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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3 | 연재 [윤지용의 두 도시 이야기]
북인도 여행자들의 안식처
리시케시와 마날리
윤지용(2020-03-06 11:35:58)




인도 여행은 덥고 힘들다. 인도 대부분의 지역들은 우리의 봄에 해당하는 3~4월부터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가 시작된다. 인구 13억 명이 넘는 나라답게 붐비는 인파와 무질서하고 불편한 교통 환경, 집요한 호객꾼들이 여행자들을 지치게 한다. 수도인 델리와 인도 여행의 필수 코스인 바라나시 같은 곳들이 특히 그렇다. 그런데 그런 번잡한 곳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느긋하게 머물면서 휴양과 명상을 할 수 있는 곳들도 많다. 갠지스강 상류에 있는 요가의 본산지 리시케시와 히말라야 기슭의 산간마을 마날리도 그렇다.


히피들이 깃들었던 요가의 성지 리시케시
리시케시는 인도의 수도 델리에서북동쪽으로 240km, 자동차로 예닐곱 시간 거리에 있다. 인도 북부를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로질러 뱅골만으로 흘러드는 갠지스강은 히말라야산맥의 강고트리빙하에서 발원한다. 빙하가 녹은 물이 산맥을 타고 거친 급류로 흐르다가 북인도의 평원을 만나 얌전해지기 시작하는 곳, 계곡이 비로소 강이 되는 곳이 리시케시다.


우리나라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리시케시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요가의 성지이며 발상지이다. 수없이 많은 힌두교의 신들 중에서 으뜸인 시바신이 이곳에서 요가를 창안해서 인간에게 전수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그런지 요가수련원인 ‘아쉬람’들이 많다. 1960년대 후반에 유럽과 북미의 히피들이 리시케시를 찾아와 요가와 명상을 공부했다. 그중에는 비틀즈의 멤버들도 있었다. 유명한 히트곡 ‘Let it be’도 이곳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에 비틀즈가 머물렀던 ‘마하리시 아쉬람’은 여행자들의 명소가 되었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 여행자들과 요가수련자들이 리시케시를 찾아온다. 주로 서양인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우리나라 여행자들도 많아졌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여러 달 동안 머물면서 요가를 수련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리시케시의 갠지스강은 중하류에 있는 바라나시의 강물과 달리 깨끗한 편이다. 맑고 투명하지는 않고 비취색에 가까운 연녹색이다. 빙하가 녹아 산맥을 스치며 달려온 물이라 광물질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서 그렇다고 한다. 갠지스강가에 계단처럼 만들어져 있는 구조물들을 ‘가트’라고 한다. 갠지스강을 끼고 있는 도시들 어디에나 이런 가트들이 많다. 힌두교도들은 갠지스강 자체를 여신으로 숭배하기 때문에 저녁마다 가트에서 예배를 드린다. 이런 예배를 ‘아르띠뿌자’라고 한다. 리시케시의 아르띠뿌자에는 현지의 힌두교도들 뿐만 아니라 파란 눈을 가진 외국인들과 여행자들도 많이 참석한다. 다른 신앙을 존중하고 공부해보려는 열린 태도가 보기 좋아서 나도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해 질 무렵에 강가에 밝힌 등불들 아래 인도 전통악기로 연주되는 음악과 독경(讀經) 소리가 낭랑하다. 사제인 브라만이 낭송하는 경전은 고대 인도어인 산스크리트어라고 한다. 당연히 한마디도 못 알아듣지만, 그래도 경건한 몸가짐으로 함께 앉아 있었다.


리시케시에는 갠지스강을 가로지르는 두 개의 다리가 있다. ‘람 줄라’와 ‘락슈만 줄라’다. 힌두교의 신화 속에 나오는 형제들의 이름을 땄다고 한다. 철제 케이블로 지탱되는 현수교들인데, 작은 다리라서 차는 지나갈 수 없고 사람과 자전거, 오토바이만 다니는 다리들이다. 강변 언덕에 있는 여행자 카페에 우두커니 앉아 강물과 다리를 내려다보면서 반나절쯤 유유자적하다 보면 이러다가 신선 되겠구나 싶어진다.



‘아대륙(亞大陸)’으로 불릴 만큼 넓은 나라 인도를 짧은 일정으로 여행하는 이들은 리시케시까지 가보기 쉽지 않다. 일주일 정도의 일정으로는 수도 델리와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 바라나시에 들러 인증샷을 찍기도 바쁘다. 개인적으로는 인도를 상징하는 웅장한 건축물 타지마할을 건너뛰더라도 리시케시에 들러볼 것을 추천한다. 물론 넉넉한 일정으로 오래 머물수록 좋은 곳이다.


