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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8 | 기획 [여성, 영화로 만나다]
영화라는 이름으로 현실을 보여주는 것들
제12회 전북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10편
(2018-08-30 11:06:43)

의미가명확한'돌직구'보다상황과행동이더욱직관적일때가있다. 세상살이가팍팍하단말보다아픈어깨를두드리는행동이삶의고단함을더잘표현하듯이. 전북여성영화제도그런의도에서출발했다. 더쉽고편하게, 그러나의미는명확하게.
전북여성영화제는영화속에제시된상황과행동을통해서무엇을보여주려했을까? 올해영화제에서상영된 10편의장•단편영화를들여다보았다. 영화소개와해설은작품수급을담당한박유선프로그래머의도움을받았다.



'성폭력실태외면하는대학의충격적현실'
<헌팅그라운드>
커버딕 / 12세 / 104분 / 다큐멘터리 / 미국 / 2015

미국내대학에서벌어지는성폭력실태를낱낱이보여주고, 이를은폐하려는대학사회의충격적인현실을고발한다.
미국의여대생다섯명중한명은성폭력을경험하는끔찍한현실. 피해자의단 5%만이성폭력피해를신고할뿐, 그마저도가해자가처벌받는경우는극히드물다. 가히'문화'라할만한대학내의이러한성폭력실태는'브랜드'를지키려는대학당국에의해부인되고은폐돼왔다. 범죄사실을신고한피해자들에게돌아오는것은학교측의불신과비난, 보복뿐이다.

영화는지식의상아탑이어야할대학이실은돈에좌우되는기업임을부각한다. 예를들면, 대학은강간클럽이나다름없는사교클럽의존재를알면서도방치하는데그이유는단하나다. 엄청난액수의기부금을내는졸업생들대다수가사교클럽의일원이기때문이다. 대학이그렇게클럽의존재를묵인하고, 클럽출신졸업생들이다시거액을기부하는악순환이반복되는상황.
피해자들은스스로를'생존자'라부르며대학에맞설준비를시작한다. 다른생존자를찾아연대를구축하고, 매스컴을통해논란을확산시키며, 가해자의정당한처벌과대학의각성을촉구한다.
<헌팅그라운드>는일종의교본이다. 여성문제를공론화시키는방법에대한지침서다. 물론국내미투와미국미투는양상이다르지만, 앞으로국내미투가나아가야할방향의힌트로서<헌팅그라운드>는충분한의미를갖는다.
엔딩크레딧이전부올라갈때까지자리에서일어날수없었다. 생존자들의눈물어린고백이아직도귓가를맴돈다.


'엄마와딸, 가족의의미를묻는다'
<그들이진심으로엮을때>
오기가미나오코 / 12세 / 127분 / 극영화 / 일본 / 2017

11살여자아이토모는엄마가집을나가자외삼촌마키오가근무하는서점으로찾아간다. 익숙한듯토모를맞이하는마키오. 토모의엄마가새로운사랑에빠져종종집을나간건이번이처음이아니다. 집으로돌아오면서마키오는자신이사랑하는사람, 린코에대해이야기를시작한다.
이영화는엄마가그리운딸토모와그녀의엄마가되어주고픈트랜스젠더린코의이야기를담고있다. 서로에게의지하며마음을주고받는과정에서엄마와딸의관계, 가족의의미를짚어볼수있는영화다.
별나게비추려했으면한없이별나게비출수있는관계인데, 영화에선익숙한풍경처럼낯섦의니은도찾아볼수없다. 아주담담하고차분하게수평을유지한다. 일본영화특유의느긋한감성이그대로담겨있다.
<카모메식당>과<고양이를빌려드립니다>에서인간에대한따스한시선을유감없이보여줬던오기가미나오코감독은이번작품에서도그만의고유한톤을유지한다. 포근한온기가한벌의스웨터처럼관객들을감싼다.


