 공방 등이 들어서면서 자연스럽게 문화예술의 향기를 꽃피웠다. 책방골목의 활기는 2000년대 초반까지 쭉 이어졌지만, 이후 대형서점의 대명사인 교보문고가 전주에 진출하면서 동문길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당시 동문길엔 18곳에 달하는 헌책방들이 운영 중이었지만, 대형서점의 압력을 이겨 내지 못하고 대부분 문을 닫아 현재는 일신서림과 한가네서점 단 두 곳만이 남아 있는 상태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찾아온 대형서점과 온라인서점의 공세에 설 자리를 잃은 건 비단 헌책방들만이 아니었다. 당시 연합뉴스 기사를 보면 2004년 512곳에 달했던 전북 지역 동네책방들이 불과 2년만에 351곳으로 줄었다고 전하고 있다. 퍼센트로 환산하면 31.4%, 약 3분의 1이 문을 닫은 것이다. 이러한 감소세는 계속 이어져 2017년에는 단 50곳(2017 출판산업 실태조사 통계)만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놀랍게도 최근 2~3년새 대형서점과 온라인서점에 밀려 사라졌던 동네책방들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전주, 익산, 군산, 완주 등 지난해 우리 지역에서만 여덟 곳의 동네책방이 새로이 문을 열었다. 구태여 말할 필요도 없이 책방 수입으 로 생계 유지가 어렵단 건 그들 자신이 가장 잘 안다. 대형서점, 인터넷서점과의 경쟁은 물론 낮아진 독서 인구도 책방 운영을 힘들게 한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기꺼이 어려움을 감수하며 책방 운영에 뛰어들고 있다. 대체 무엇이 그들을 책방 주인으로 있게 하는 것일까.

동네책방들이 다시금 각광받게 된 데에는 책방이란 공간이 커뮤니티 형성의 장으로 전환된 이유가 크다. 취재 중 만난 거의 모든 동네책방들이 인근 주민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며 사랑방의 역할을 하고 있었고, 강연, 토론, 글쓰기 모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손님과 꾸준히 소통하는 모습을 보였다. 책을 사고파는 거래의 공간을 넘어 이제는 사람과 사람을 묶는 또 다른 구심점이 된 것이다. 각자의 지향점과 취향에 따라 자신만의 색깔을 살리며 운영되고 있는 전북 지역 동네책방들을 2회에 걸쳐 소개한다. 이번호엔 호남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연 ‘조지오웰의 혜안’부터 가장 최근에 생긴 ‘평화와 평화’까지 전주 동네책방 10곳의 이야기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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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가치]

전주시 완산구 서학3길 35

화요일~금요일 10:00~18:00

070.7753.7097


같이 읽으면 더 가치 있는 그림책


전주 유일 그림책 전문책방, ‘같이[:가치]’는 그림책 활동가 전선영 씨(44)와 동생 수진 씨(42)가 함께 운영하는 책방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양손으로 책을 소중히 안고 있는 듯 한 간판이 반갑게 맞이한다. 책방 안에는 책방지기들이 추천하는 그림책들로 가득하다. 0세부터 100세까지 같이 읽어야 더 가치 있는 그림책들. 그런 그림책을 단순히 사랑하는 것을 넘어 소비하는 것까지 유도하는 그림책의 고급 독자, 전선영 씨를 만나봤다.


그림책방이 흔하지는 않은데,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동생과 함께 2016년 가을에 문을 열었어요. 벌써 5년째 책방 같이[:가치]의 가치지기로 활동 하고 있습니다. 그림책을 좋아하다 보니 좋은 그림책을 나누고 싶었어요. 그림책에 대해 모 르는 독자가 많으니까 그림책을 많이 알려야 겠다는 사명감으로 시작했죠.

책이라는 것은 작가가 있고, 출판사가 있고, 누군가 팔고, 소비하는 순환관계를 이루고 있잖아요. 좋은 책을 소개하고 사람들이 많이 사서 그림책 시장이 활성화되면 좋겠다는 원대한 꿈도 있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큰 꿈 을 가지고 시작했죠. (웃음) 생각보다 쉽지 않 은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책을 판매하는 것 외에도 많은 행사를 기획하고 있는데요.

작가와의 만남, 그림책 강의, 이런 것들이 지 방에서는 한정적이고 정보도 부족하다 보니 그림책을 읽다가 좋은 작가나 작품을 발견하 면 초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양한 작가를 만나면서 그림책에 대한 시야도 넓히고 작가에 대해서도 알게 되면 좋지 않을까 하 는……. 웬만하면 큰 출판사보다는 작은 출판사의 좋은 책들을 소개하려고 해요. 크고 유명한 출판사는 홍보할 수 있는 비용이 많지만 작은 출판사는 좋은 책을 만들었어도 사장될 수도 있고, 좋은 책이어도 홍보를 제대로 못하니 독자들이 못 알아볼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일 대일로 사람을 마주하면서 책을 소개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큐레이션을 함께 진행하고 있어요.

