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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 | 문화현장 [문화현장]
축제의 완성도, 숫자의 누적을 경계하라
2019 전주세계소리축제
이동혁(2019-11-15 11:21:33)



전통과 세계 음악의 만남, '2019 전주세계소리축제'가 지난 10월 6일 폐막 공연을 끝으로 닷새간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첫날 태풍 '미탁'의 영향으로 다소 불안한 출발을 보였으나 신속한 대처와 안내로 18년 축제 운영의 안정감을 보여 준 데 대해 박수를 보낸다. 악천후 속에서도 관람객들을 위한 운영 측,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이 돋보였으며, 집계된 관람객들의 수(13만 7천여 명)가 지난해를 웃돈다는 사실에서도 명실상부 지역을 대표하는 축제로 거듭난 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덧붙여 개막식 공연을 필두로 시각의 확장을 이루었다는 호평도 올해 소리축제의 성과로 꼽을만하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운영과 관람객 수 등 외적으로 보이는 성과 이외의 부분에 대해선, 특히 프로그램의 내용과 구성에 관해선 지난해와 크게 달라진 점이 없어 아쉬웠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주제와 라인업은 바뀌었으나 지난해 큰 구성을 이룬 '전통', '이종의 결합(컬래버레이션)', '컨템포러리(현재 벌어지고 있는 음악적 현상)' 등은 올해에도 별다른 변화 없이 그대로 유지됐기 때문이다. 전통음악과 월드뮤직을 동력으로 '전통으로부터 파생된 모든 음악적 현상들', '다음 세대에 전하는 문화예술의 다양성, 그리고 시각의 확장'을 보여 주는 것이 소리축제의 정체성이지만, 그 전달 방식이 하나의 형태로 굳어져 매너리즘화되는 것을 경계하고 우려하는 목소리다.
특히 올해 축제에서는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전통으로부터 파생된 음악의 확장을 시도했지만 기대했던 현상으로 이어지기에는 미흡했다는 평이다. 문화예술의 다양성 또한 전 세계 뮤지션들의 무대를 보여 줌으로써 어느 정도 충족되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보여 주는 방식에 변화가 없어 감흥을 느끼기 어려웠다는 지적도 있다.


참신함의 가장 쉬운 방식, 컬래버레이션
개막 공연, 폐막 공연, 광대의 노래 등 1과 1이 더해져 3과 4와 같이 더 큰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컬래버레이션 공연은 이제 소리축제를 상징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됐다. 동양과 서양의 만남, 다른 장르, 악기와의 결합, 청각뿐 아니라 시각까지 고루 자극하는 화려한 퍼포먼스까지 컬래버레이션은 음악의 자유분방한 매력을 똑똑히 보여 주는 수단이자 표현 방식으로 소리축제 안에서 공고히 자리매김했다.
이 같은 흐름에서 음악에는 경계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지만, 일각에선 퍼포먼스 중심의 보여 주기식 공연에 지나치게 치중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소리축제가 지향하는 융합과 이종의 결합, 그 안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실험과 시도는 응원하고 격려할만한 것이지만, 이것이 하나의 음악적 현상으로 자리 잡기보단 일회성 이벤트 공연으로 연속성을 갖지 못한다는 지적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또한, 컬래버레이션에 지나치게 무게를 두는 기획도 문제로 다가온다. 진지한 고민을 통해 기획의 치밀함을 더하기보단 손쉽게 눈길을 끌 수 있는 컬래버레이션에 주목함으로써 참신함을 대체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소리축제가 선보이는 컬래버레이션 무대가 다른 곳에선 보기 힘든 명품 공연이란 사실은 부정하기 힘들다. 다만 부족한 기획력의 눈가림으로 컬래버레이션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면, 내년엔 반드시 올해와 다른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소리축제의 주제를 담은 특별기획 종교음악 시리즈
이번 소리축제의 주제인 '바람, 소리'에는 관악기의 동력인 바람(wind)과 종교음악 및 농악 등 전통예술 속에 새겨진 인류의 바람(wish)을 동시에 연상케 하는 중의적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음악 시리즈'는 이번 소리축제의 주제와 가장 가깝게 맞닿아 있는 기획이라 할 수 있다.
4일과 5일 두 번의 무대로 꾸며진 종교음악 시리즈에는 조지아정교회 수도사들이 부르던 다성음악의 큰 울림을 전한 '이베리 콰이어', 사자의 영혼을 천도하는 전통 불교 의식의 하나로 화려한 춤과 깊이 있는 범패의 숭고함이 돋보인 '전북영산작법보존회', 깊은 신앙심과 예배의식 속에서 전념한 바흐와 메시앙의 작품, 그레고리안 성가에서 영감을 얻어 순도 높은 평화의 음악을 선보인 '첼리스트 양성원'과 'TIMF앙상블', 경상남도 일대에서 전승되던 범패의 맥을 이어 물과 육지에 떠도는 영혼들을 위하여 베푸는 불교의 천도의식을 보여 준 '아랫녘수륙제' 등이 참여했다.
무대의 완성도, 관객들의 집중도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만큼 훌륭한 무대를 보여 주었으나 한편으로는 종교의 뿌리라 할 수 있는 무속음악의 근원까지 더듬으며 신에 대한 인간의 갈망을 더 깊은 곳까지 보여 줄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나아가서는 이번 소리축제의 주제를 온전히 담은 특별기획이었음에도 그 무대 구성이 두 차례에 그쳐 지난해 닷새간 펼쳐진 굿 시리즈가 오히려 올해의 주제에 걸맞은 볼륨이 아니었나 하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대해 조성원 전주세계소리축제 기획팀장은 “지난해 이미 굿 시리즈, 이슬람 수피 음악 등을 선보였고, 2년 연속 같은 무대를 꾸리기 어려워 고민이 많았던 부분이다. 그럼에도 종교음악 시리즈를 꾸린 이유는 종교가 가진 본연의 의미, 공동체의 안녕과 기원을 들여다보자는 취지였다"며, “종교음악 시리즈 이외에도 야외에서 진행된 농악 시리즈 역시 큰 틀 안에서 보면 종교 본연의 바람과 기원이 담긴 무대였다. 그 점이 부각되지 못해 아쉽지만, 향후 종교 원형에 대한 조심스런 접근을 통해 집대성한 무대를 다시 구성해 보려 한다"고 전했다.


