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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11 | 칼럼·시평 [저널이 본다]
공간유감
박병도 극단황토 상임연출(2003-09-26 10:49:40)

죽은 공간 잠자는 사랑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 5막 1장에는 이런 대사가 등장한다. 「연인이나 광인은 환상을 그려내고, 마침내는 냉정한 이성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들을 생각해 내기 마련이오.」
우리네 속담에 '아는 게 병이고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있다지만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고 부족의 불만을 털어놓는 '벙어리 냉가슴'에다 떡고물 인심으로써 '잘 하던 병신 짓도 멍석 깔아주니 안 할래?'라고, 그 알량한 멍석을 갖다 대고 무턱대고 나무랠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극중 대사에 나오는 연인이나 광인이 아닌 바에야 우뚝우뚝 세워 놓은 공간들이 탁상의 환상이었는지, 그래도 배려해 보겠다는 문화(?)민족으로서의 이성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긍정적 차원으로 공회당 개념에서 부정적 측면으로는 비를 피하는 건 조장의 개념 이상을 넘볼 수 없는 현실이다.
대부분의 문화 공간이 민간적 차원에서는 엄두도 못내는 방대한 요구 조건으로서, 여기에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그 '구색'을 갖추어야 할 차원의 당연의 입장에 있는 것들을 논하고자 한다.
혹자는 이용자도 드문데 그 수효만 많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기엔 문제 풀이의 논거에 함정이 있다. 문화의 수용에 있어서 그 수용자의 요구가 강력한 문화의 편식으로써 현존한다 할지라도, 밥상을 멀리 하는 아이에게 식탁을 거두느니 차라리 반찬을 달리 하든지 그 식탁의 분위기를 개선해 보는 지혜로움을-우리는 수직적 가계질서로 몰아 부쳐-용감히 버려야 하는가, 그래서 그 요구는 문화를 직시하는 특수계층의 찢어진 신문고가 아닌, 사회 전체의 아이덴티티로서 내세워진 문제인 것이다.

방관이 약인가.

먼저, 공간을 구축하는 개념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첫째, 지붕을 얹어 놓고 무대를 만들고 좌석을 배열해 놓으면 됐다. 두 번째로 배려한 고마움은 연사의 목청에 한계성을 감안해 마이크와 스피커를 준비해 둔다. 동시에 실내를 눈감고 들어갈 수 없는 노릇이어서 형광등 몇 개는 달아 놓아야 하지 않는가 해서 공간의 천장벽에 떨어지지 않게 전등 몇 개는 꼭 붙여 놓아야 했다.
그 다음으로 사계가 있는 나라로서 더위에다 밀집된 체온의 난로를 시R을 수 없으니 선풍기 내지는 에어콘을 설치하는 배려와, 추위에 귀한 연사 발 시려우니 히터 내지는 방열파이프를 설치 해 놓는다. 이 정도면 문화공간으로서 충분치 않는가?
술잔은 술이 가득 담겨야 제맛이 난다. 또한 가득 채우고도 넘치는 에너지는 베풀 수도 있어 더더욱 좋을 일이다. 이런 사고에서 네 번째의 나열을 들어보자. 넷째, 기왕에 만드는 것 한사람의 연사보다는 조금 낳은 너댓명의 광대가 폴짝폴짝 뛰어 놀 수 있도록 좀 넓게 무대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다섯째, 무대와 객석의 거리, 위치, 형태구조가 공간 내의 동질성을 꾀할 충분한 고려가 됐겠는가. 또 열 사람이 동시에 들어 설 수 있는 등 퇴장의 구조는 한 사람도 충분히 들어올 수 있지 않겠는가. 또 무대의 불빛은 무대 조명이라 불리워질텐데 그것이 퍼떡 들어왔다 퍼떡 나가는 조명적 차원의 설치-이 점에서는 어는 공간이든, 특히 지방의 대개 공간에서는 무시되고 있다하면 좋지 않겠는가. 그래서 전기적 장치로 수년간 조명료라는 명목의 사용료를 '모르는 게 약'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받아들일 것인가. 다음으로 귀한 무대 만들어 놓고 닳아 질까 걱정되어 카펫을 깔아 놓으니 차라리 그 돈으로 꼴사납게 뚫어 놓은 벽창문을 막아 외부 소음을 차단하고 실내의 방음장치에 배려를 좀더 해 보면 어떨까 등등의 나열은 그 요구가 너무 터무니없이 지나친 것일까.

같이하는 병치레

우리는 넓은 마당에서 벌어지는 징과 꽹과리의 걸쭉한 그러면서도 투박한 한국적 환타지와 그 매력을 잘도 간직하고 있다. 또한 못 줄을 잡은 상대편의 농구가(歌) 자락을 붙잡고 지르는 '어이…'소리는 커야만 들려서 못줄을 옮길 수 있었다. 거기에다 양반탈의 건들거림을 비야냥하기 위해선 각시탈의 춤사위는 참으로 시원스레 널려져야 체증은 내려갔다. 그것을, 참으로 눈물겹도록 사랑스런 그것을 이 좁고 작은 '공간'이라는데다 끌어들이기 위해 흘린 값진 눈물은 얼마나 있었으며, 또 얼마를 더 흘려야 할 것인가. 그래서 작으나마 없으나마 모르나마 창조자라는 대개의 우리는, 이 현실에 있어서 스스럼없는 마음으로 '참여'해 보는 작은 행정가라 자청해 볼 수는 없는 일인가.
"돗자리 하나, 북 하나, 스폿트 한 대면 충분한데 뭘……"
어느 소리꾼의 볼멘 목소리가 이리도 가슴에 두방망이질 하는 것은 왠일일까.

박병도·극단황토 상임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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