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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9 | 기획
웹드라마, 지역에서 제작하기
K-콘텐츠, 전북의 현주소 ③ 웹드라마
고다인·류나윤 기자(2023-09-08 10:43:25)


“주민이 찍고 주민이 연기해요”

부안 사회적협동조합 ‘스토리쿱’ 우병길 대표 인터뷰

자치단체의 홍보영상 대부분은 수도권이나 인근 대도시의 업체에 외주를 맡겨 제작된다. 그 지역만의 특성과 매력을 잘 담아야하는 영상을 외지인이 제작한다는 점은 아쉬움을 남긴다. 부안의 사회적협동조합 '스토리쿱'의 우병길 대표는 지역의 이야기를 그 지역 사람들과 진정성 있게 담고 싶었다. 이러한 생각에서 출발해 부안 주민, 향우들과 함께 웹드라마 <똑바로 살겠다>를 제작했다. 부안으로 귀농한 청년이 300년 전 부안에서 일어난 사건에 연루되어 시공을 초월한 모험을 벌이는 내용이다. 부안군 공식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되고 있으며, 1화부터 조회수 3천회를 돌파하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요즘 마을미디어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어요. 그런데 마을미디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도시의 미디어센터에서 그때만 잠깐 와서 도와주고 가는 방식이더라구요. 외지인들은 지역에 대한 관심도 크지 않고, 콘텐츠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져주지도 않아요. 차라리 이걸 부안 내에서 자체적으로, 지속적으로 해결을 해보자 하는 마음에 협동조합을 만들고 촬영 장비를 구입했어요. 우리 지역만의 이야기가 담긴 영상을 만들어보자고 부안군청에 이야기를 했고, 작년 12월부터 찍어서 올해 초 공개가 됐죠. 사실 단편영화로 기획해서 만든 거였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시리즈물로 바꾸게 됐어요."

우 대표는 서울에서 20년간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일하다가 10여 년 전 부안으로 내려왔다. '부안독립신문'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신문 일을 시작했지만, 마음속에는 영상에 대한 갈망이 늘 존재했다. 결국 '스토리쿱'을 설립하기로 마음먹고 웹드라마 촬영에 들어갔다. 과정은 쉽지 않았다. 작가로 살아왔기 때문에 직접적인 촬영과 편집 경험이 없어 초반에 고생을 많이 했다. 유튜브를 선생님 삼아 공부했고, 지금은 꽤 능숙한 감독이 됐다.

"의상하고 메이크업은 배우들 스스로 했고, 붐맨도 지인의 아들에게 도움을 받았어요. 최소한의 인력으로 촬영하고 편집은 혼자 했습니다. 원래는 카메라 감독을 따로 두고 저는 연출만 하려고 했는데, 사람이 구해지지 않아 직접 카메라도 들었어요. 그러다보니 '옥에 티'가 생기더라고요. 실제로 1화를 보면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고 있는 모습이 유리창에 다 비쳐요. 중간중간 마이크가 내려와서 화면에 나오기도 하고요. 2화부터는 더욱 신경을 쓰며 촬영했지만, 아무래도 한계가 있죠."

웹드라마는 다른 콘텐츠들과 비교해 개인 작업이 아예 불가능한 특징이 있다. 배우, 작가, 연출, 오디오, 조명 등 최소 10명이 모여야 영상 하나를 만들 수 있다. 그 모든 인원을 지역에서 구하기란 쉽지 않았지만 수소문 끝에 사람을 구하고 팀을 꾸렸다. 한번은 2화에 출연하기로 했던 배우가 촬영 전날 갑자기 연락이 두절되는 일도 있었다. 부안에서 다시 배우를 구하려고 노력했으나 구해지지 않았다. 결국 여배우 한명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섭외해 서울에서 내려오게 됐다.

