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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7 | 인터뷰 [백희정의 음식 이야기 ]
감자 한 박스를 샀다
백희정 (2023-07-10 17:26:27)


감자 한 박스를 샀다



“이 감자 파는 거예요?” “그럼요. 방금 밭에서 캔 거예요. 싸게 드릴 테니 사세요.”


그녀는 감자를 좋아한다. 막 쪄낸 감자는 포슬포슬한 하얀 속살이 툭, 툭 터져 분가루를 고루 바른 듯하다. 여름이면 한 솥 가득 쪄서, 찬물 한 사발과 잘 익는 열무김치를 걸쳐 밥 대신 실컷 먹는다. 그녀는 ‘타고난’ 채식주의자이다. 어릴 때부터 비위가 상해 고기를 먹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의 가족들은 모두 육식을 즐겨한다. 시어머니는 보름이 넘게 고기를 상에 올리지 않으면 빈혈이 왔고, 남편과 아이들은 기운이 나지 않는다고 투덜댔다. 그런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 그녀는 고기 요리를 참 잘했지만, 정작 본인은 입도 대지 못했다. 그녀 남편은 늘 그런 그녀를 산골에서 시집와 그렇다며 타박했고, 자식들은 엄마 건강을 염려하여 조금이라도 먹어보라 권했다. 하지만 자식들의 염려와 걱정에도 그녀는 고기를 입에 대지 못했고, 평생을 채식주의자로 살았다. 


초여름, 학교에 다니기 전이었다. 나는 아버지 지게를 타고 서당골 감자밭으로 갔다. 산골짜기를 들어서는 첫머리에 밭이 있었다. 감자와 고구마, 콩 같은 것들을 심어 가꾸는 다랑이 밭이었다. 아버지가 고랑을 따라 감자 줄기를 뽑아 놓으면, 엄마는 호미로 감자를 캤다. 호미로 흙을 이리저리 헤치면 밭고랑 위로 둥글둥글한 감자와 굼벵이가 같이 올라왔다. 나도 엄마를 따라 호미를 들고 감자를 캐겠다고 부산을 떨었지만, 내가 캐는 감자는 생채기가 나기 일쑤였다. 엄마는 이런 나에게 약에 쓴다며, 밭고랑에 굼벵이를 주워 담으라고 말했다. 감자는 상처가 나면 금방 썩어 보관이 어려운데, 자꾸 생채기를 내니 다른 놀잇감을 어린 딸에게 찾아준 것이다. 그렇게 감자밭에서 엄마는 호미로 하얀 감자를 캐고, 나는 호미 끝으로 하얀 굼벵이를 주웠다.


부엌 안에는 작은 광이 하나 있었다. 그 광의 바닥, 볕이 들지 않는 구석에 감자가 있었다. 엄마는 여름내 감자를 찌고, 볶고, 조리고, 부치고, 밥에 넣고, 국을 끓여 밥상에 올렸다. 놉을 얻어 생강밭에 풀을 매면 새참으로 쪄서 나갔고, 생채기가 난 감자는 물에 담가 녹말을 가라앉히어 까만 동부 콩을 넣고 찐빵을 만들어 주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밀가루 반죽을 밀어 감자를 숭숭 썰어 넣고, 수제비나 칼국수를 끓여 온 식구가 둘러앉아 맛있게 먹었다. 우리 가족에게, 그리고 고기를 먹지 않는 엄마에게 감자는 특별하면서도 맛있고 소중한 식재료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는 엄마와 둘이 살았다. 직장생활을 할 때였다. 나의 늦은 귀가로 엄마는 늘 혼자서 저녁을 먹는 날이 많았다. 밤늦게 퇴근해 집에 돌아오면 방문 앞에는 삶은 감자가 냄비 채 그대로 놓여있었다. 아마 혼자 먹어야 하는 밥이 입맛도 없고 귀찮아서 엄마는 또 감자를 삶아 먹는 모양이다. 인기척에 잠이 깬 엄마는 저녁을 먹었는지 물었고, 나의 대답과 상관없이 늘 감자를 먹으라고 권했다. 엄마는 그렇게 자주, 감자를 많이 먹어도 물리지 않아 했다. 그래서였는지 해마다 거르지 않고 감자를 심었고, 입맛이 없어서, 찬이 마땅치 않아서, 입이 궁금하다며 ‘감자나 삶아서 먹자.’라는 말을 참 많이 했다. 


