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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5 | 칼럼·시평 [문화칼럼]
<저널칼럼>文化여! 崔北의 눈을 찌르지 말라
李健鏞(서양화가, 군산대학 교수)(2003-12-18 13:33:38)


 가까운 이웃 나라만 하더라도 외국의 명문대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아들이 아버지의 대를 이어 가업인 음식장사를 한다든가 하는것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인다. 그러기에 가업이 대 물림으로 이어지고 그것을 자랑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비단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라 옛 부터 그렇게 하여온 일이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도자기나 종이를 명품으로 만든 당대의 명인도 아들이 그 가업을 이어 가는 것을 꺼려하고 차라리 농사나 짓는 편이 낫다고 했으며 극단의 경우는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버렸다는 끔찍한 이야기도 있다. 현대 사회 뿐 아니라 모름지기 모든 사회의 기능은 전문화되어 갈 때 그리고 그 모든 직종에 대한 정당하고 정도에 맞는 현실적인 대접을 받을 때 발전하고 그 사회의 성원 모두가 살 보람을 느끼며 살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떠한 전문적인 기술도 혹은 가치있는 회귀한 일이라도 그 자체에 현실적인 보상이 주어지지 않을 때 그것은 더 이상 발전하거나 사회전체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朝鮮시대 이 고장 崔 北이라는 화가가 제아무리 대단한 신기에 가까운 작품을 그렸다 하더라도 당대의 권력자들이 그의 작품만을 빼았고 그를 천시했기에 崔 北은 스스로 눈을 찌르는 비참함을 안아야 했다. 당시 崔 北이 느껴야했던 좌절감을 우리가 아무리 이해한다고 해도 그의 고통에는 따르지 못하는 것 일게다.


 우리는 그간 문화라는 것을 우리의 생활이나 삶에서 멀리 떨어져 있거나 보통사람들은 근접할 수 없는 차원의 것으로 생각해 왔음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판화나 수채화나 묵화나 조각이나 유화작품을 나의 생활공간에 소유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특수계층에 있는 사람들이나 소유할 수 있는 것쯤으로 치부하고 있다. 그 만큼 작품 값이 비싼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은 몇몇 특수한 인기 작가의 이야기이고 그것이 전반적인 모든 작가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흔히 작가의 이름을 보고 작품을 선택하고 있다. 자신이 그 작품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누가 인기작가이냐 하는 일종의 투자가치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이 투자이든 어쩌든 미술에 관심을 가짐으로써 예술문화가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은 다행스런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문화를 과시나 투자의 대상으로 삼는 자체가 실상은 엄청난 우를 가져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때 골동품 가게 주인을 살해한 사건으로 사회전체가 떠들썩하게 된 적도 있지만 문화재까지라도 파손하는 일은 아무런 일도 아니었던 때가 있었다. 그것이 돈으로 환산만 될 수 있다면 무슨 짓이고 할 수 있다는 사고가 팽배했던 때문이다. 문화는 어쩌면 우리들의 생활일 수 있다. 이 땅에 많은 작가들이 열정과 노력으로, 또 치열한 작가정신으로 작품을 내고 있음에도 그것이 제작을 하고 있는 작가의 것만으로 창고에 쌓여있다면 이것처럼 큰 불행은 없을 것이다.


 이런 때 작가는 서서히 자문을 제기하게 된다. 왜 그려야 하며 왜 제작해야 하느냐에 대한 갈등과 회의가 고개를 들고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남이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고 자신이 그리고 싶고, 뚜렷한 가치를 투영하고 싶으며, 명예 때문에 혹은 가장 훌륭한 그 무엇을 실현하기 위해서, 또는 자신 외의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위해서, 작품을 내는 것이겠지만 이 모든 것의 출발이 제작하는 작가의 개인적인 욕구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기에 그것은 전적으로 그 자신이 책임질 일일수 밖에 없다. 그러나 만약에 그가 이 일을 일생을 통하여 자신의 전부를 바쳐서 해야하는 일이라면 문제는 달라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의 작품에 관심을 갖고 함께 공감할 사람들이 없을 때 그는 그 일을 지속할 수 없는 것이다.


