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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동석, 유연한 몸으로 경계를 넘나들다

글 김경태 영화평론가

2000년대 중반 압구정을 배경으로 하는 <압꾸정>에서 ‘대국(마동석)’은 뚜렷한 직업이 없는 한량에 가깝지만 토박이라는 이점과 특유의 친화력으로 너른 인맥을 자랑한다. 그는 압구정이 성형 산업의 중심지가 될 것을 간파하고 성형 사업에 뛰어든다. 먼저, 면허 정지를 당한 유명 성형외과 의사 ‘지우(정경호)’에게 면허증을 찾아주면서 신뢰를 얻고, 지우를 미끼로 중국 자본과 연결된 조폭인 ‘태천(최병모)’을 구슬린다. 그들은 손을 잡고 압구정에 기업형 성형외과를 세우며 승승장구를 한다.   

사실 대국은 오래전에 살았던 아파트를 되찾기 위해서 큰돈이 필요했다. 영화에서 명확하게 묘사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그 아파트는 사별한 아내와 하나뿐인 딸과의 추억이 서려 있는 공간이기 때문인 것으로 짐작된다. 그는 결코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딸과의 관계 역시 모호하게 처리된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딸은 최소한의 기능적인 역할만을 한다. 그러니까 그가 자신의 나이에 걸맞는 평범한(?) 유부남임을 입증해준다. 정경호와의 브로맨스가 동성애적 가능성을 내포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딸은 영화 속에서 단 한 장면만 등장하며 그가 게이가 아님을 보증하는 최소한의 주석으로 기능할 뿐이다.

한편, 대국의 거대한 몸은 남자다움과 귀여움을 모두 초과할 만큼 과장되게 꾸며진다. 그는 짧은 머리를 붉게 염색하고 알록달록한 무늬가 새겨진 셔츠와 펑퍼짐한 바지, 그리고 화려한 모자와 안경으로 몸을 가린 채 거리를 활보한다. 의상과 액세서리의 조화를 염두에 두지 않은 채 그저 튀어 보이기 위해 발악하는 듯한 외관이다. 더 이상 남자다움이 두드러지지도, 귀여움이 돋보이지도 않는다. 아마도 과잉된 남성성과 귀여움으로 양분되어 매너리즘에 빠진 몸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구책일지 모른다. 이처럼 그는 애써 새로운 몸을 발명하고자 한다. 과장컨대, ‘하드 바디’와 ‘소프트 바디’를 오가던 그의 몸은 무정형의 유연한 ‘플라스틱 바디’가 되려 한다. 

대국의 몸의 그가 처한 상황과 공명한다. 그는 무직이기에 모든 직업의 가능성에 열려있다. 또한 무직이기에 친화력이라는 성격적 특징과 힘이라는 신체적 특징이 더욱 부각된다. 그는 직업이 없지만 사채업자든지, 조폭이든지, 경찰이든지 가리지 않고 교류가 가능하다. 그들은 모두 대국이 어릴 때부터 알고 지냈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예의 그 엄청난 힘을 지녔으나 이제 그것은 형사나 운동선수와 같은 특정 직업의 원인이나 결과로 수렴되지 않는다. 대국은 힘으로 조폭들을 좌지우지하고, 경찰들의 연행에도 맞서 이겨낸다. 그 힘은 직업에 종속되지 않았으나 여전히 서사의 주요한 동력이 된다. 나아가 대국은 중국인 투자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중국말을 전혀 못하면서도 자신이 중국인이라는 거짓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돈을 위해서라면 한국인이라는 민족 정체성조차 쉽게 포기(?)한다. 요컨대, 대국은 신체의 한계, 그리고 직업 및 관계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서사를 구축해간다. 

영화의 결말에서 대국이 자신을 배신했다고 오해한 지우로 인해 성형외과 건물에 화재가 발생한다. 대국은 쓰러져 있는 지우를 애써 외면하며 숨겨둔 비자금을 가방에 챙겨 넣는다. 관객은 대국이 결국 지우를 선택할 거라 기대한다. 그런데 다음 장면에서 돈이 든 가방들을 양손에 들거나 입에 문 채 지우를 업고 나오는 대국을 목격한다. 그는 아파트라는 물질적 목표와 지우라는 관계적 목표를 모두 포기하지 않았고, 이는 그가 힘이 매우 세기 때문에 설득력을 갖는다. 사기죄로 복역하고 나온 대국과 지우는 압구정에서 다시 재회한다. 대국은 염원대로 자신의 낮고 동그스름한 콧대를 높게 세우는 성형수술을 하고 나타난다. 달라진 코는 그의 귀여움을 상쇄하며 유연한 플라스틱 바디를 환유한다. 이제 그는 의사면허증을 박탈당한 지우와 함께 무직과 무정형의 세계에서 새로운 모험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