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22.5 | 연재 [로마의 향기, 바티칸의 숨결]
봉쇄수녀원, 천국이냐 감옥이냐
이백만 전 주교황청 한국 대사(2022-05-10 10:04:08)


봉쇄수녀원, 천국이냐 감옥이냐


이백만 주교황청 한국 대사,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사장



봉쇄수녀원! 이곳의 수녀들은 외부인들과 접촉을 철저히 차단한 문밖출입을 하지 않습니다. 수녀원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기도하고 묵상하고 노동합니다. 세상에서는 이런 수녀원을 봉쇄수녀원이라 부릅니다. 사회에서 봉사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일반 수녀원(활동수녀원) 대조적이지요. 봉쇄수녀원 안의 성당은 일반 신자들에게도 개방되어 있지만 일반 신자는 수녀들과 절대로 접촉할 없습니다. 수녀들이 기도하는 공간과 일반 신자들이 기도하는 공간 사이에는 단단한 쇠창살이 높게 설치되어 있습니다. 철창이 () (), 정결과 부정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경계선 역할을 합니다. 


봉쇄수녀원은신비의 공동체입니다. 감옥 아닌 감옥이고, 천국 아닌 천국입니다. 속인들 눈에는 그렇게 비칩니다. 도대체 그곳에서 수녀들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을까. 봉쇄수녀원에 들어간 딸과 아버지의 일화가 있습니다. 딸이 아버지에게 봉쇄수녀원에 들어가겠다고 말씀드렸답니다. 아버지는 딸의 결정을 극구 말렸지만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딸은 이미 마음을 굳힌 터였고 결국 봉쇄수녀원에 들어갔습니다. 딸을 포기하지 못한 아버지는 수녀원까지 찾아갔지요. 커다란 창살을 사이에 두고 부녀는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먼저 말문을 열었습니다. “얘야, 감옥 같은 곳에…. 나와라. 함께 집으로 가자꾸나.” 그러자 수녀가 딸이 대답했습니다. “아빠, 저는 아빠가 감옥 속에 갇혀 있는 같아요. 얼마나 힘드세요?” 놀랍게도 딸이 오히려 아빠를 위로했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말문이 막혀버렸습니다. 아버지는 딸에게 수녀원에서 나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답니다. 얘기는 한국의 봉쇄수녀원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창살을 사이에 두고 사람이 얘기하고 있다면, 과연 어느 쪽이 감옥일까. 누가 자유의 몸이고, 누가 갇힌 몸일까. 행복하게 살고있는 사람 쪽에서 생각하면 반대편이 바로 감옥 아니겠습니까.


봉쇄수녀원의 수도자와 감옥의 죄수,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수도자는 스스로 자신을 봉쇄하고, 죄수는 타의에 의해 봉쇄당한 것이지요. 수도자는 갇혀 있으면서 행복하다고 하고, 죄수는 갇혀 있으면서 불행하다고 합니다.


폼페이 인근의 작은 도시 노체라. 그곳에 가는 날에는 어릴 소풍 때처럼 가슴이 뛰고 설레었습니다. 오늘도 수녀님들이 반가운 얼굴로 우리 일행을 맞아 주시겠지?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나? 오늘 점심 식사에는 어떤 메뉴가 나올까? 생각만 해도 즐거웠기 때문입니다.


500년이 넘는글라라 봉쇄수녀원’, 한국 수녀님 분이 수도생활을 하고 있는 곳이어서 가끔 찾아갔습니다. 


봉쇄수녀원에 때마다 떠오르는 화두는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행복이고, 다른 하나는 고독입니다. 행복은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최고 가치이고, 고독은 인간 실존의 기반입니다. “당신들은 정말 행복합니까?” “당신들에게 고독은 무엇입니까?” 수도자들에게 직설적으로 물어볼 수야 없지요. 대신 화두를 마음속에 간직한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대화의 지향점으로 삼습니다. “수녀님, 바깥세상이 궁금하지 않으세요? 만나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을 같은데….” 잠시 빙긋 웃으시며, 돌려준 대답이 저의 뇌리에 박혀 있습니다. “대사님, 이곳이 가장 아름다운데…. 아름다운 곳에 가고 싶겠습니까?” 


2018 가을이었습니다. 수녀님들은 그날따라 명랑 소녀처럼 방실방실 웃으면서 면회실에 오셨습니다. “요새 좋은 있으세요? 지난번 만날 때보다 행복해 보입니다.” “, 한국 부채춤을 공동체 수녀님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어요. 다들 재미있어합니다. 저도 즐거워요.”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매일매일 눈코 없이 바빠요. 기도하고, 일하고, 노래하고, 춤추고 ….” 


2019 수녀님 분이불가피한 일로로마에 적이 있었습니다. 귀한 손님을 대사관 관저에 모셨습니다. “오랜만에 나오셨으니 많이 돌아다녀 보세요!” “아닙니다. 저는 지금 하느님과의 약속을 위반하고 있습니다. 수녀원에 있으면 행복합니다. 하느님 맛을 매일 있거든요. 세상 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무엇이 수녀님을 그렇게 행복하게 합니까?”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게 무엇인지는…” 그게 무엇일까요? 봉쇄수녀원의 수녀님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그것은?


노체라에 때마다 인간실존의 근원에 깔려있는 고독(solitude) 외로움(loneliness) 실체에 대해 묵상해 봤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틸리히는고독은 혼자 있는 즐거움을, 외로움은 혼자 있는 고통을 표현하는 말이다. 고독이 내가 선택할 존재하는 것이라면, 외로움은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다. 현대인은 고독을 잃었기에 외로움에 몸부림치고 있다 말했습니다. 틸리히의 구분에 따르면 봉쇄수녀원의 수도자들은 무척 고독하게 살고 있다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외롭지 않습니다. 십자가 위의 예수님은 어떠했을까요? 고독은관계 속에서존재하는 상황이지만, 외로움은관계 밖으로버려진 상황입니다. 누구와의 관계? 일차적으로는 세상 공동체와의 관계이고, 궁극적으로는 하느님과의 관계입니다. 


고독이 행복을 키워주는 자양분이라는 사실을 봉쇄수녀원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