 흔히 실생활에 필요한 물건은 당연히 돈을 주고 구입하지만 그립 한 장이나 조각 한 점은 공짜로 얻을 수 있지 않느냐는 사고가 팽배해 있는 실정에서 작가가 자신의 작업에 느끼는 회의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천문학적인 거금으로 가구나 가재도구는 사도 그림이나 조각작품 한 점에는 인색한 것이 우리네들의 문화생활이다. 물론 그것이 부끄럽거나 이상한 일일수는 없다. 가령 어떤 사람이 응접실에 공간이 한 쪽이 비어있으니 책장을 그 크기에 맞춰 들이고 그 곳을 채울 수 있는 책을 주문한다 할 때 내용은 어찌됐건 그것이 설사 호화장정에 치우친 책일지라도 책으로 생활공간을 장식하는 일이야 그 책을 읽건 말건 간에 최고의 문화적 행위는 분명한 문화적 행위일 것이다. 이러한 마구잡이 장식적 과신적 문화행위는 개인저택에 국한된 문제만은 아니다.


 소위 관에서 주도하는 문화회관이나 도시계획, 주거공간으로서 아파트공간, 공원이나 문화행사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이 전문가의 의견 없이 일선 행정가에 의해 모든 계획에서 운영에 이르기까지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립현대미술관만 하더라도 최근에야 관장에서 학예관에 이르기까지 전문인들로 되었지만 대부분은 현재도 전문지식이나 경륜도 없는 일선 공무원이 나름대로 꾸려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 만큼 전문가와 전문영역에 대한 인식이 우리에게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시인할 수 밖에 없다. 모든 문화행정은 엄밀한 의미에서 전문가들에 의해서나 자문을 통하여 기획되고, 시설에서 시행에 이르기까지 전문적 시스템에서 갖추어 져야 할 것이다. 문화가 갖고있는 섬세한 성격과 문화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고 미래를 예감할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기에 그 지역이나 도시의 특수성이나 역사를 감안하여 이념을 달리하는 다양한 성격의 그룹들을 전체적으로 조화시킬 수 있는 문화적 다자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화는 어떤 일부계층이나 세대 중에 한정된 일이 아니기에 어린이에서 어른에 이르는 학생이나 회사원이나 가정주부나 전문가나 모든 성원의 사회적 구성원이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활 것이다. 너무 지나친 전문가들을 위한 프로그램에 편중할 때는 문화의 저변 확대가 이루어지지 않아 일반 대중과의 괴리 현상을 빚게 되며 일반대중이 편중하게되면 문화는 저급화되기 쉽다. 그런 의미에서도 문화행정을 담당하는 사람은 장단기적인 투자를 통하여 전문창작인들을 보호하는 한편 발전적인 측면을 고려하면서 일반대중의 단계적인 계몽도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흔히 관공서의 공공건물들에는 흔히 보아왔던 상업적인 그림들을 걸어 놓은 예가 많고 공원이나 거리에는 너무 판에 박은 조형물을 건립하는 예가 많은데 그것은 바람직한 것이 되지 못한다. 만약 그러한 계획이 사전에 전문가들에 의해 조언을 받아 기획됐더라면 환경예술은 진정한 가치를 지닐 수 있을 것이며 일반 행정가들의 안목에 맞추는 우를 범하지 않게 될 것이다. 과연 문화란 무엇일까. 그것은 어떠한 개념으로 정의되든 간에 결국은 우리들 자신의 삶이다. 그것은 자기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며 가까이 생활속에서 창조되고 향유되는 것, 그것은 음식이며 안방이며 인사이며 예의며 도시이며 응접실이며 경제적 교환이며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며 사는 보람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분위기이며 우정이며 자본을 현재나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며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인 것이다. 그것은 공장이며 항구며 공원이며 백화점이며 무관심에서 관심으로 인하여 이 땅에 창조적인 작가들이 떠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며, 지난날 우리들이 많은 작가들을 다른 지방으로 떠나도록 배웅조차 하지 못했던 것을 알고 있는 일이며 그들의 일을 지금 보상해 주는 일이기도 하다.


 만약에 우리에게 문화가 없다면 자기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야하며 가업을 잇기를 거부해야 하고 끝내는 자기 자신의 눈을 찔러야 하는 비참함을 초래하게된다. 만약에 그럴 수도 없다면 관광객들만이 들끓는 민속촌의 매표소에 앉은 고용인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도 않다면 야쿠트족이 경제 생활에 유리한 순록사육법을 배우기 싫어 옛풍습을 고집하면서 시베리아 숲속으로 이동한 것처럼 우리는 이제 지리산 속으로나 잠적해 버려야 옳올 일이다. 과연 오늘날 우리 곁에 「崔 北」이었다면 그가 또다시 그 자신의 눈올 찌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이 시대에 있어서 또다시 우리에게 손가락을 자르고 눈을 찌르는 불행한 일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 문화여 ! 또다시 우리의 눈을 찌르지 말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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