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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 | 연재 [권하는 책]
시와 함께하는 새해
이동혁(2020-01-15 10:31:10)

읽는 이를 새롭게 하는 시의 힘. 시를 쓰는 건 시인의 일이지만, 해석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그 과정에서 낯선 시선에 눈을 뜨고, 함축된 언어는 새로운 마음과 삶을 잉태한다.
이번 권하는 책에서는 신년을 맞아 신간 시집으로 구성했다.
<너와 함께라면 인생도 여행이다>의 나철주 시인부터 <너의 거기는 작고 나의 여기는 커서 우리들은 헤어지는 중입니다>의 김민정 시인까지 다양한 시선이 담긴 시를 읽으며 새로운 마음가짐을 다잡아 보자.




너와 함께라면 인생도 여행이다
나태주 (지은이) │ 열림원 │ 2019. 12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단 세 구절로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풀꽃’의 나태주 시인이 새 시집을 낸다.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 「대숲 아래서」가 당선되고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니, 2020년은 시인이 등단한 지 꼬박 오십 년째가 되는 해다. 등단 오십 년에 맞춰 발간하는 시집이어서일까. 유달리 담백하면서도 농밀한 시어들이 가득하다. 특유의 천진난만하고 순진무구한 목소리가 그대로 배어나는 동시에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랑하는 사소한 것들에 대한 끈끈한 애정과 애착이 묻어난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살피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겸손한 긍정과 겸허한 감성이 그의 시 세계 곳곳에 별자리처럼 수놓아져 있다.




괜찮아, 상처도 꽃잎이야
이정하 (지은이) │ 문이당 │ 2019. 12
시집 <다시 사랑이 온다> 이후 3년 만에 이정하 시인의 신작 시집 <괜찮아, 상처도 꽃잎이야>를 출간했다. 그의 시는 아프다.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등의 시어처럼 그의 시는 읽을수록 가슴 속에 번져오는 아픔이 있다. 사랑하는 대상을 멀리두면서 생겨나는 가슴앓이를 묘사하는 데 있어 그는 정직하고 진솔하다. 결코 과장되거나 억지스러움이 묻어나지 않기에 자연스럽게 그의 시에 다가갈 수 있고 함께 아파할 수 있다. 이 시집은 서정에 메말라 온 수많은 독자들에게 단비나 다름없다. 시를 읽지 않는 사람들, 가슴이 점차 메말라져 가는 이 삭막한 시대에 이 시집이 촉촉한 물기를 뿌려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사랑을 위한 되풀이
황인찬 (지은이) │ 창비 │ 2019. 11
황인찬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사랑을 위한 되풀이>가 출간되었다. 4년 만에 펴내는 이 시집에서 그는 한결 투명해진 서정의 진수를 마음껏 펼쳐 보인다. 일상의 사건들을 소재로 평범한 언어를 날것 그대로 시어로 삼는 그의 시는 늘 새롭고 희귀한 시적 경험을 선사한다. 그는 고백하듯이 시를 쓴다. 세상을 앞에 두고 늘 끊임없이 고민한다. 시집을 펴내며 그는 “나는 증오하는 것에 대해서만 생각할 수 있고, 의심스러운 것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다”고 고백한다. 그렇다고 세상에 대한 증오와 의심의 감정만이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시인은 서로의 슬픔과 아픔에 대해 말하며, 소박하고 진실한 순간을 찾아간다. 일상을 세심하게 응시하며 삶의 가치와 존재의 의미를 환기하는 그의 시들이 깊은 울림을 남긴다.




무족영원
신해욱 (지은이) │ 문학과지성사 │ 2019. 12
정제된 언어와 견고한 형식으로 주목받아온 신해욱 시인의 네번째 시집 <무족영원>이 출간되었다. 이 시집에서 그는 눈과 다리 없이 땅속으로 깊이 파고드는 무족영원류가 되어 ‘너’를 찾아 헤맨다. 하지만 그는 어떠한 노력으로도 타자에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과 직면한다.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는다. 합일의 불가능성을 감수하고, 슬퍼하면서도 너를 찾아간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뒤를 돌아본다. 어쩌면 너는 먼 곳에서 찾아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내가 떠나온 자리로 돌아가야 만날 수 있는 대상이 아닐까. 그는 시집의 말미에 이르러 우리가 다시금 처음을 돌아보도록 이끈다. 그러므로 <무족영원>을 읽는 일은 그의 웜홀을 통해 무한히 거듭해보는 사랑의 회고일 것이다




너의 거기는 작고 나의 여기는 커서 우리들은 헤어지는 중입니다
김민정 (지은이) │ 문학과지성사 │ 2019. 12
시집 <너의 거기는 작고 나의 여기는 커서 우리들은 헤어지는 중입니다>를 묶어낸 시인, 김민정. 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이 파격적인 제목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 바 있다. “문학을 향한 제 열망과 욕심에 비해서 문학 본령의 구멍은 늘 너무 작았기 때문에 먼 길을 돌아가고 있는 것 같고, 자꾸 헤어지고 있는 것 같거든요. 근데 ‘헤어졌습니다’가 아니라 ‘헤어지는 중’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 와중이라는 자체가 ‘시의 존재감’과 같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에요.” 그의 시는 언제나 커브 없는 직구였다. 이번 시집에서도 그는 삶을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으며, 자유분방하지만 가볍지 않은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본다. 지워진 이웃의 아픔과 슬픔을 바로 바라보고 이해하고 다가서서 언어로서 연대하려는 깊은 사랑이 담겨 있다. 





거의 블루
임선기 (지은이) │ 난다 │ 2019. 11
임선기 시인의 네번째 시집 <거의 블루>가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에서 그의 화두라 할 만한 호흡과 여백에 대한 탐구는 더 깊고 넓어졌다. 편안하고 평이하게 읽히지만 수수께끼와도 같은 압축된 시어와 그에 담긴 철학적 깊이는 자꾸만 읽어 지나온 뒤편을 돌아보게 한다. 그는 말이 합성되고 파생될 때 일어나는 의미의 술래잡기를 계속하며 말의 해변에서 쓸려나가는 모래 같은 언어들을 줍는다. 리듬과 호흡을 화두로 삼고 발전시켜온 그이기에 이번 시집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구두점의 의미 역시 특별한 이유가 있다. 각기 다른 모양과 높낮이를 가진 구두점들은 마치 음표처럼 작동해 시를 읽는 호흡에 개입하고 의미의 자리를 만드는 시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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