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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5 | 연재 [[벗에게 시간을 묻다]]
옹기장이 이현배와 시인 박형진이 주고받는 손편지
박형진, 이현배(2022-05-10 09:53:56)


모항 박형진 시인께


신기한 일입니다.


너머에 모항이 있다 말을 들은 엊그제인데 오늘 보내주신 모항의 바다 맛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바람 쐬러 가자고, 쭈꾸미철이니 선유도엘 가자는 민속학 선생의 말에 따라 나섰다가 새만금엘 가게 되었습니다. 방을 잡았다는 말에 돌아올 차도 없어 꼼짝없이 하룻밤 머물게 되었습니다. 다음 아침에는 새만금 방조제를 아주 길게 지나가는데 이정표에서부안’ ‘변산 봤습니다. 그렇게 격포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처음 가보는 길이었지만 갔어야 길이었습니다. 선유도에서는 망주봉 오룡당에서 오구유왕, 사해용왕님과 임씨할머니를 참배하였고, 격포 죽막동유적의 수성당에서는 개양할머니를 참배하였습니다. 아울러 난파선출수 고려도기의 본작업을 잘하리라 다짐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나저나 새만금을 보면서 어이가 없었습니다. 사실 자신도 상당히 황당한 사람이라(벌교 이웃집 봉천댁이 쌔바닥은 짧은 놈이 침은 멀리 뱉으려 한다는) 어지간해서는 일에 어이없다 소릴 처지가 되는데 참으로 황당하더이다. 두고 쓰는 말로 장사는 없는 것을 파는 것이라고, 없는 것을 있다고 하고 파는 것이라고 장터 떠돌이 약장사 수법을 따라 하는 같은 사람이 봐도 황당하기 짝이 없던데 지난한 과정을, 작금의 꼴을 봐야 하는 선생님의 속이 속이 아니겠다 싶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외박이 당황스러웠던 것에는 봐야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본다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돌아와서 마지막 본방송을 하기 전에 재방송이 있어 이어서 있었습니다. 제가 혹했던 것은 드라마가 1997 IMF 국제금융위기, 이십 오년 사회심리를 첫사랑에 얹어 다루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드라마니까 드라마로 끝냈고 많은 사람들이 실망스러워했지만 격포 죽막동에서 모항은 어디냐고 했더니저기라고 하면서모항갈까하는데 말로는안가하고 마음으로는못가 저는 드라마의 마지막 회를 수긍할 있었습니다. 


그릇이 

신기합니다. 


1997 IMF 국제 금융위기 발상하여 만든 그릇인데 IMF 겪으며 도시사회에서 부엌(주방)에서 하는 일이 사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집밥이, 불이 사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불의 사용이 거의 조리를 통해서만 남아있었기에 불을 가장 안정적으로 다루어 왔던 가정단위의 불의 사용 또한 소멸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일상에서 거의 담뱃불 정도로 남은 꼴이 되었다가 이제는 그마저도 사회적으로 담뱃불마저 위축되고 있으니 불을 얻기가 점점 어려워져 가고 있습니다. 하여 애써 불로 음식을 준비하는 분들을 위해 불그릇을 발상하였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모르고 만든 그릇인데 이게 가야토기에 있었습니다. 가야토기에 있었다는 것도 순천시립 뿌리깊은나무박물관 개관식 (2011 11 21) 한창기 선생의 수집유물을 통해서였습니다. 


지난 5 가야사가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로 가야사가 다뤄지면서 발굴을 통해 가야고분으로 밝혀진 것도 신기합니다. 초등(국민)학생 석유파동으로 물자가 귀할 앞에 버려지는 물건들에서 재생이 가능한 것들을 모아 고물상에 파는 일을 했었습니다. 하루는 고물상 아저씨가 산에 가서 토기를 찾아보라고 해서 다녔는데 그곳이 가야고분군으로 발굴되고 있는 것이 신기합니다.