'너무나익숙한, 일상의경험'
<5월 14일>
부은주 / 12세 / 25분 / 극영화 / 한국 / 2018

민정은자신의생일이자자신보다먼저결혼하는여동생이예식을올리는 5월의어느날, 의도치않게혼자만의하루를보낸다.
20대후반, 30대초반여성들이일상적으로느낄만한감정들을정확하게낚아챈작품이다. 그나이대여성들이라면쉽게공감할만한이야기를간결하고담백하게담아냈다.
우리의일상이늘그렇듯영화속주인공에게도대단한사건은없다. 자신의생일날동생이결혼한다는설정이극적인드라마를기대케하지만, 사실은아무일도일어나지않는다. 심지어이런일상을보여주는것도영화가될수있나, 라는생각도들지만, 그런점이오히려관객들의공감을이끌어낸다. 보는사람들로하여금나도저런경험이있었지, 라는보편적인감정을가장잘불러일으킨영화다.


'여성이아기를갖는일이란...'
<내차례>
김나경 / 12세 / 15분 / 극영화 / 한국 / 2017

대학병원간호사현정은자신이임신할차례가아닌데실수로임신을하게된다. 그날부터동료들의비난이시작되고, 결국현정은일과아이중하나를선택해야만하는상황에내몰리게된다. 자신의잘못이긴하지만, 누구한명축하한다는말을하지않는다. 대체언제부터임신이사람을짓누르는짐이된걸까. 축하받아야마땅한일일텐데말이다.
살다보면누구나가해자혹은피해자가되고, 양쪽을가르는기준은언제나상황이다. 날때부터나쁜사람은없고, 그저상황이비난하는사람과비난받는사람을만들뿐이다. <내차례>는그런지점을날카롭게포착한작품이다. 임신의순번을정하지않으면출산을할수없는구조. 때문에임신을비난하는선배간호사도나쁘다고만은할수없다. 진정으로비난받아야할것은그런규칙을만들게한병든사회구조다.



'성추행, 기억으로되돌리는빛바랜사진'
<관찰과기억>
이솜이 / 12세 / 11분 / 다큐멘터리 / 한국 / 2018

성추행을당했다. 8년이지나자증거는없고기억만남았다.
<관찰과기억>은국내미투운동을다룬작품이라고볼수있다. 감독은직접경험했던성추행사건을사건이아닌기억으로만들고싶었다. 빛바랜사진처럼희미하게.
페이크다큐멘터리형식을띠고있는이작품은실험정신이넘치는영화다. 추상화를봤을때느끼는감정처럼난해한조각이작품곳곳에배치돼있다. 조각만을따로떼어놓고보면이게지금스토리와연관이있나할정도. 영화제경험이적은사람은스토리가보이지않으면영화의완성도를의심할수있는데, 어떤점에선그런부분까지의도한작품이다.


'여성으로서살아내야할이고단한삶'
<파란입이달린얼굴>
김수정 / 12세 / 111분 / 극영화 / 한국 / 2015

서영은병든엄마와지체장애가있는오빠를부양하고있는여성가장이다. 직장에서쫓겨난서영은조금이라도편한삶을살아보고자엄마에게자신과오빠를위해떠나라는말을남긴다. 그런서영이유일하게기댈수있는건스님뿐이다. 스님의도움으로들어간직장에서서영은행복한삶을꿈꾸지만그마저도쉽지않다. 스스로목숨을끊은오빠의죽음앞에서서영은오롯이혼자가된다.
무엇이그녀를궁지로내모는가. 핏기없는서영의삶을지치게만드는건한마디로정리할수있는단순한문제가아니다. 가난과가족, 노동과장애등수많은사회구조적문제가그녀의, 그리고우리의목을죄어온다. 때문에<파란입이달린얼굴>은불편하다. 아주대놓고불편하라고만든영화다. 엉킨실타래를풀려고노력할수록더욱엉켜드는느낌이다. 발버둥은의미가없다. 그러나이또한우리삶의문제이기에눈을돌릴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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