작가와의 만남에서는 작가의 책을 구매해 사 인을 받게 해요. 아이돌을 좋아하면 앨범을 사고 사인회에 가잖아요. 저자 강연도 마찬가지로 정당한 참가비를 내든, 책을 사든 해서 작 가의 사인을 받으면 작가도 좋고 우리도 좋은 거예요. 정말 필요한 독자가 책방에 와서 저자와 만나 서로 에너지를 주고받고, 시너지를 줄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운영하시는 데 어려운 점은 없나요.

상업공간이면 그곳에 가는 목적은 소비하러 가는 거잖아요. 백화점에는 물건을 사러, 카페 에는 음료를 마시러, 미용실에는 머리를 하러. 근데 서점은 그냥 구경해도 된다는 생각이 깔려있는 것 같아요. ‘내가 봐서 괜찮으면 사지’ 하는……. 그냥 서점을 들르는 사람들은 둘러 보고 나가버리거나 사진만 찍고 가니까 요즘에는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어요. 그리고 우리 책방에 오는 손님들에게는 책 구매라는 입장료를 뒀어요. 정말 책을 사고 싶은 사람이 왔으면 좋겠어요. 사실 이렇게 되기까지는 굉장히 가슴 아픈 과정이 있었어요. 그래도 이게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만 하는 일이 되어버렸어요. 이제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서점을 오 랫동안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올해 1, 2월을 쉬고 있는 것도 그 이유예요.


주로 어떤 분들이 책방을 찾으시나요.

아무래도 그림 책방이니 아이들을 데리고 오시는 부모님들이 많아요. 아이들에게 원하는 책을 고르라고 하는데, 아이들은 대부분 이미 본 책을 골라요. 어른도 마찬가지예요. 본인의 취향대로 고르게 돼요. 봤던 책을 골랐다고 엄마가 원하는 책을 권하면 아이는 책에 흥미를 잃게 돼요. 그래서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무조건 사주라고 권해요. 가능하면 엄마가 좋아하는 책 한 권에 저희가 큐레이션을 해주는 책 한 권도 함께 사도록 권하지요. 그래야 아이가 편중되지 않게 책을 읽을 수 있으니까요. 독서 모임을 운영하거나 큐레이션을 해주는 서점에서 책을 고르면 좀 더 폭넓게 책과 만날 수 있 습니다.



그림책은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그림책을 읽는 방법은 일반 텍스트 중심의 책과는 다른 점이 있어요. 이미지가 활용되기 때문에 앞표지에서 시작해서 뒤표지까지 모든 면을 다 읽어야 해요. 앞표지에는 제목과 작가, 혹은 번역가의 이름, 출판사가 있어요. 그것을 다 읽어야 해요. 표지와 제목을 보면서 내용을 예상하겠죠. 다음에 표지를 넘기면 표지에 붙어 있는 종이, 면지가 있어요. 면지를 살핀 다음 넘기면 다시 제목이 나와요. 판권도 나오는데 읽으면 책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어요. 본문 내용이 이어지고 나면 뒷면지가 있어요. 그리고 뒤표지. 순서대로 이렇게 봐야 해요. 저희는 책을 소개할 때 읽어드려요. 그림책을 읽어주면 귀로 들으면 서 이미지를 조금 더 자세히 보게 돼요 . 그런데 내가 스스로 글을 읽고 그림을 보면 동시에 그 작용이 안 돼서 이미지를 빠트리고 읽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림책은 꼭 누군가 읽어 주는 것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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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결서사

전주시 완산구 물왕멀2길 9-6

월요일~일요일 11:00~18:00 (수요일 휴무)

010.5143.9398


아픈 공간에 물결 치는 희망의 서사


2018년 12월, 장르도 나이도 다른 일곱 명의 예술가들이 전주 선미촌에 책방을 열었다. ‘물왕멀’이란 이름으로 팀을 꾸린 이들은 성매매집결지 한복판에서 이야기를 만들고, 지역 주민과 교류하며 ‘관계의 물결’이 굽이치는 ‘물결서사’를 그려 가고 있다. 책방으로서, 그리고 대안공간으로서 닫힌 공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그곳 물결서사를 방문했다.


책방 문을 연 계기가 궁금합니다.

