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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5 | 연재 [이휘현의 책이야기 ]
오동명 이야기
오각형, <어쩌면 넌 또 다른 사랑일지도>
이휘현(2020-05-12 19:38:49)

이휘현의 책이야기 | 오각형, <어쩌면 넌 또 다른 사랑일지도>

오동명 이야기
글 이휘현 KBS전주 PD




지은이 오각형(오동명)
출판사 라꽁떼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2009년 어느 봄날의 일이다.

대학 시절 교수님의 초대로 함께 하게 된 저녁 식사 자리에 그가 있었다. 나는 그가 반가웠다. 내가 대학교 졸업반이던 2001년 여름 그의 강연을 멀찍이서 들었던 추억이 있을뿐더러, 그가 쓴 몇 권의 책을 읽은 독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바로 내 코앞에 있다니!


동석했던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고 그와 단둘이 남게 된 나는, 늦은 새벽까지 그와 함께 맥주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한국 사람들의 인색한 독서문화를 함께 개탄했던 기억은 또렷하다. 메인 안주는 도스또예프스끼였고, 강준만, 고종석, 김훈 등이 사이드 메뉴로 올랐다. 얼마 후 새벽기차에 오르는 그를 배웅하며 조만간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지만, 우리가 다시 만난 건 그로부터 5년이 흐른 2014년 봄이었다.


그 사이 그는 대전에서 제주로 이주해 몇 년 살다가 얼마 전 남원에 거처를 정했다고 했다. 얼굴빛은 이전보다 많이 가무잡잡해 있었다. 남원터미널 근처에서 만나 추어탕으로 간단히 점심을 치른 우리는 그가 묵고 있는 이백면의 시골집을 찾아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사람들이 기억해 주는 것도 한 철이더라고요. 시간 흘러가니까 하나둘 금세 잊어버려. 강연도 언제부턴가 뚝 끊기더라고. 돈이 좀 궁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어요. 그때 그 일을 하지 않았으면 나는 정말 쪽팔린 인생을 살았을 거야….”

‘오동명’이라는 이름이 세간에 오르내린 건 1999년 봄 당시 김대중 정부가 거대 신문사를 상대로 세무 조사를 벌일 무렵이었다. 중앙일보 홍석현 사장(현 회장)의 탈세 혐의로 검찰 조사가 시작되자 일선 기자들도 ‘언론 탄압’을 부르짖으며 회사 보호막을 자처하던 어느 날 아침 중앙일보 사옥 1층에 장문의 대자보가 하나 붙었다. 필자는 중앙일보 사진기자로 근무하는 오동명이었다.

“하루 전날 검찰로 향하는 사장을 향해 피켓을 들고 ‘사장님 힘내세요!’를 외치는 동료들의 모습을 보니 참 한심하더라고요. 그때 우리 아이가 초등학생이었는데 적어도 그 녀석에게만큼은 더 이상 부끄러운 아빠가 되고 싶지 않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그날 밤 집에서 장문의 대자보를 작성했지요.”


‘언론 탄압이라고 주장만 하기에 앞서’라는 제목의 대자보는 정부의 언론사 세무 조사가 정당한 것이며 제아무리 언론사라고 해도 세무 조사로부터 성역이 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이 대자보 사건은 각종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보수언론보다는 주로 진보언론이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하지만 동료들 중 그를 편들어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그렇게 직장을 나왔다. 갑자기 일이 없어진 그는 그간 자신이 경험하고 느꼈던 한국언론과 그 주변의 민낯들을 글을 통해 풀어내야겠다고 결심했다. <당신 기자 맞아?>(2000년 출간)는 그렇게 세상에 선을 보였다. 당시 이 책은 꽤 인기가 있었다. 대중적이면서도 현장감 넘치는 글이 흥미로웠고, 그중에서도 특히 문화유산답사기를 통해 오랜 시간 베스트셀러 작가로 알려졌던 어느 진보 지식인의 위선을 폭로하는 이야기가 상당한 화제를 모았기 때문이다.


