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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6 | 칼럼·시평 [문화칼럼]
우리는 모두 리빙랩을 하고 있다
박형웅(2019-06-18 10:36:14)

최근 들어 리빙랩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리빙랩의 정의부터 역사나 방법, 성공 사례까지 하나를 답하면 마치 스무고개를 하듯 꼬리를 무는 질문이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반응은 "아! 제가 지금 하고 있는 게 리빙랩이군요."였다. 나는 이 말에 리빙랩의 핵심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혁신이나 문제해결을 위한 시민의 참여’.  리빙랩은 공통의 문제 해결을 위해 다수가 참여하여, 함께 노력하는 과정이다. 물론 누군가 먼저 나서서 시작할 수도 있고, 함께 논의해서 출발할 수도 있으며, 과정 중에 동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참여함으로써 모두가 리빙랩의 주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나는 이런 이유로 우리 모두는 리빙랩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믿고 있다. 당신이 타인이나 사회를 위해서 누군가와 함께 무엇인가를 해본 기억이 있다면 더욱 그렇다. 리빙랩은 어떤 문제를 개선하고 혁신하기 위해 문제 당사자와 함께 실생활에서 실험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리빙랩이라는 말이 Living(생활)과 Lab(실험실)이 합쳐진 이유는 명확하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수의 전문가가 특정 시설 안에서만 실험하고, 그들끼리 결론을 내는 방식과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문제에 대한 공감, 공감하는 사람과의 연결, 반드시 해결하기 위한 행동, 지속할 수 있는 삶의 밀접성 유무이다. 리빙랩에서의 실험은 바로 문제 해결을 위한 반복적인 시도와 참여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늘어나는 길고양이와 주민들이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대안 마련, 페인트가 벗겨져 점점 흉물스럽게 변해가는 마을 벽화의 자발적인 유지보수, 장마철에 항상 범람하는 하수구나 개천 정비, 불법 주차로 인해 주차장으로 변해가는 마을 문제, 늘어나는 빈집으로 인한 우범지역 증가 등 공공의 문제에 대해 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고민하는 것부터 지구 온난화, 미세먼지 감소, 1회용 플라스틱 줄이기, 농촌 고령화 문제 해결 등 전 인류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까지가 모두 리빙랩의 주제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리빙랩은 2013년,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진행한 '사회문제 해결형 기술개발사업'으로 도입되었다. 연구개발사업이 기술을 개발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최종 사용자와 연구자가 현장에서 협업하는 수단으로 리빙랩이 활용된 것이다. 연구개발 결과가 투자대비 혁신/ 활용 수준이 낮아지는 이유로 실험실과 실생활간의 간극이 컸기 때문이라고 분석한 결과다. 2019년 현재 리빙랩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국민생활연구사업, 범부처 사회문제 해결형 기술개발사업, 행정안전부의 사회혁신사업, 지자체의 사회혁신사업 등의 핵심 추진체제로 자리 잡고 있는 중이다. 전라북도는 전주시가 행정안전부의 사회혁신 사업에 선정되어 추진하고 있는 전주시사회혁신센터의 사회혁신 리빙랩, 전라북도콘텐츠코리아랩의 공공혁신 리빙랩, 고용노동부의 혁신 프로젝트 사업 중 지역혁신 리빙랩, 전자부품연구원의 스마트 농생명 리빙랩 등이 대표적이다. 대학을 중심으로 리빙랩 활동가 교육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전주대학교는 사회적 경제와 리빙랩 방법론을 접목한 융합 과정을 개설하여, 지역의 다양한 문제를 대학 내에서 실험하고, 지역으로 확장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처럼 현재 전라북도는 지역의 지리적, 사회적 여건에 맞게 도시 청년부터 농촌의 농민까지 다양한 문제 해결을 위한 커뮤니티 단위의 리빙랩 프로젝트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리빙랩 도입 초기에는 기업들이 소비자들에게 정말 필요한 제품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소비자들의 일상과 똑같은 테스트 공간을 만들어 실험하고, 정보를 얻고, 분석하여 제품을 개선하는 과정을 토대로 진행되었다. '생생한 소비자의 반응을 제품에 반영하여 혁신한다'는 목적에 충실한 형태였다. 