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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3 | 연재 [이휘현의 책이야기]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하여
앨리슨 벡델 『Fum home 펀 홈』
이휘현(2019-03-22 16:55:11)



나에게, 혹은 우리들에게, '아버지'는 과연 어떤 존재일까.
두 아이의 아빠로 점점 나이 들어가는 나의 실존적인 위치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아버지라는 화두는 책이나 영화, 음악이라는 간접 체험을 통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내 머릿속을 유영해 왔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항상 음울하고 폭력적이면서 또 고독했다. 내가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성장시절에 겪었던 여러 가지 체험들이 아마도 그 이미지에 녹아들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 속 내 아버지는 술이 과한 날이면 집에 와서 곧잘 폭력을 행사하고는 했다. 자식들에 대한 사랑은 지극했던지, 그 폭력이라는 것이 거의 어머니에게 집중되었다. 우리 네 남매는 늦은 밤 마당에서부터 들려오는 아버지의 술 취한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숨도 제대로 못 쉴 만큼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가여운 엄마를 바라보는 어린 마음에는 언제나 생채기가 돋았다.
평상시의 아버지는 훤칠한 외모에 밝은 성격을 가진 멋진 남자였다. 하지만 술에만 취하면 짐승처럼 으르렁대었다. 문제는 이틀에 한 번씩 쉬는 날에는 곧잘 술을 마셨다는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무렵, 누나 둘 모두 학교 때문에 도시로 나가게 되자 이제 시골집에는 나와 막내동생만 남게 되었다. 술 취한 아버지를 달래던 누나들이 자리를 비우면서 내 불안은 더욱 커갔다. '우리 엄마… 불쌍해서 어떡하지?'
중학생이 되면서 몸이 제법 커지자 나는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할 때마다 대들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팔을 붙들고 아버지보다 더 큰 소리로 맞서며, 나는 아버지라는 실존인과 부딪혀 싸웠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하루 빨리 나이 들어 힘없는 노인이 되길 빌고 또 빌었다.
나이 스물이 넘어 이런저런 책들을 많이 접하다 보니, 내가 천형(天刑)처럼 괴로워하던 살부(殺父) 의식이 인류의 오랜 관념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과 결과에 따라 한 개인의 삶과 의식이 크게 다른 방향을 향한다는 것 또한!!
소설 <영웅시대>와 <노을>을 읽으며, 아버지라는 대상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이데올로기를 극단적으로 혐오하는 마음이 생겨날 수도 있고(이문열), 또 누군가는 온전한 휴머니즘으로 귀착될 수 있음을(김원일)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화두를 붙들고 있는 작품들이 어디 그 둘 뿐이겠는가. 프란츠 카프카, 록 밴드 '더 도어즈'의 짐 모리슨, 소설 및 영화 <빅피쉬> 등이 아니더라도 세상의 수많은 예술 작품 속에는 '아버지'라는 관념에 대한 수많은 감정의 결과물이 채록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 또 한 명의 '아버지'가 있다.
미국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에 아담한 저택을 소유한 그는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다. 제임스 조이스, 스콧 피츠제럴드 등을 좋아하는 그는 또한 고전문학 탐독가이기도 하다. 아울러 남들이 내다버린 각종 가구나 집기구 등을 주워 집안을 옛날 빅토리아풍으로 꾸밀 줄 아는 재활용 전문 건축가이자 예술가이다.
대학 연극반에서 만나 결혼한 아내나 슬하의 삼남매에게는 딱히 애정표현을 하지 않는 그는, 그저 가장으로서의 표면적 역할에 충실할 뿐이고, 그리하여 집안의 분위기는 건조하다.
그런 그가 마흔 네 살의 나이에 죽음을 맞는다. 세상에 알려진 사인은 교통사고. 하지만 그의 딸은 아버지의 죽음이 자살이라고 확신한다.
'가족 희비극(A Family Tragicomic)'이라는 모호한 장르로 소개되는 만화책 <펀 홈(FUN HOME)>은 저자가 아버지의 죽음을 자신의 가족 연대기를 통해 해석해보려 한 지극히 '문학적인'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저자 앨리슨 벡델(Alison Bechdel)에 관한 정보를 전혀 갖고 있지 못했다(솔직히 지금도 사정은 비슷하다). 어느 날 우연히 '즐거운 집(펀 홈)'이라는 타이틀이 눈에 들어왔고, 쉽게 읽을 수 있는 만화책이라 별 부담 없이 집어든 책이었는데……, 웬걸!!
<펀 홈>은 전혀 즐겁지 않았다, 만화라서 부담 없이 읽히기는커녕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까지 독자인 내 마음을 천근만근 짓눌렀다. 이 책을 펴들었을 때 기대했던 감정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 전하는 정서적 충격! 그 때문이었을까? 책을 읽고 꼬박 이틀이 지난 지금도 내 마음 속을 뒤흔든 어떤 강렬함이 쉽사리 가시지 않는다. 그리고 그건 결과론적으로 돌이켜 보자면 매우 좋은 느낌의 여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펀 홈>은 지극히 자전적인 이야기다. 일체의 꾸밈이 없이 저자의 구체적인 기억과 일기를 토대로 만든 극사실주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무뚝뚝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주인공은 사춘기에 접어들며 자신의 성적 지향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 고민은 대학생이 된 후 확고한 신념이 되고, 그 신념은 행동으로 이어진다. 주인공은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고향의 부모에게 알린다. 그리고 얼마 후 그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다. 자신의 커밍아웃과 그의 아버지 죽음 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사실 그의 아버지 또한 동성애자였다. 동성애자들이 좀 더 주체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주인공의 세대와는 다르게 그의 아버지는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철저하게 숨기면서(물론 자신의 가족들에게도 감추며) 살아왔다. 하지만 욕망을 완벽하게 거세할 수는 없었다. 세상의 윤리와 내면의 마음풍경 속에서 아버지는 끊임없이 주변인으로 살아온 것이다.
'펀 홈'이란 주인공 아버지가 가진 또 다른 직업, 즉 장의사로서 가지고 있던 점포의 이름이기도 했다. 매번 구체적인 죽음과 마주해야 했던 아버지의 삶. 죽음보다도 더 괴로웠던 동성애자로서의 정체성.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장의업체 '펀 홈'을 운영하며 그의 아버지는 매번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위태로운 순간을 자신이 사랑했던 영문학과 빅토리아풍의 인테리어를 통해 극복해보려고 애썼던 게 아닐까?
동성애자라는 소수자로서의 삶이 작가 아버지 인생을 짓누르는 것처럼 보이는 이 이야기의 표면 아래에는, 사실 '아버지'라는 타이틀을 달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그 끝을 알 수 없는 고독이 자리 잡고 있다. 여느 문학보다도 더욱 문학적인 만화 <펀 홈>의 보편적 감성이 폭발하는 곳도 바로 이 지점일 것이다.


오랜만에 여운이 깊은 작품을 읽었다. 만화책이란 그저 심심풀이 땅콩 정도라고 여기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어퍼컷을 크게 한 방 날리지 않을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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