"그 배우가 서울에서 내려오면서 걱정이 많았다고 해요. 일단 한다고 하긴 했는데 어떤 촬영인지, 단체인지도 확실하게 알 수 없어 불안했다고요. 필모그래피 중 흑역사가 되지는 않을지. 그런데 막상 와보니 현장 분위기가 너무 좋고 결과물도 좋아 마음을 놓았다고 넌지시 이야기를 해주더라고요. 아무래도 지역에서 만드는 웹드라마이니 편견이 조금 있었나봐요. 지금은 먼저 연락이 와서 빨리 다음 촬영을 하자고 할 정도예요."

<스토리쿱> 우병길 대표

내년 중에는 부안에 시민미디어센터가 만들어질 예정이다. 그는 기회가 된다면 센터를 맡아 운영하며 더 큰 규모의 작품들로 부안을 알릴 계획이다. 지역에서 관련 분야 인재를 발굴하는 프로그램도 계속해서 고민 중이다. 지금도 전북문화관광재단의 지원을 받아 청소년 대상 영화캠프를 진행하고 있다. 또, 부안영상테마파크를 활용해 과거와 현대를 오가는 타임슬립 장르의 작품도 찍어볼 계획이다. 그에게는 부안 안에서도 재미난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사람들이 유튜브를 보면서 '이건 지역에서 만들었으니까 퀄리티는 어느 정도 감안해서 봐주자' 이러지 않아요. 채널에 올라가는 순간 지역에서 만든 것과 서울에서 만든 것, 그리고 해외에서 만든 것이 모두 평등해요. 전국이 경쟁자이고 세계가 경쟁자죠. 지역의 콘텐츠들도 결국은 수도권과 비슷한 스토리와 퀄리티를 갖춰야 해요.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지만, 계속해서 노력하다 보면 경쟁력이 생길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자본의 힘 벗어난 '웹드'스러운 작품

웹드라마 제작자 박영완 · 오재욱 감독

왼쪽부터 오재욱, 박영완 감독




드라마는 더 이상 전문 방송국 PD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야기를 짓고 영상을 만드는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들이 이미 웹드라마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전주에서 오랜 시간 독립영화를 제작해온 박영완 감독은 최근 전북을 배경으로 두 편의 웹드라마를 제작했다. 그는 웹드라마의 매력이 영상의 벽을 낮추는데 있다고 말한다.

8월 상영한 그의 신작 〈영화영재 금태경〉은 완성까지 5년이 걸렸다. 제작 과정에서 상영 기회가 날아가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웹드라마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언제 어디든 원하는 플랫폼에 올리기만 하면 내 작품을 세상에 보여줄 수 있다. 시청자 반응을 빠르게 파악해 작품 방향을 유연하게 바꾸는 일도 가능하다.

"웹드라마를 제작하면서 유튜브 플랫폼이 가진 특성도 공부를 정말 많이 했어요. 극장에 틀기엔 살짝 애매할 정도로 지극히 일상적이고 단순한 이야기도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면 웹드라마 시장에선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죠. 또, 작품 자체도 중요하지만 웹드라마는 일단 사람들이 누르게 만들어야 해요. 그래서 제목과 썸네일에도 신경써야하죠. 웹드라마 산업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바탕이 돼야 지역에서도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 것 같아요."

지역에서 드라마 한편을 만들 때 부딪히는 가장 큰 어려움은 제작팀을 꾸리는 일이다. 박 감독은 멀리서 경력자를 불러오는 대신 지역의 청년들과 힘을 모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현재 지역 내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그는 영상 제작자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현장에서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하며 자신과 같은 제작자로 키우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지원자는 25명 정도였지만 올해는 70명이 넘게 지원했다. 영화와 더불어 짧은 숏폼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며 물어오는 친구들도 생겼다. 영상 콘텐츠 시장이 변화하며 성장하고 있는 현실을 이럴 때 실감하게 된다.