엄마를 돌보기 시작하면서 나는 해마다 감자를 박스로 샀다. 엄마의 최애 간식을 빠트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몇 해 전 일이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뽀얀 감자를 접시에 담아 엄마에게 갔다. 침대에 누워있는 엄마를 일으켜 앉히고, 간이식탁을 펴 그 위에 놓았다. “엄마! 뜨거우니까 천천히 먹어요.” 나는 감자와 물컵을 엄마 앞으로 밀어주었다. 그리고 맞은편에 앉아 엄마가 먹는 것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감자를 맛있게 먹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뒷설거지를 하러 다시 주방으로 갔다. 설거지를 마치고 내가 다시 엄마에게 갔을 때, 엄마는 감자를 먹지 않고 손으로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나는 엄마가 그만 먹을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엄마 뭐해? 왜 감자를 안 먹고 만지고만 있어?”“사자들 먹으라고.” 나는 순간 엄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뭐라고?” “저그! 저그 마당에 사자들 먹고 가라고.” 아! 그제야 나는 알아들었다. 엄마는 손으로 감자를 꼭꼭 쥐면서, 너무나 태연하게 나를 쳐다보며 말을 하고 있었다. 침대 위 간이식탁에는 감자를 밤톨만 한 크기로 뭉쳐 세 덩어리를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접시에 남은 감자를 다시 손으로 집어 그 위에 보태어 덩어리를 좀 더 크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순간 너무 놀라,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머뭇거렸다. 엄마가 말하는 사자는 저승사자를 말하는 것이었기에, 지금 우리 집 마당에 서 있는 저승사자를 어찌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왜 하필 엄마에게 저승사자가 환영幻影으로 보일까? 아무렇지 않은 척 자연스럽게 넘어가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엄마 손을 꽉 잡았다. 그리고 식탁 위에 엄마가 만들어 놓은 감자 세 덩어리를 접시에 담으며 말했다. “엄마! 사자들이 바쁘대. 다른 데도 가야 한데. 그래서 오늘은 이것 못 먹고 간데.” “아니어, 왜 그려, 이거 사자들 먹는 밥이여.” “......” 손사래를 치는 엄마에게 ‘그럼 내가 나가 볼게. 갔나? 안 갔나?’라고 말하고, 잠깐 마당에 다녀오는 척을 하며 방을 나갔다 다시 돌아왔다. “아이고! 갔네, 갔어. 벌써 갔어. 엄마! 다음에 와서 먹는대.” 내 손을 밀어내는 엄마를 겨우 진정시키고, 감자를 담은 접시를 치우고, 엄마를 침대에 다시 눕혔다. 그리고 나서야 나는 주방으로 나와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며칠 전, 나는 감자 한 박스 샀다.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앞두고, 이런저런 염려가 무성하여 소금을 사러 가던 길이었다. 고산 덕암마을 지나는 길에서, 밭을 갈고 있는 경운기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아주머니 곁에 쌓아 놓은 감자 박스를 보았다. 나는 조금 지나쳐 차를 세우고, 길을 건너 감자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아주머니의 ‘사세요’라는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감자 한 박스를 샀다.


포슬포슬하게 찐 감자를 입으로 후후 불어가며 먹던 엄마 모습을 이제는 마주할 수 없다. 2020년 여름. 엄마는 그해 샀던 감자 한 박스를 다 먹지 못하고, 뇌출혈이 와서 병원에 입원했다. 치료를 받고 집으로 퇴원했지만, 지금은 입으로는 물 한 모금도 넘길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맛있어?’라고 묻는 딸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온몸으로 맛있다고 말해주던 엄마 모습이 그립다. 하얀 감자꽃처럼 수줍게 웃어주던 그녀를 마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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