설산과 전나무숲, 평화로운 마날리
마날리는 해발 1,950m에 있는 산간마을이다. 델리에서 북쪽으로 500km 넘게 떨어져 있어 초저녁에 버스를 타고 밤새 달려서 다음날 아침에 도착한다. 비좁은 버스 좌석에서 잠을 설치고 부스스한 몰골로 내리는 순간, 선선한 공기에 심신이 맑아지고 가까이 보이는 설산들로 안구가 정화된다. 지리산 천왕봉과 비슷한 높이니까 그럴 만도 하다. 마날리는 인도 서민들의 휴양지나 신혼여행지로 인기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약간 과장이라고 생각하지만, 여행안내서들에서는 이곳 마날리를 ‘인도의 스위스’라고 소개하기도 한다.



마날리에는 세 개의 동네가 있다. 버스에서 내려 200m쯤 걸어 올라가면 중급 규모의 호텔들과 상가건물들이 나온다. 마날리의 읍내격인 ‘뉴마날리’다. 뉴마날리가 있으니 당연히 ‘올드마날리’도 있다. 뉴마날리에서 전나무 숲을 지나고 비하스 계곡을 건너 2km쯤 걸어 들어가면 올드마날리가 있다. 배낭여행자들은 대개 올드마날리에 묵는다. 이곳에 값싼 여행자 숙소들이 있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마날리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광을 즐기려면 올드마날리에 짐을 푸는 것이 좋다. 야트막한 산동네인 올드마날리의 숙소들에서는 방문만 열면 히말라야의 설산이 보인다. 아침나절에 숲에서 지저귀는 새소리들, 봄이면 언덕을 물들이는 연분홍 사과꽃들도 있다. 서두를 것 없이 오전에 느지막이 전나무 숲길을 걸어서 읍내 구경을 나갔다 들어오면 된다. 숲속에 있는 힌두교 사원을 물어물어 찾아가 보는 것도 좋다. 빙하가 흘러내린 비하스 계곡의 송어구이는 환상적인 술안주다.



마지막으로 바쉬싯이라는 동네가 있다. 뉴마날리에서 올드마날리 반대쪽으로 올라가는 산기슭에 있는 바쉬싯은 전형적인 산촌마을이다. 현지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천연온천도 있어서 노천 온천욕을 할 수 있다. 여행자들이 찾기 시작하면서 음식점과 숙박업소들이 들어서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전통적인 가옥들과 생활상이 많이 남아 있는 마을이다. 2층 구조로 된 집들에서 아래층은 소를 기르는 외양간이고 위층에 가족들이 산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마을에 있는 공동 빨래터에 모여 빨래를 한다. 마을 안쪽으로 좀 더 들어갔더니 운동장이 딸린 작은 건물이 나온다. 혹시 학교인가 싶어서 기웃거려보니 학교가 맞다. 똑같은 옷을 입은 어린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배구를 하고 있는 것을 보니 공립초등학교인 모양이다. 학교라기에는 초라한 건물에 페인트로 쓰여진 글씨를 읽고 괜히 가슴이 찡해졌다. ‘COME TO LEARN. GO TO SERVE.(와서 배우고 가서 봉사하라)’



마날리는 그 자체로 휴양지이기도 하지만, 인도의 북쪽 끝 라다크 지역으로 가는 관문이기도 하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로 유명해진 라다크는 본래 티베트 계열의 고산족 국가인 라다크 왕국이었는데, 지금은 인도의 잠무-카슈미르주에 속해 있다. 델리에서 라다크의 중심도시인 레까지 비행기를 타면 금방 갈 수 있기는 하지만, 여행자들은 대부분 이곳 마날리에서 육로로 히말라야의 고개들을 넘어 라다크로 간다. 470km가 넘는 산길이라서 하루에 가지 못하고 여러 날 걸린다. 자동차가 다니는 길로는 지구상에서 두 번째로 높다는 ‘탕그랑 라’ 고갯길(해발 5,328m)도 넘어가야 해서 고산병에 걸려 고생했다는 이들이 많다. 그나마 눈이 완전히 녹은 여름철에만 육로 통행이 가능하다.

마날리에 대해서 한마디로 정리하라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냥 한없이 평화로운 곳!


윤지용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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