하지만 최근의 리빙랩은 지역/공동체가 다양한 문제를 실생활에서 직접 해결하는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사회의 다양한 이슈와 문제들이 점점 더 복잡한 양상으로 드러나고 있어서, 정부에 대책을 요구하고 마냥 기다릴 수 없기에 시민 사회에서 직접 해결하려는 사례가 증가하는 것이다. 이 경우, 그 진행 과정을 살펴보면 어김없이 리빙랩이 적용되어 있다. 지역 주민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당사자들과 고민하고, 해결 방법을 찾아서, 적용하고, 개선하고, 이를 반복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바로 그것이다. 문제 당사자들이 행동에 나서는 혁신가가 되고, 시민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며, 정부와 정책이 이를 지원하는 방식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는 중이다. 중앙 정부에서 지방 자체단체 그리고 시민/공공 단체, 조합, 그룹, 팀, 당사자까지 위에서 부터가 아닌 아래에서부터의 확산이 지금 시대 리빙랩의 핵심이다.


리빙랩은 사회 혁신이라는 큰 흐름 안에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 곳곳을 실험실로 삼아 다양한 사회 문제의 해법을 찾아보려는 시도가 바로 리빙랩이기 때문이다. 삶의 현장이 실험실이니 당연하게도 그곳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 모두가 실험의 참여자이자 설계자이고, 해법을 찾아내야 하는 주체다. 지금까지는 '관찰의 대상’에 그쳤던 시민의 자리가 리빙랩에서는 '함께 창조하는 주체’로 바뀐 것이다. 전문가들은 리빙랩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시작부터 사용자를 참여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사용자가 혁신의 모든 과정에 참여하고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사용자에게 그 만큼의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 지금은 침체되어 있지만, 우리는 반상회라는 마을 협의체에서 마을 내 다양한 문제를 검토하고, 아이디어를 모아 실천했던 경험이 있다. 물론 통/ 반장의 강력한 권한으로 민주적인 의사결정이 방해받기도 했지만 말이다. 리빙랩은 문제해결 중심의 접근이라는 점에서 '문제’에 대한 공감과 동등한 권한 부여가 가장 중요하다. 해결 방법에 대한 모색은 문제에 대한 충분한 인식과 관련 문제에 대한 다양한 시도에 대한 검토 후에 이루어져야한다. 인터넷이 고도로 발전된 지금 이 사회는 이미 같은 문제의 해결로 고민하던 누군가의 경험 정보를 충분히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실험 대상 지역의 특수성을 최대한 고민하고, 유사 사례에 대한 조사를 검토해야 한다. 무작정 아이디어 도출에 사로잡히는 순간, 문제의 본질에서 멀어질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실험장이다. 전문가들과 기업들이 인간의 평균 수명을 늘리고, 반복적이고 비효율적인 노동을 대체하는 다양한 기술을 실험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진짜 세상은 복잡하고, 불편하고, 부당하게 느껴지는 것들로 가득하다. 그 누구와도 가깝게 소통할 수 있지만, 곁에서 따뜻한 온기를 전해주는 누군가는 늘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리빙랩의 출발점은 지역 단위의 커뮤니티와 특정 주제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들과의 협의체를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당장 관심을 갖고 주변을 돌아보길 권한다. 원도심 도시재생의 한복판에서, 불편하고 낙후된 공간에서, 소외되고 생기를 잃은 동네 어딘가에서, 스마트팜이 잘 동작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는 마을 회관에서, 고질적인 취업난을 극복하기 위해 모인 동네 카페에서 우리는 열심히 리빙랩을 하고 있다. 당신의 관심과 참여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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