“그 양반이 내 글 읽고 노발대발했다지 아마. 그 후로 내가 책을 여러 권 냈는데 출판사와 계약 맺기가 쉽지 않았어요. 내 이름이 그 양반 블랙리스트에 올랐거든. 문화권력인 그의 입김 하나면 출판사들이 벌벌 떨었어요. 그런데 그 양반 텔레비전에 한 번씩 등장할 때마다 온갖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더라고. 위선도 그런 위선이 없지.”


중앙일보 대자보 사건 이후 몇 년간 그는 여기저기 대학 및 시민단체에 불려 다니며 강연을 했다. 2001년 여름 내가 그의 강연을 들었던 때가 그 시절의 끝물이었다. 그 후 그는 아들과 함께 춘천으로 대전으로 거처를 옮겨가며 가끔씩 들어오는 대학교 강사 자리를 전전했다. 2007년 아들과의 일상을 담담하게 풀어낸 에세이집 <부모로 산다는 것>이 그 해 인문사회분야 베스트셀러에 올랐지만 인세는 잘 들어오지 않았다. “5만 부 정도 팔린 걸로 알고 있는데… 출판사 쪽 사람들 중에도 고약한 사람들이 제법 있거든….”


퇴직 후 15년간 그는 열 권이 넘는 책을 펴냈다. 주 전공인 사진 찍기부터 일상을 담은 에세이, 그의 또 다른 취미인 자전거 여행 등등 다양한 종류의 글들이 지면을 채웠다. 내가 그를 다시 만났던 2014년 봄에는 또 한 권의 새로운 책이 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 여기 남원에 자리 잡았지만 그전에 만 3년 동안 제주도에 살았어요. 요즘 사람들이 제주살이를 무슨 낭만쯤으로 여기더라고. 텔레비전에서도 그런 걸 부추기고.”


<제주도, 무작정 오지 마라>는 낭만으로 덧칠된 섣부른 판단 말고 현실 세계로서의 제주살이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썼다고 했다. 그날 후 며칠이 지나 그의 친필 사인과 간략한 편지글이 앞표지에 새겨져 책이 전달되었다. 하필이면 그때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가 가라앉았다. ‘제주도, 무작정 오지 마라!’. 그 날 그 제목이 내 눈앞에서 자꾸만 아른거렸다.


그는 지금 남원에서 ‘또바기학당’이라는 이름의 조그만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다. 경제활동에 큰 도움이 되는 건 아니지만 아이들과 함께 책 읽고 얘기 나누는 시간이 마냥 즐겁다고 그는 말한다. 그런 그에게서 얼마 전 문자 메시지가 하나 왔다. 오랜만에 책을 한 권 냈다는 것이다. <어쩌면 넌 또 다른 사랑일지도>. 자신의 시골집에 어느 날 들어선 길고양이와의 우정을 다루고 있는 예쁜 에세이집. 이 책에서는 수준급인 그의 그림 솜씨도 엿볼 수 있다. 기존 출판사에서 책 내기가 어려워지자(문화유산답사 하시는 ‘그 양반’의 위세가 여전한 모양이다!!) 또바기학당의 한 학생 부모님이 사재를 털어 책을 낼 수 있게 해주었다고 한다.

 

저자명은 ‘오각형’이라는 새로운 필명으로 새겼다. “좀 뻔뻔스럽지만 많이 팔아달라!”고 그는 수줍게 당부했다. 그게 이 책의 출간을 가능하게 해준 그분들에 대한 최고의 예우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나도 좀 뻔뻔해지기로 했다. 그게 그에 대한 내 최고의 예우일 것이니 말이다.


“독자 여러분! 오각형(오동명) 선생님의 <어쩌면 넌 또 다른 사랑일지도> 많이 읽어 주세요!! 아내와 남편, 자식들에게도 선물하시고 주변 분들에게도 널리 퍼뜨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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