다른 감독의 경우는 어떨까. 오재욱 감독은 현재 전주를 무대로 한 웹드라마 〈힙〉을 제작 중에 있다. 힙합에 빠진 여자와 이를 바라보는 남자친구가 티격태격하며 만드는 로맨스물이다. 한 편당 5분 남짓한 분량으로 총 네 편을 제작하는데 꼬박 3일의 촬영 시간과 적지 않은 인력이 필요하다. 대학에서 영화과를 전공한 그는 같은 일에 종사하는 주변 친구들과 뜻을 모아 매 작품을 함께하고 있다. 특히 이번 웹드라마는 전북콘텐츠코리아랩의 지원사업에 선정돼 제작에 들어갈 수 있었다.

“흔히 지방의 제작 환경은 서울보다 열악하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지역에서 창작하는 게 좋아요. 웹드라마 같은 작품을 꼭 서울에 가야만 만들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가장 어려운 점은 아무래도 인력과 장비 문제인데요. 여기서도 기본적인 장비를 빌릴 수 있는 기관들이 많아요. 물론 더 좋은 장비를 구하려면 서울에 가야하지만 장비나 인프라적인 문제를 조금씩 개선해나가면 지역에서도 재밌게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다고 봐요.”

박 감독 역시 서울과 지역의 제작 환경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넘쳐나는 제작자와 작품 사이에서 경쟁하는 것보다 오히려 지역에서 더 순수한 창작이 가능하단 의견이다. 하지만 제작 지원사업에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콘텐츠 지원사업이 실질적으로 지역의 좋은 작품 탄생에 제 역할을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작품성에 따른 지원이 아니라 제작 기업의 규모 등을 보고 선정이 이뤄지다 보니 문제가 있다. 사업 기간 안에 작품을 제출해야하니 일단 만들어내기에 급급한 현실도 꼬집었다. 웹드라마는 결국 얼마나 투자하고 높은 퀄리티의 작품을 만들까의 고민보다 웹드라마가 가진 특성을 최대한 잘 활용해 방향성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한다.

“아무리 웹드라마라 해도 15분짜리 하나 찍으려면 최소 3일이 걸리고 천오백만 원 정도 제작비가 필요해요. 10편을 만들면 1억이 훌쩍 넘어가죠. 이런 식의 제작 환경이 자리 잡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작년에 〈똥별이는 친구가 필요해〉라는 작품은 지원금 3천만 원으로 만들었는데, 5화 찍을 때쯤엔 남은 돈이 없더라고요. 어떤 웹드라마는 몇 안 되는 인물들 대사를 중심으로,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기도 하는데요. 사실 웹드라마 시장에선 이 방법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콘텐츠의 성격을 유동적으로 설정하고 가야 더 다양하고 재밌는 작품들이 탄생하지 않을까요?”

웹드라마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

웹드라마는 누구나 적은 제작비로 자유롭게 도전하고 즐길 수 있는 콘텐츠라는 결론에 이르지만, 사실상 자치단체나 공공기관에서 제작되는 웹드라마의 평균 제작비는 2억원에 달한다. 그 중 잘 된 작품은 손에 꼽기 때문에 투자 대비 효율을 따지기는 아직 어려운 수준이다. 박영완 감독의 말처럼 무조건 많은 예산을 들이는 방식보다는 웹드라마의 콘텐츠적 성격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적절한 소재를 찾는 것이 먼저일지도 모르겠다.

지원 정책 역시 웹드라마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해 이루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의 콘텐츠 지원사업은 웹툰이나 웹소설 등 모든 미디어 분야를 통합해 신청을 받고 지원해주는 형태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올해 ‘방송영상콘텐츠 및 웹콘텐츠 제작지원’ 사업을 시행하고 있지만 이 역시 웹드라마와 웹예능, 교양 콘텐츠를 모두 포함해 제작지원이 이루어진다. 웹드라마에 특화된 정책을 통해 실질적으로 필요한 부분에 예산을 활용하고 안정적인 제작 환경을 조성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시도가 필요해 보인다. 앞으로 더욱 다양한 지역의 이야기들을 웹드라마라는 매력적인 통로를 통해 만날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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