이상한 꿈도 있었습니다. 고향을 떠나 살면서 꾸던 꿈인데 들어와 살면서 1993 이후로는  꾸게 꿈입니다. 남덕유산 깃대봉에 깃든 어떤 마을이 꿈에 보이는데 그냥 평범한 마을이 마을에 들어서면 환상적으로 변하는 마을이었습니다. 도대체 마을이 형성될 없는 곳이기에 터무니없는 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한학에 밝은 사촌 형님께서 어른들이 그곳을 어령동御令洞이라고 했던 것을 보면 뭔가가 있었던가 보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이 가야 제철유적으로도 비정되어 저에게는 신기합니다.


이런저런 일이 신기해서 의식, 전의식, 무의식을 들여다봤지만 구다 봐야 없는 세계라 접어뒀습니다. 세상사라는 알아야 아는 건만은 아닌 , 몰라도 아는 것이 있는 것도 세상사인 , 선생님하고도 알아서 모를 것이 있고 몰라도 있겠습니다.


그저

고맙고 고맙습니다.


2022. 4. 5

옹기장이 이현배 드림







손내 선생님!



날마다 꽃소식이 만발합니다. 갑자기 기온이 20도를 넘어가자 하룻밤 새에 벚꽃이며 잎들이 앞다퉈 피어납니다. 농사일도 이제 조금씩 바빠집니다. 4 중순 무렵부터 1주일가량은 고추 심느라 바빴고 이어 옥수수를 심었습니다. 하순 무렵에는 못자리 하는 것으로 1주일가량은 훌쩍 흘러가겠지요. 농사일도 일이지만 천지만물이 봄의 기운으로 우썩우썩 일어들 나는 통에 어떤 나라도 정신줄 놓고 가만히 있어 보고 싶을 지경입니다. 4월은 딱히 일이 없는 사람도 바쁘지 않으면 같은 그런 계절인 듯합니다.


저는 지난달에 제주도에 다녀왔습니다. 농사일 바빠지기 전에 일을 낼려고 벼르던 차에 마침 캠핑카를 가지고 제주에 가는 사람이 있어 동행이 되었습니다. 대선이 끝난 다음 14일에 가서 22일에 왔으니 8 9일이군요. 공교롭게도 변산공동체 학교에서 제가 가르친 학생이 제주도에 사는데 결혼을 한다고 청첩이 와서 그츰저츰 일이 시작된 겁니다. 캠핑카를 가지고 분은 말고도 다른 동행이 있어서 그들은 그들대로 낚시며 명승들을 찾아다니고 저는 저대로 여객선 터미널에 내리면서부터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야기를 조금 해보렵니다.


바다를 오른쪽에 두고 바퀴를 돌려고 맘먹고 걷기 시작하여 첫날은 이호테우 해변에서 야영을 했습니다. 제주도가 따뜻하다 해도 밤에는 몹시 춥더군요. 옷을 껴입고 침낭 속에 들어가도 바닷가의 새벽 한기는 만만한 아니었습니다. 둘째 날은 협재 해수욕장, 셋째 날은 모슬포항, 넷째 날은 서귀포에 들어가고 그다음 표선을 거쳐 하도·함덕, 그리고 다시 여객선터미널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떠나오기 전날 한라산에 올랐지요. 

백록담은 예약된 사람만 있대서 오르고 바로 턱밑인 윗세오름까지만 갔는데 마침 날이 맑아서 섬의 분의 정도를 있었습니다.


한라에 올라 보니 제주도가 작게 느껴지더군요. 걸으면서 보았던 것들이 한눈에 굽어 보이니 그러긴 하겠는데, 이상한 것은 전에 가보았던 지리산과는 달리 나와 산이 따로 노는 같은 이질화된 감정이 생기던 것입니다. 하긴 지리산은 사박 오일의 종주였던 것에 비해 이곳은 윗세오름 칠백고지까지 불과 시간에 올랐으니 아무리 제주도를 일주일 내내 걸었다 해도 한라산과 내가 무슨 교감이 생기리오. 오름에 펼쳐진 낯설고 신기한 모습들에 잠시 눈을 맞추었을 뿐입니다. 백록에 오르지 못한 섭섭함을 뒤로하고, 그러나 언젠가는 다시 와서 숨겨져 있는 모습을 보리라 다짐을 하며 어리목으로 내려왔습니다. 등산화가 아닌 워킹화를 신었던 탓에 길에 쌓인 눈에 발이 미끄러워서 여간 혼이 났고 피로가 쌓인 상태의 등반인지라 마지막엔 주저앉고만 싶었습니다.


