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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 | 연재 [보는 영화 읽는 영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덕질을 멈추지 말기를
오세연 감독의 다큐멘터리 <성덕>
김경태 영화평론가(2022-12-13 14:15:19)


보는 영화 읽는 영화 | 성덕

그럼에도 불구하고

덕질을 멈추지 말기를


글 김경태 영화평론가






오세연 감독의 다큐멘터리 <성덕>은 너무나 사랑했던 연예인 ‘오빠들’이 범죄자로 추락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던 실패한 ‘덕후’들을 만난다. 그 중에는 감독 본인도 있다. 감독은 중학생 때부터 가수 ‘정준영’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에게 기억되기 위해 한복을 입고 팬미팅에 갔고, 그 덕에 방송에도 출연하게 되었다. 그가 열심히 공부하라고 해서 전교 1등을 했고, 그처럼 되고 싶어서 기타를 사서 연습을 했다. 그러나 그가 성폭행범으로 구속되면서 감독에게 돌아온 건 크나큰 배신감이었다. 감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는 팬들의 심리를 이해하기 위해, 자신처럼 오빠들에게 배신당한 이들과 속 깊은 인터뷰를 한다. 그들이 느꼈고 또 느끼고 있는 분노와 슬픔, 아픔과 미련이 교차하는 진심은 관객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내가 ‘덕질’하는 사람은 힘든 삶을 견딜 수 있는 동력이 되어줬다. 학교에서는 내가 비정상처럼 느껴졌지만, ‘오빠’와 함께하는 세상에서 나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그는 내 세계의 중심이자 전부였다. 비록 미디어를 통해 보여지는 이미지가 전부일지라도 말이다. 그를 닮기 위해 노력하고, 그가 좋아할 만한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쓴다. 끝내 그 모든 것이 자신이 만들어낸 허상이고 신기루로 밝혀졌지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 오빠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고 애써 부정한다.


감독은 그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석방을 요구하는 ‘태극기부대’의 집회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마지못해, 옥중에 있는 박근혜를 응원하는 엽서를 쓴다. 그들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너무 잘 알기에 차마 거절할 수도,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더 이상 저들을 무지하다고 비난할 수도 없다.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서는 현재를 견딜 수 없는 그들의 진심 앞에서 감독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들을 이성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심정적으로는 공감할 수밖에 없다. 믿고 의지했던 과거의 시간이 너무 길어 이미 삶의 버팀목이 되어버렸기에, 차마 떨쳐내고 돌아설 수 없다. 그래서 아직도 팬으로 남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 이상 알고자 하지 않기로 한다. 열광했던 누군가를 부정하는 것은 내가 살아온 삶을, 나아가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좋아하는 연예인을 직접 영접해서 악수를 하고 사인을 받고 사진을 찍고, 나아가 그가 나를 기억해줄 때, ‘성공한 덕후’, 즉 ‘성덕’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별탈없이 오래도록 덕질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먼 미래에도 당신을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히 행복한 덕후가 될 수 있다. 사랑하는 대상과의 물리적 만남을 넘어 그를 내 삶의 일부로 체화할 때 비로소 성덕이 되는 것이다.


결국 <성덕>은 덕질을 가장한 뜨거웠던 사랑에 대한 우화이자, 사랑에 눈이 멀었던 이들이 사랑을 잃고 쓰는 가슴 시린 회고록이다. 덕질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사랑의 경험은 성공과 실패 여부를 떠나 나를 성장시킨다. 나는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을 통해 지금의 내가 된다. 우리는 사랑을 하면서 행복한 만큼 상처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누군가를 사랑하기로 결심한 순간, 사랑에서 비롯되는 모든 다양한 감정들을 감당해야만 한다. 누군가에게 다시 마음을 주기가 두렵더라도 이겨내야 한다. 상처를 감내할 용기가 있어야 정말로 사랑할 수 있다. 몇 번을 더 실패해야 정말로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래도 사랑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덕질을 멈춰서는 안 된다. 최선을 다해 사랑했다면, 최선을 다해 덕질했다면, 후회할 필요는 없다. 사랑은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 속에서 행복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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