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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 | 기획 [창간기획 ⑤]
보통사람의 삶을 담는 그릇, 전라도닷컴
황풍년
(2017-12-11 13:10:32)



"세상에 '잘나고 중요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허구한 날 촌스럽기 그지없는 시골 할매할배들 얼굴과 고만고만한 이야기만 잡지에 담아서야 되겠는가?"
"모름지기 잡지라는 정기간행물은 훗날 역사가 될 터인데 반듯한(?) 표준말을 기록해야지, 독자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사투리 투성이라면 문제가 있지 않는가?"
이른바 '주류'의 관점으로 '전라도닷컴'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불편하다. 잡지에 등장하는 인물과 풍경이 그동안 봐 온 매체들과는 사뭇 달라 생경한 게다. 따옴표 안의 말들이 온통 전라도 입말이어서 읽기가 수월하지 않다.
그렇다. 전라도닷컴에게 '잘나고 중요한' 사람의 기준과 '반듯한' 표준말의 정의는 그들이 생각하는 상식의 반대편에 있을 것이다. 각계의 전문가, 돈과 권력을 가진 '금수저'나 성공한 사람들 말고, 땡볕 아래 논밭에서 비지땀을 흘리는 늙은 농부들, 시린 바닷바람 부는 갯바닥에 엎드려 하염없이 호미질, 조새질하는 아낙들을 주인공으로 대접하기 때문이다.
부드럽고 세련되었으되 노상 상투적인 서울말 대신, 땀 냄새 시지근한 노동의 현장에서 서로를 다독이는 투박한 지역말이야말로 당대의 삶이 가장 진실하게 녹아있는 정겹고 반듯한 언어라고 믿기 때문이다. 
결국 전라도닷컴은 모두가 우러르며 부러워하는 1%가 아니라, 99%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삶을 담는 그릇이다. 천만다행으로 출신 지역과 상관없이 전라도닷컴의 지향에 박수를 보내며 격려해주는 열혈독자들이 있다. 경상도사람 서울시장 박원순, 충청도사람 판화가 이철수, 제주도사람 제주올레 이사장 서명숙 씨도 전라도 토종잡지를 아끼는 든든한 후원독자님들이다.
그러나 지역과 지역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잡지나 책은 베스트셀러, 블록버스터 등 인기 있는 대중문화상품이 아니기에 대체로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전라도닷컴의 단행본 《오지게 사는 촌놈》(2003. 서재환)은 책 한 권이 온통 전라도 방언 중에도 가장 독특한 광양말로만 씌여졌다. 평범한 회사원 김도수 씨가 구수한 전라북도 입말로 풀어낸 어린시절 추억과 고향 이야기는 《섬진강 푸른물에 징·검·다·리》(2004)와 《섬진강 진뫼밭에 사랑비》(2015)라는 두 권의 책이 되었다.
돈보다는 '우리가 아니었다면 영영 사라질 뻔한 소중한 지역의 기록을 갖게 되었다'는 의미와 재미를 헤아려온 결과물이다.
1980년 광주항쟁 당시 광주시민들이 계엄군의 총칼에 저항하다 쓰러졌던 곳을 찾아 글과 그림으로 엮어 낸 《오월꽃 피고지는 자리》(2006),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하고 건강한 세상을 만들자는 시민운동에 뛰어든 100명의 사연을 담은 《사람꽃 피다》(2016)도 돈벌이가 목적이 아니다. 공동체의 건강성을 위해 후대에 대물림할 역사로서 가치가 있는가를 먼저 따지는 것이 지역출판이라는 생각이다.
전라도닷컴은 지난 2000년 인터넷 사이트로 출발, 2002년부터 월간지를 펴내고 도서출판 사업을 해왔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도시와 새것에 밀리고 치여 천덕꾸러기가 된 시골과 헌것들 속에서 늘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고자 했다. 소비를 미덕으로 물질적 풍요와 육체적 편리와 쾌락을 좇는 세태를 경계하며, 땀 흘려 일하고 나눔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는 전라도 사람들을 줄기차게 기록하고 있다.
전라도를 들여다보고 전라도를 기록하는 일에 빠져들수록 그 아름다운 말과 풍경을 더 멀리 널리 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알리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촌스럽네'를 주제로 사진전시회를 열어 도시를 순회하기도 하고, 전라도의 풍경들만을 그린 그림들을 모아 '그림속 전라도전'이라는 기획전을 열기도 했다. 전라도 사람들의 삶과 문화가 오롯한 전라도입말이 훼손되고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 지난 2011년 정월대보름날에 처음 시작한 '아름다운 전라도말 자랑대회'도 해마다 신명을 더하고 있다. 이밖에 씻김굿 공연, 영화 보는 송년회, 인문학 강좌, 테마여행, 독자의 밤 등 틈틈이 전국의 독자들과 소통하고 즐기는 자리를 만들고 있다.
전라도닷컴은 한결같다. 높은 데보다 낮은 데, 화려한 것보다 소박한 것, 책상머리가 아니라 현장이 우선이다. 노인들의 삶과 전라도말을 귀하게 여기며 소수자의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 전라도에 근거를 두되 반드시 전라도를 넘어 보편타당한 이야기,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오래된 미래를 줄기차게 이야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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