걷는 내내 저를 괴롭힌 것은 바람입니다. 햇빛이 따가울 때가 아니어서 모자를 쓰지 않은 탓이기도 하지만 얼굴이 터서 갈라지고 살갗이 아릴 정도의 바람이, 그러니까 섬을 바퀴 도는 동안에 걷는 방향이 북에서 서로, 서에서 남으로, 동으로, 다시 북으로 변하는데도 바람은 이상하게 앞에서만 불더란 말입니다. 그러는 바람을 탓이야 했겠습니까마는 족보 있는 바람 앞에 기죽지 않고 걸으려니 어느 순간엔 주먹이 불끈 쥐어지기도 하고 고함 같은 나오기도 하더이다. 


이번 여행에서도 저는 사진을 찍지 않았습니다. 기기묘묘한 바닷가의 화산석들과 이국적 맛을 내는 전봇대 같은 열대수들, 전국 생산량의 칠십프로를 차지한다는 겨울무밭과 당근밭들, 주상절리와 오름들, 사진에 담는 순간 느낌은 자리에서 사진 속으로 이동해서 봉인되고 결국은 박제화되는 것이라 나중에 그것들을 다시 소환해 낸다 하더라도 빛바랜 추억일 것입니다. 오히려 마음속에 상과 느낌을 새겨야 나중에 그것이 희미해진다 하더라도 생각 속에 살아 움직이는 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제주도 여행은 제주를 떠나오는 위에서야 여행의 실체를 느꼈습니다. 접안된 배가 밧줄을 물고 섬을 밀어내며 비로소 섬이 나에게 다가오며 손짓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월요일이 휴관일인줄 모르고 하산 들른 4·3 평화공원과 박물관, 옛날의 중산간 마을과 불턱에서 불을 쬐는 해녀들, 선사민속박물관의 생생한 역사와 이야기들이, 그리고 한라산이 그제야 나를 부르는 것을 보며 뒤늦게 만감이 교차해서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애써 눌러 참았습니다. 그리고는 갑판에서 혼자 병을 마셨지라오. 무엇인가를 마치고 떠나는 자의, 상대를 대상화하는 값싼 감정이기 쉬운 그것은 도취해 있으면 자칫 자기 자신마저 기만하게 되는 것이라 술을 먹지는 않고 살가운 느낌을 간직하려 했습니다. 저에게는 그래서 제주도가 다음에는 속살을 온전히 느낄 있겠다 싶어 아직 마음의 미답지인 것입니다. 제주도를 가기 전에 덧붙이며 이만 줄입니다. 곁에 있는 봄을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그저 있는 그대로 즐기소서. 사월은 예사로운 달이 아니지만......


2022. 4. 18

박형진 드림


대보름


제주에 가고 싶다

성산 일출봉에 백록담에 가고 싶다, 가서

태에 쌓인

분화구에 안긴 달을 보고 싶다

그곳에서부터 하늘에 들어 올려지는

백록에 넘쳐흐르는 물은 양수처럼

한라의 치마폭이 되고

달을 잉태했던 제주의 바다가 된다

이윽고 

백두 천지에 달빛이 비추면

반도의 둥근 것들은 모다 달로 태어나는

땅은 거대한 분화구

술독아지와 떡시루와 개다리소반이

상모와 버구와 당산나무가

눈뜬 심봉사 들처럼 한데 어울려

생명을 잉태한 화화산일터

다시

그것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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