‘물결서사’를 열기 전에 먼저 예술가 일곱 명이 모여 ‘물왕멀’이란 이름으로 팀을 꾸렸어요. 장근범 작가의 주도로 모이게 된 팀인데, 성매매 집결지로 알려진 선미촌에서 예술가로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취지였어요. 그래서 회의 끝에 서점을 운영해 보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고, 그럼 ‘예술가들이 추천하는 책’을 판매해 보자, 라고 해서 물결서사를 열게 됐어요. 책방 이 위치한 장소 자체가 특수했기 때문에 예술 가라는 입장에서 또 다른 시선을 가지고 이야 기할 수 있는 게 있을 것 같았고, 그때부터 지 금까지 물결서사를 중심으로 각자가 생각하는 스토리텔링 작업을 계속해 나가고 있어요.


장소가 주는 의미가 큰데요.

여기가 성매매업소 본거지이기도 한데, 그런 곳에서 책방을 하고 있다는 게 일반 시민들 입장에선 독특하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현재 책 방으로 사용되는 이 건물도 원래는 성매매업소였다가 시가 매입해서 마련된 공간인데, 예술가들이 이런 공간에서 책방을 운영을 한다 는 게 굉장히 신선했던 모양이에요. 최근에는 업소 여성분들이 가끔씩 찾아와서 책을 살펴 보기도 해요. 저희가 꾸준히 책방을 운영하니까 여기가 뭐 하는 곳이냐며 조금씩 관심을 가 져 주시는 것 같아요. 저희도 이제는 이곳이 완전히 삶의 일부가 돼서 지역 주민들하고도 많이 친해졌어요.

일곱 명의 작가들이 여기에 모여서 1년이란 시간을 같이 보냈는데, 그러면서 서로 얻은 것들이 많아요. 우리들 마음 속에는 어쨌든 이 공 간이 아픈 공간이잖아요. 그런데 이 아픈 기억들을 그냥 지우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다시 쓰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를 품고 있는 책방, 대안공간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단순히 책방으로만 바라보기 어려운 지점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동네책방하고 비교할 수 있는 지점은 예술전문책방이란 점인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이 공간이 단순히 책방이라고만 하기는 어려워요. 책방의 기능에 집중하는 작가들이 있는 반면, 이 공간 자체에 대한 기능적인 부분에 집중하는 작가들도 있거든요. 동네책방과 대안공간의 역할을 함께하고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사실 예술가들이 모일 수 있는 물결서사 같은 공간이 전주에 그렇게 많지 않아요. 개인 작업실을 활용하고 있는 작가들이 태반인데, 사실 그런 공간은 개인성이 강할 수밖에 없거든요. 이 공간 같은 경우는 어떤 작가들이 와도 쉽게 활용할 수 있는 공간, 문이 열려 있는 공간, 문턱이 낮은 공간이라고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언론을 통해서도 주목을 받고 계신데요.

성매매업소에 대한 문제들이 수면 위로 올라 오면서 이곳이 좋은 사례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는 것 같아요. 행정과 민간이 함께 맞물려서 가고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도 좋은 예가 된다고 생각해요. 다른 한편으로는 이곳에 살고 있는 지역 주민들의 발걸음이 잦아졌다 는 거예요. 외딴 섬 같던 지역에 사람들이 드 나들기 시작하고,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 거기서 많은 보람을 느끼는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나요?

서신동에 사시는 할머님이셨는데, 손님이 아 니라 기증자로 저희 책방을 찾아 주셨어요. 그 뒤로도 종종 스쿠터에 책 꾸러미를 싣고 와 주시는데, 덕분에 저희가 운영하는 공유책방 코너가 풍성해져서 이 책을 읽으러 찾아 주시는 분들도 많아졌어요. 동네 주민분에 한해 무료 로 빌려 드리기도 하고, 저렴한 가격에 판매도 하고 있어요. 그분 덕분에 책방으로서의 역할 에도 힘이 붙은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도 궁금합니다.

선미촌 내에 상주하고 있는 예술가가 저희 물 결서사 일곱 명밖에 없어요. 다른 작가나 단체, 사업장이 없기 때문에 물결서사가 시발점이 돼서 이 지역이 활성화됐으면 해요. 또 저희도 이 공간을 후배들에게 잘 물려 주고, 후배들도 이 공간에서 어느 정도 성장하면 다른 후배에 게 물려 줄 수 있는 순환 구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단순히 지역에 있는 동네책 방 내지는 행사 공간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여기서 만들어지는 이야기들에 집중해 주셨으면 해요. 예술가들이 재미있게 뭔가를 하면서 의 미 있는 일들을 이뤄 가는 공간이란 생각이 더 크게 자리를 잡으면 이 공간에 대한 역할이나 의미가 훨씬 커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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