10주년 맞은 소리프론티어
소리축제의 대표 기획으로 2010년 시작된 '소리프론티어'는 경연 방식을 통해 한국형 월드뮤직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해외 진출의 기회를 제공하는 무대다. 지금껏 소리프론티어를 거쳐 간 숱한 음악인들이 한국 음악계의 주목을 받으며 활동하고 있고, 10주년을 맞은 올해 바야흐로 젊은 음악인들의 등용문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은 모습을 보여 줬다.
그러나 지난 10월 17일 전북일보에 실린 김현준 음악평론가의 글처럼 소리프론티어 역시 고민의 지점에 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해당 기사에서 필자는 “소리프론티어의 가장 큰 가치는 참신한 시각과 태도의 음악인을 발굴하는 데 있다. 실제로 이 경연에 참여한 음악인들은 예외 없이 '새로움'에 대해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토로해온 새로움의 가치가 무엇에 기준하고 있는지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참여 음악인들에게 “어깨춤 들썩이며 관객들이 던져 주는 환호가 소리프론티어를 통해 이룰 최종 목표가 아니길 바란다"며, “선현들이 유효하지 않다고 결론지은, 하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이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케케묵은 화성의 조합이 우리 음악의 아름다움을 세계화하는 방법이 아님을, 더 늦기 전에 깨닫길 바란다"는 당부를 전했다.
소리축제 측에도 “참여 음악인들에게 노골적으로 더 깊은 예술성을 요구"해야 한다며, “음악인들로 하여금 소리프론티어가 자신들의 음악을 구체적으로, 실질적으로 발전시킬 거란 믿음을 갖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10주년을 맞은 지금이 어쩌면 소리프론티어의 미래를 고민할 전환점일지도 모른다. 한국형 월드뮤직 아티스트 발굴의 장으로서 다시 새로운 기준과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 수상 이력에 한 줄을 더하기 위해 참여하는 대회가 아니라, 상금이 목적인 대회가 아니라 진정으로 세계에 통용되는 음악인을 배출하는 경연의 장으로서 지원과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대회가 되어야 한다.
올해 성년을 맞이한 소리축제. 국내 어디서도 보기 힘든 명품 공연이 줄을 이었고, 동서양 음악의 협업과 충돌에서 발생한 무대의 완성도 역시 괄목한만한 것이었다. 오직 소리축제에서만 맛볼 수 있는 무대란 캐치프레이즈에도 충분히 동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적지 않았다. 그렇기에 아쉬움이 더욱 크다. 아쉬움이 많았단 말은 기대 또한 컸다는 말이다. 소리축제가 진정으로 소리 예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자 한다면, 이제 그 방식에 대해 고민할 때다.

내후년이면 20돌을 맞는 소리축제. 그러나 숫자의 누적이 축제의 완성도를 보장하진 않는다. 도전적이며 언제나 새로운 얼굴로 관객과 만날 수 있는 축제가 되기 위해선 지금 고민해야 한다. 소리축제가 늘 새로운 도전과 참신한 음악 현상의 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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