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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1 | 연재 [저널이 본다]
문화를 가꾸는 새로운 자세
최세종·전북대 음악과 교수(2003-12-18 10:43:10)

 

 전라도는 예로부터 예향으로 자타가공인 해왔다. 그 이유로는 아마도 곡창인 호남평야를 끼고 있어서 먹을 것이 풍부하고 기후가 온화하여 사람들이 풍류와 멋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 중에서도 이곳 전주는 찬란했던 옛 문화의 중심지로서 그 역사와 전통을 갖고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은 예향이란 대명사가 무색할 정도로 동급의 도청소재지인 다른 도시와 비교해 볼 때 예술활동이 침체되어 있음을 부정 할 수가 없다. 특히 음악분야를 놓고 볼 때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북쪽으로 한시간 거리인 대전이나, 남쪽으로 한시간 거리인 광주와 비교해 보더라도 전주는 잠자고 있는 도시같은 인상을 준다. 일년내내 가불만한 음악회란 가뭄에 콩 나듯 있을까 말까하고 어쩌다 한 번 가보면 음악회장의 어수선한 분위기에 기분이 상하여 끝까지 버티고 앉아있을 마음이 싹 가시고 만다. 약속된 시각 정시에 시작되는 경우란 거의없고 지각연주에 지각청중들의 연주도중 입장, 연주가 진행 중인데도 소란스럽게 왕래하는 몰지각한 행동, 박수인지 야유인지 분간이 안가는 비신사적인 청중의 태도 둥은 하루속히 고쳐져야 될 일이다. 특히 연주자에 대한 예의인 박수가 인색하여 절을 받고나서야 마지못해 치는 격이니 안타깝다. 
 

 어떤 집단의 공통된 생활양식을 문화라고 한다면 우리 문화의 책임은 그 구성원인 우리들 각자에게 돌려질 수밖에 없다. 관료주의적 ·권위주의적 가치관이 지배적인 풍토에서는 예술과 학문을 갈고 닦으려는 창조적인 장인정신이나 정신문화에 대한 외경심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무사안일주의적인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문화행정의 소극성에도 그 책임이 크다. 
인구가 사십만이 넘는 문화도시임을 자처하는 이곳 전주시에 아직까지도 연주회용 콘서트 그랜드피아노 한 대 없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타지방에 비해 비교적 일찍부터 시도되었던 이 고장의 관현악 운동도 그 역사에 비에 뚜렸한 진전이 없이 유명무실, 겨우 그 명맥만을 유지해 왔으며 전주시향의 경우현재로서는 역사가 짧은 다른 지방의 신생 교향악단에 비하여 재정적인 뒷받침이나 음악적인 수준이나 모든 조건이 하위 그룹에 머무르고 있는 형편이다. 약간의 무대확장과 음향판 설치를 위해 거의 일년 가까이 내부수리 중이었던 전북예술회관은 우선 공연장이 건물의 꼭대기층에 있다는 것부터가 청중을 무시한 설계상의 넌센스 일뿐 아니라 분장실을 포함한 부대시설이 전혀 되어있지 않아 아직도 본격적인 공연장으로서는 미홉한 단계에 머물러있다. 이 모든 현상은 서울에 편중한 중앙집권적 문화행정으로 균형있는 지역문화 발전을 외면해 온 정책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이 지역 주민들의 문화에 대한 관심의 소홀함과 지도층 인사들의 구태 의연한 개인중심적 사고방식 등이 지역문화 발전의 주된 저해요인이 되고있다. 유난히도 보수적 성향이 짙은 지역 특성은 편견의 울타리가 높은 폐쇄성으로 나타나 외래문화를 받아들이는데 인색하고 경직된 고정관념이 강하여 합리적인 사고의 유연성이 부족하다. 오래 고여있는 물은 부패하기 쉽고 정치도 장기집권하면 독재로 흐르기 마련이다. 문화가 한 개인이나 소수의 독점적 소유물 일 수는 없다. 결국 문화란 안으로 가두어 두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넘쳐흘러서 모든 사람들이 누릴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가치와 생명력을 갖는다고 본다. 그 동안 산업화의 과정에서 소외지대로 늘 푸대접만 받아오던 호남지방이 이제 서서히 각광을 받기 시작하고 있다. 중공을 겨냥한 서해안시대나 지방화시대니 하여 산업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그러나 물질문명에 못지않게 정신문화에 대한 자각 또한 소홀해서는 안되겠다. 이제 예술인들도 깊은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책임있는 문화행정의 뒷받침으로 우리 문화가 객관적으로 높은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할 것이다. 그리하여 언젠가는 전주가 음식문화의 메카로서뿐 아니라 정신문화의 메카로 칭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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